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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수 연구실 ‘텀블러 폭탄’ 용의자는 대학원생 제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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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교수연구실에서 발생한 사제폭탄물 테러의 범인이 피해 교수의 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에 나사못 들어 … 교수 부상 #영국 맨체스터 테러와 같은 폭발물 #CCTV 찍혀 … 버린 장갑서 화약 발견 #경찰 “학점 불만 때문인지 확인 안 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날 오후 8시23분쯤 이 학교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김모(25)씨를 체포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연세대 제1공학관 4층에 위치한 기계공학과 김모(47) 교수 연구실 앞에 사제폭발물을 설치하고 김 교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김 교수의 수업을 듣던 대학원생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김씨가 오전 7시27~30분에 사건 현장에 백팩을 메고 두 번 정도 나타난 사실과 거주지 주변에서 장갑을 버리는 장면을 확인했고, 장갑에서 화약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씨가 오후에 학교에 나타나서 임의동행 방식으로 함께 집에 가 수색을 하고, 경찰서에 데려온 후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텀블러 폭발물의 잔해. [연합뉴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텀블러 폭발물의 잔해.[연합뉴스]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범행 이유와 김 교수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학점에 불만을 품고 범행했다는 건 교내 ‘찌라시’에 도는 말일 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의 혐의가 특정되면 15일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7시30분쯤 김 교수 연구실 출입문 앞에 가로 10㎝, 세로 20㎝ 정도 크기의 종이상자가 든 쇼핑백을 설치했다. 김 교수가 오전 8시30분쯤 이 상자를 연구실 안으로 가지고 가 여는 순간 폭발물이 터졌다. 폭발물은 커피전문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텀블러로 만들어졌다. 텀블러는 가로 7㎝, 세로 16.5㎝ 크기로 AA 사이즈 건전지 4개를 이용한 기폭장치와 연결돼 있었다. 안에는 아래쪽이 뭉툭한 나사못 수십 개와 화약이 담겼다. 경찰 관계자는 “폭발과 동시에 나사못들이 튀어나오도록 고안됐다”며 “종이상자를 여는 순간 급격한 연소가 이뤄져 측면이 터졌지만 화약만 타고 나사못은 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터넷 등을 통해서도 제작 방법을 익힐 수 있는 조악한 폭발물”이라고 덧붙였다. 폭발로 김 교수는 손과 목 등에 전치 2주 정도의 화상을 입고 사고 직후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았다.

경찰 특공대원들이 13일 폭발사고가 발생한 서울 연세대 공학관 교수 연구실 건물 주변을 탐지견을 동원해 수색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경찰 특공대원들이 13일 폭발사고가 발생한 서울 연세대 공학관 교수 연구실 건물 주변을 탐지견을 동원해 수색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사고 직후 경찰은 특공대와 폭발물분석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 등 70여 명과 탐지견을 현장에 투입했다. 군 당국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위험성폭발물 개척팀(EHCT) 20명을 보냈다. 국가정보원 테러정보통합센터(TIIC)에서도 인력이 급파됐다. 경찰은 2차 사고 가능성에 대비해 사고 현장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현장 접근을 차단하는 한편 연구실과 같은 층에 있던 인원들을 건물 밖으로 대피시켰다. 출입 통제는 사고 발생 4시간여 만인 낮 12시36분쯤 폭발사고가 발생한 4층 일부 구역을 제외하고 해제됐다. 김 교수 연구실에서 연소한 폭탄은 ‘못 폭탄(nail bomb)’의 일종이다. 지난달 영국 맨체스터 자폭테러에서도 사용됐다. 못 폭탄은 폭발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폭발과 동시에 못이 멀리까지 날아가 박혀 살상력이 높다. 2013년 미국 보스턴에서 8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보스턴 마라톤 테러’에도 압력밥솥에 금속을 가득 채운 못 폭탄이 사용됐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제조법 동영상을 배포하며 테러에 못 폭탄을 사용하라고 장려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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