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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오스만 제국의 최정예 부대원은 무슬림화 된 그리스도교 소년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튀르크인 이야기
이희철 지음, 리수
288쪽, 1만9800원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인 36대 메흐메드 바히데딘은 1922년 제국의 멸망으로 수도 이스탄불을 떠나며 영국군의 해링턴 사령관에게 ‘초라한 망명’을 요청한다. 600여 년간 아시아·유럽·아프리카에 걸쳐 1500만㎢(현재 중국의 1.5배가 넘는 면적)의 영토를 장악했던 제국의 처절한 몰락이다. 이 책은 기원전 3세기 초 북방 유라시아의 최강국으로 등장한 흉노에서 돌궐과 위구르·셀주크를 거쳐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튀르크인들의 2200여 년 역사를 망라한 대서사시다.

각 제국의 생명주기는 인간의 삶과도 비슷해 작은 부족으로 태어나 성장을 거쳐 병들고 쇠약해 죽어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었다. 성장의 요체는 단하나, 전쟁의 승리였다. 그 경쟁력의 수단은 현대의 국가·기업간 경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흉노족의 ‘명적(鳴鏑)’이란 소리나는 화살은 전투의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평소 초원에서 익힌 기마술과 기사술(騎射術)은 무서운 기동력을 발휘했다.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제국은 15∼20세의 그리스도교 가정 소년들을 발탁해 개종시킨 뒤 술탄의 최정예부대인 예니체리 군단으로 키웠고, 이는 제국 확장의 핵심 수단이 되었다. ‘신기술’ ‘엘리트’의 활용에 다름아니다.

제국의 수성(守城)에는 밖으로 ‘유연한 외교’, 안으론 ‘통합’이 효험을 발휘했다. 초원의 최강대국 돌궐은 당시 중국 수나라와 수백 차례의 사절과 선물로 관계를 유지하며 위험한 전선을 확장하지 않았다. 다민족, 다종교였던 오스만은 비무슬림들의 권리를 철저히 존중하며 능력에 따른 인사로 제국의 통합을 유지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멸망의 공통적 원인 역시 왕조 내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과 반란, 내분이었다. 원정을 꺼리고 사냥과 놀이로 지새운 왕들은 몰락의 공통적 징후였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신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타깃이 튀르크 제국의 발자취와 일치하는 역사의 반복 역시 흥미롭다.

최훈 논설실장 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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