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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게 자유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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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디지털담당

김영훈디지털담당

자존심이 상했다. 로봇 기자가 쓴 기사는 훌륭했다. 어떤 게 사람이 쓴 것인지 골라내는 문제도 번번이 틀렸다. 점수나 주가 등락을 여러 문장으로 변형하는 것은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물거품이 됐다’ 같은 문장을 맥락에 맞춰 딱 쓸 줄은 몰랐다. 어떤 경우는 사람이 쓴 것보다 구성이나 문장이 더 나았다. 창피했다. 로봇 기자의 성장에 묘한 긴장도 느꼈다.

그런데 로봇 기자 개발자는 딴소리했다. 그는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로봇이 사람이 쓴 것처럼 기사를 작성하게 할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다 보니 사람하고 똑같이, 또는 사람보다 더 잘 쓰는 게 목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람 뺨치는 로봇 기자 얘기를 들으려고 강연에 간 나는 꽤 당황했다.

생각할수록 그가 맞는 것 같다. 로봇 기자의 목표는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만 할 수 있으면 된다. 기계 티가 좀 나도 인간이 편하게 정보로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사람처럼’보다는 차라리 로봇만이 줄 수 있는 효용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0.1초가 급한 재난 문자를 발송하며 굳이 사람이 보낸 것처럼 보이게 할 이유는 없다.

구글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는 로봇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샀다. 소프트뱅크에 로봇 회사를 판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로봇을 포기했나. 그렇진 않다. 구글과 소프트뱅크의 길이 다를 뿐이다. ‘페퍼’처럼 인간과 감성을 나누는 로봇을 추구하는 소프트뱅크는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이 필요하다. 추천·분석에 능한 무형의 로봇, 즉 인공지능이 필요한 구글은 굳이 네 발 로봇을 만드는 회사를 끼고 있을 이유가 없다. ‘사람처럼’만 버리면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범위는 오히려 넓어진다. 소프트뱅크가 추구하는 감성형 로봇도 인간과 100%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애완견이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로봇 분야에서 사람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보 처리 방식, 근골격계 운용 방식 등이 매우 뛰어난 참고서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란 목표는 다른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정해진 모델이 있고, 그 모델과 유사성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실 로봇식 사고다. 사람처럼 만들라는 건 역설적으로 로봇 방식으로 만들라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처럼’은 오히려 새 로봇의 출현을 막기도 한다. 여차하면 ‘기존처럼’이나 ‘하던 대로’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나 로봇 개발자들이야 모를 리 없는 얘기다. 그러나 그들에게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분들의 생각은 여전히 인간 같은 로봇에만 꽂혀 있는 듯해 하는 얘기다.

이 점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의 MIT 졸업식 축사를 곱씹을 만하다. “나는 인공지능이 컴퓨터에 인간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것은 걱정된다.”

김영훈 디지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