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위의 코스닥’ 부동산 시장 닮은 아슬아슬한 질주...빚내 투자한 규모만 4조 넘어

중앙일보

입력 2017.06.12 00:35

#.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오르는 코스닥 지수를 볼 때마다 속이 끓는다. 지난해 용돈을 아껴 마련한 250만원에 대출 150만원을 더해 총 400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실적 대비 하락 폭이 컸던 코스닥 종목을 샀지만 주가는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11월 손실률은 30%에 육박했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팔아야 했다. 연말 대출금 상환 만기가 돌아와서다. 이씨가 팔았던 코스닥 종목 주가가 올해 들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씨는 “코스닥에 투자했다가 지난해 내내 마음고생을 했는데 매도한 종목이 반등하니 속이 또 상한다”면서도 “늦기 전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다시 들어가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했다.

대출 받아 코스닥 종목 투자 4조2600억원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 만에 최고치 기록
코스닥 지수 670선 돌파, 저금리 기조 유지 발맞춰
‘빚 내서 주식 투자’ 코스닥 시장, 개인이 주도
코스닥 기업 절반 이상 증권사 실적 분석 없는 ‘깜깜이 투자’ 불가피
코스닥 상장 도전 기업도 급증, 늘어나는 코스닥 지수 만큼이나 불안감도 높아져

#. 박모씨는 빚내서 투자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토로한다. 박씨는 2000년부터 코스닥 투자를 시작했다. 투자 방식은 초기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미수(외상)로 주식을 사고 손실이 나면 카드론으로 200만~300만원을 인출해서 막는 걸 반복하고 있다. 박씨는 “빚을 갚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오래 보유하지 못하고 단타(주식을 단기간에 자주 사고파는 것)만 하게 되면서 수익이 날 때보다 손해를 볼 때가 더 많다”면서도 “그런데도 현금만으로 주식 투자를 하면 크게 수익을 못 낸다는 생각에 빚을 내서 투자하는 습관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빚 위의 선 코스닥’. 개인 투자자의 빚잔치 속에 코스닥이 아슬아슬한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가계 빚에 기대어 불안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부동산 시장과 닮은꼴이다.

빚을 내서 코스닥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중앙DB]

빚을 내서 코스닥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중앙DB]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일 기준 코스닥 시장 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4조259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25일(4조2655억원) 이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신용거래융자는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자가 주식을 산 액수를 의미한다. 빚을 내서 코스닥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3조8467억원이었던 코스닥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올초 4조원을 돌파했다.

대출을 받아 주식을 사는 ‘위험한 투자’는 코스닥 시장에 쏠려 있다. 코스닥 시장 규모는 8일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221조6860억원이다. 코스피 시가총액(1530조8822억원)과 견줘보면 7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신용거래융자 잔액에서 코스닥(4조2597억원)은 코스피(3조7517억원)을 5000억원 넘게 앞지르고 있다. 거래 잔액이 아닌 주식 수로 따져보면 그 정도는 더 심하다. 8일까지 증권사 대출을 바탕으로 거래된(신용거래융자 체결 주수) 코스닥 주식 수는 6억9151만 주로 코스피(3억8311만 주)의 배에 가까웠다.

신용거래융자 추이 [자료 금융투자협회]

신용거래융자 추이 [자료 금융투자협회]

지기호 케이프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코스닥 지수가 오르는 가운데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신용융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닥 지수는 지난 9일 674.15로 하루 전보다 4.18포인트(0.62%) 상승하며 연중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코스닥 지수가 670선을 넘은 건 지난해 10월 13일 이래 처음이다. 코스닥 시가총액도 지수 따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코스닥 시장에서 급증하고 있는 빚 내서 하는 주식 투자는 개인이 주도하고 있다. 코스닥에서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일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85.2%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자 비율은 8.4%, 기관 투자자는 4.9%에 불과하다.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거래 비중이 46.0%인 것과 비교해 쏠림 현상이 심하다.

증권사 분석 코스닥 기업 수, 단위 : 개 [자료 에프엔가이드]

증권사 분석 코스닥 기업 수, 단위 : 개 [자료 에프엔가이드]

늘어나는 위험은 또 있다. 기업 정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주식을 사고파는 ‘깜깜이 투자’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의 분석 결과 올해 들어 증권사 3곳 이상에서 실적을 분석하고 전망치(컨센서스)를 내놓은 코스닥 상장 기업은 120개사에 그쳤다. 전체 코스닥 상장 기업 1229개사 가운데 9.8%에 불과하다. 1~2개 증권사에서 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코스닥 기업 역시 361개사(29.4%)뿐이다. 60%가 넘는 나머지 748개 코스닥 기업은 기존 실적이나 전망에 대한 증권사 보고서가 올해 나오지 않았다. 투자자가 참고할 수 있는 비교 가능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코스닥 시장의 체질을 더욱 허약하게 만드는 요소다.

코스닥 연도별 공모 실적, 단위 : 억원 [자료 한국거래소]

코스닥 연도별 공모 실적, 단위 : 억원 [자료 한국거래소]

그런데도 코스닥 상장에 도전하는 기업은 줄을 잇고 있다. 모처럼 온기가 도는 코스닥 시장 분위기에 힘입어서다. ‘밀어내기 분양’에 한창인 부동산 시장과 판박이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신규 상장 기업 수는 25개(기업인수목적회사 제외)로 2005년 거래소 통합 이후 가장 많았다.

하미양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기술기업상장부 팀장은 “코스닥 시가총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시장이 일단 좋다. 시장이 좋으면 기업가치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보니 코스닥 상장에 도전하는 기업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 팀장은 “반도체 호황과 맞물려 반도체 장비업체를 중심으로 기존 실적을 바탕으로 해서 상장 신청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현숙ㆍ이새누리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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