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진국이 만난 사람

시간 벌며 북핵 해결 계기 만들면, 사드 대응할 여지 넓어질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원혜영 민주당 중진자문위 의장 

원혜영 의원은 6일 “참여정부 때는 너무 정치적인 이슈에 매달렸다”며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민생과 함께 가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았을 때 국민적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원혜영 의원은 6일 “참여정부 때는 너무 정치적인 이슈에 매달렸다”며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민생과 함께 가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았을 때 국민적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반짝이 무대복을 입고 춤추는 꽃할배-. 원혜영(66)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선거 때 ‘꽃할배 유세단’을 만들어 전국을 유랑했다.

인사검증기구 만들어 철저히 검증 #통과된 사람만 청문대상으로 해야 #국민 과반 지지받도록 노력하면서 #임기 끝날 때까지 가는 게 희망사항 #문 대통령, 공개적으로 개헌 제의 #개헌 못하면 국회, 주로 야당 책임 #10억 엔 받은 건 위안부 해결 족쇄 #이건 털어내고 창조적 해법 찾아야

“이미지가 좋고 대중성이 있는 지식인·문화인들의 지지 선언을 받으려 했는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번 발표하고 마는 것보다 직접 유세를 다니는 게 좋겠다’고 해서 만들었어요.”

이철 전 의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시춘 작가 등이 참여하고 망가지는 콘셉트로 의상을 준비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같은 유명 인사가 격의 없이 하니까 재미있어 했어요. 가끔 참여해 준 사물놀이의 김덕수 교수, 만화가 박재동 교수도 아주 인기가 있었어요.”

그의 의원회관을 찾은 지난 6일 다음 날로 예정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준비로 분주했다. 그 틈에 선거 이야기부터 물어봤다. 그는 5선 국회의원(부천 오정)으로 원내대표와 당 대표까지 맡은 중진이다. 최근 당내 중진자문위원회의 의장도 맡았다.

“5년 전 대통령선거와 달라졌어요. 그때는 캠프 중심 선거여서 당 조직이 전혀 가동이 안 됐습니다. 의원들조차 ‘내 선거’가 아니었어요. 심지어 단상에도 못 올라가 상처로 남았죠. 이번에는 당 중심 선거였습니다. 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이 자기 선거처럼 했습니다. 집권 이후에도 당(黨)과 정(政)이 따로 놀고, 심지어 갈등까지 있었던 걸 반성하고, 이 정부가 성공하도록 중진부터 솔선수범하자는 것이죠.”

꽃할배유세단이 지난달 1일 광주에서 춤을 추며 문재인 후보 유세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꽃할배유세단이 지난달 1일 광주에서 춤을 추며 문재인 후보 유세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가 기대만큼 잘하고 있습니까.
“예상보다 잘하고 있어 다행이에요. 문재인 후보가 자기는 재수(再修)에 강하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재수를 안 했으면 이렇게 잘 준비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국민과 잘 호흡하면서, 우선순위를 잘 가리고 속도에 맞춰 하지 못했겠죠.”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오면서 지지율이 86%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조금 떨어졌어요.
“당연히 조정기를 거치겠죠. 흔한 말로 이제 떨어질 일밖에 더 남았겠어요. (여유 있게 웃으면서) 70%도 얼마나 가겠어요? 한 50~60%만 해도… 국민 과반의 지지를 받고, 또 받도록 노력하면서 임기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희망사항이죠.”
지금 박수를 많이 받지만 여소야대라 굉장히 불안하지 않습니까.
“어쨌든 지금은 야 4당 중에 3당과 합의를 하면 풀어 나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협치(協治)의 모델을 찾아 나가야죠. 대통령도 나서시겠다고 하시고… 어렵지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지자들은 적폐 청산을 요구하지만 과거 문제와 미래 문제의 조화도 생각해야 할 텐데.
“그렇죠. 참여정부 때를 좀 반성적으로 평가하는 게 너무 그런 정치적인 이슈, 가치의 재정립, 이런 데 매달렸어요. 역시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민생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게 중심이고, 그 일을 해 나가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았을 때 국민적 이해도와 지지도가 높은 것 아니냐. 나도 공감을 해요.”
청문회는 잘될까요.
“관행으로 여겨졌지만 분명히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국민 정서상으로도 공직에 나서기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게 많이 있거든요. ‘옛날 관행이니 다 덮고 넘어가자’. 이건 안 될 거란 말이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부가 앞장서고 여야도 같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의 원칙을 정립했으면 좋겠어요.”
신상 털기가 부담스러워 공직을 안 맡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냈어요. 센세이셔널리즘을 조장하고 제대로 검증은 못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정부에 인사 검증 전문기구를 만들어 검찰이나 국세청에서 자료도 받아 철저하게 거르고, 거기서 통과된 사람만 청문 대상으로 하자는 겁니다.”
개헌은 문 대통령 공약대로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을까요.
“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초청해 개헌 얘기를 능동적으로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외적인 불확실성과 장애요인은 완전히 해결됐다고 봐요. 문 대통령이 아주 교묘한 구상을 밝혔어요. 공개적으로 ‘개헌을 하자’고 분명히 하고 국회에 공을 넘겼단 말이죠. ‘개헌안을 못 만들면 국회 책임이고, 주로 야당 책임이다. 청와대나 여당은 반대하지 않겠다’. 이렇게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거든요. 정말 잘한 게 나나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은 ‘개헌만 해서는 안 된다. 선거제도 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개헌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현재 소선거구제는 표의 등가성(等價性)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승자독식구도라고 지적했다.

“제1수혜자는 다수당·집권당이고 제2수혜자는 제1야당이에요. 이번 대선도 그랬지만 총선 때도 제일 센 놈이 크게 먹고 야당 중에 센 놈이 ‘집권세력 독주를 견제하려면 제1야당을 키워 줘야 한다’고 해서 먹습니다. 40% 안팎으로 당선되지만 나머지 60%에 담긴 민의는 비례로 나눠 줘 등가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죠.
“그게 개헌보다 더 쉽지 않은 거야…. 지금 의석 300석 안에서 조정하면 (지역구가 크게 줄어들어) 지역구 의원들은 완전히 박살 나는 거야. 선관위가 정말 용기 있게 진취적인 안을 냈는데, 그 안을 주도한 사무총장은 불이익을 받았어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전임 정부가 한 일로 미루는 게 부담을 더는 방법 아니었나요? 중국의 보복기간만 연장할 것 같은데.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고려해 최종 배치가 확정되기까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 정부의 고심이나 노력을 보여 줄 수 있는데…. 계속 살아 있는 현안으로 부각되는 측면도 있고…. 부담이겠죠. 시간을 끌면서 상황 변화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노력이 있겠지만…. 참… 쉽지 않겠죠.”

그는 곤혹스러운 듯 말이 빙빙 돌았다.

“근본적 해법이지만 그전에 비하면 여건이 많이 조성된 게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하고 햄버거를 먹든 어떻게 하든 대화를 하겠다는 것 아니에요? 어떻게 북핵 문제 해결의 결정적 계기를 만드느냐. 그런 것들이 조성됐을 때 사드 문제는 좀 더 탄력을 받고….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 시간을 벌면서 그런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북핵을 해결해 가면 이건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이네요.
“네.”
일본에 특사단으로 다녀오셨는데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정부가 공식적 자금을 내놓는다는 것이 더 진정된 사과 또는 보상의 의미가 있다고 박근혜 정부가 생각한 것 아닌가요. 이미 김영삼 정부 때 ‘우린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다. 돈은 안 받겠다’고 선언했거든요. 그걸 깨고 10억 엔을 받은 건 불씨를 만든 거란 말이죠. 해법이 아니라 더 족쇄가 돼서… 이건 좀 털어 낼 필요가 있어요. 창조적인 해법을 찾아야죠.”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던데….
“얘기하기 참 그런데… 정세균 의장이 문희상 의원하고 경쟁해 더블스코어로 이겼어요. 핵심 논리가 국회의장단은 국회를 대표하는 상징인데 부의장을 한 사람이 왜 또 의장을 하려고 하느냐? 이게 먹힌 거예요. 지난번에 선후배가 경쟁하는 모습이 좋지 않게 보일 것 같아 양보했는데 아직도 그 문제가 안 풀리고 있으니 고민을 해 봐야죠.”

[S BOX] 풀무원농장 일군 부친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강조

원혜영 의원과 그의 부친 원경선씨(사진 왼쪽)가 활짝 웃고 있다. 풀무원농장 툇마루에 앉아 있다. 원 의원 집무실에 들어서면 대형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은 2013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늘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고 말했다. 그 영향으로 원 의원도 “무엇이 유리한가보다 어떤 게 바른길인가를 생각한다”고 했다.

평안도 빈농이었던 원 원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대 상경했다. 우유 배달 등 여러 일을 했다. 베이징(北京)에서 인쇄소도 했다. 해방 후에는 부천에서 농사를 지었다. 원 의원이 태어나 사는 바로 그 집이다.

그는 평신도교회(퀘이커) 지도자였다. 어려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공동체 생활을 했다. 원 의원은 다섯 누이 틈에 자랐다. 가족들도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일했다. 어린 원 의원은 이런 생활에 불만도 많았다.

원 원장은 지적 호기심이 매우 많고, 굉장한 실천가였다. 이야기를 듣자 바로 한국 최초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풀무원농장이다.

80년대 초 감옥에서 나온 원 의원은 부친의 유기농산물을 파는 풀무원을 창업했다. 96년 당시 21억원 상당의 풀무원 지분을 모두 장학재단에 기부하고 친구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87년 제정구·유인태 등과 한겨레민주당을 만들었다. 김영삼·김대중 분열을 보고 새 정치를 꿈꿨다.

“이해찬이 ‘정치의 현실’이라고 하더라고요. 노무현은 통일민주당, 이해찬은 평화민주당으로 갔는데…. 나는 정치도 민주화운동의 한 실천이라고 생각했어요.”

92년 14대 의원에 당선됐지만 96년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자 참여를 거부하고 노무현 등과 통추 활동을 했다. 98년부터 부천시장을 두 번 한 뒤 다시 국회로 무대를 옮겼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