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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의 직격 인터뷰

비핵화, 단번에 이룰 수 없어 … 핵동결로 단계적 해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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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로버트 리트바크 우드로윌슨센터 부소장

“역사는 지금을 ‘제3차 북핵 위기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이렇게 손을 놓고 있으면 북한은 2020년까지 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로버트 리트바크(Robert S. Litwak)의 주장이다. 리트바크는 윌슨센터의 부소장 겸 국제안보연구소장이다. 그가 최근 펴낸 소책자 『북한의 핵 브레이크아웃을 막으려면(Preventing North Korea’s Nuclear Breakout)·아래 사진』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들의 필독서다. 111페이지에 담긴 과거 북핵 위기에 대한 평가와 현 상황에 대한 비평, 미래에 대한 통찰과 해법은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런 리트바크가 지난달 19일 경남대학교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기회에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칼럼니스트와 대담했다. 약 1시간의 대담에서 리트바크는 “지금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turning point)”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의 소책자 제목 중 ‘breakout’은 전쟁 등이 발발한다는 의미와 함께 탈출이라는 뜻도 갖는다. 북한이 수십 년간의 핵 보유 야심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실효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감옥을 탈출하는 범죄자처럼 고삐가 풀릴 수도 있다는 경고의 의미다.

김정은, 논리는 있지만 변덕스러워 #체제 지속 위해 핵 개발에 더 매달려 #현재로선 북핵 개발 막을 방법 없어 #북한 붕괴 안 바라는 중국 설득 관건 #미국, 중국 압박 말고 설득해야 #지금이야말로 게임의 룰 바꿀 기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신뢰한다는 로버트 리트바크. 그는 “지금은 북핵 해결의 티핑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신뢰한다는 로버트 리트바크. 그는 “지금은 북핵 해결의 티핑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김영희 =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은 아직도 명확지가 않다. 북핵 해결의 의지는 있어 보이지만.

리트바크 = 지금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차대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즉, 작은 변화들이 쌓여 곧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상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에 열을 올리는 동시에 핵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이 발사하는 미사일의 사거리가 얼마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그런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다.

= 한·미 간 위기의식에 차이가 있다. 한국인들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반면 미국은 북핵 자체보다는 핵탄두를 미국 땅까지 쏘아 보낼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더 민감한 것 같다.

리트바크 = 지금 상황은 1990년대 초의 1차 위기, 2002년 2차 위기에 이어 가히 3차 북핵 위기라 할 만하다. 그건 13일 만에 끝난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슬로모션 비디오와 같다. 미국에 있어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미사일을 갖게 된다면 대북정책뿐 아니라 북한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뀔 것이다. 하지만 핵 역시 중요한 문제다. 북한이 핵을 갖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북한에 신경을 쓰겠는가. 한국 내에서 최근 핵무장론까지 대두됐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 그런 상황에서 해법은 뭔가. 해법이 있긴 한가.

리트바크 = 내 제안은 간단하다.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대북 압박만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진지한 정책을 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지만 현재로서 우리는 차악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핵동결이다. 북한 선제타격은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옵션’의 하나로 거론하고는 있으나 매우 좋지 않은 선택지다.

= 관건은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가다.

리트바크 =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국무부의 동료들이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과도 종종 토론을 한다. 어떻게 하면 중국이 북한에 유의미한 압력을 가하도록 움직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은 북한이 벌이고 있는 이 위험한 게임의 판을 아예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

= 미국은 김정은을 어떻게 보나.

리트바크 = 상당히 변덕스러운(erratic) 리더다. 미국 일각에선 그를 두고 ‘미쳤다(crazy)’는 표현을 쓰지만 개인적으로도, 윌슨센터 부소장으로서도 이 표현을 쓰는 게 주저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김정은에겐 김정은 나름의 논리(rationale)가 있는데 우리에게 그 논리가 비논리적일 따름이다. 그에게 있어 최우선 순위는 정권 유지다. 그는 권력을 잡은 뒤 핵·경제 병진노선을 취해 왔다. 그러면서 상위 엘리트 계층에게 사치품 등을 나눠줬다. 그런 방식을 통해 김정은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상식적으로라면 북한 내부에서 민란이 일어나야 했지만 현재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이다. 김정은도 이 점이 가장 걱정될 것이다. 얼마나 오래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핵 개발에 더 매달리는 것이라고 본다.

=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란 핵 해결 방식이 북핵 해결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리트바크 = 핵 문제는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다. 미국 일각에서 이란 핵 협상을 두고 핵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고 이란의 인권 문제 등은 외면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급한 핵 문제를 해결한 뒤에 다른 문제를 파고들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단번에 성취하려고 하면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 북핵 문제는 어떤 전략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가.

리트바크 = 북핵에만 집중하는 외교 전략을 펼치려면 두 가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첫째,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모종의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그 정권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게 되는 일종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다. 둘째, 핵 동결이 우선시되어 결과적으로 북한은 여전히 소수이지만 핵탄두를 보유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15개의 핵탄두를 100개로 늘리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 아닌가.

= 두 개의 동심원을 가정해 보자. 바깥쪽 큰 원이 미·중 관계, 안쪽 작은 것이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다. 미국과 중국이 아·태 지역의 패권을 다투는 동심원의 구도에서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리트바크 = 정확한 비유다. 커닝을 하고 싶을 만큼 탐나는 설명이다(웃음). 그 동심원에서 현재 매우 중요한 부분이 중국이다. 최근 윌슨센터에 와 있는 중국의 한 학자가 ‘중국에 북한이 골칫거리(liability)가 되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상당히 의미가 있는 발언이다.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이런 발언을 했음이 틀림없다. 중국 학자가 이런 주장을 한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이 붕괴한다면 중국엔 끔찍한 재앙이다. 북한에서 난민이 중국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며, 주한미군은 중국의 국경까지 치고 올라갈 것이다.

= 중국을 어떻게 움직이나.

리트바크 = 한반도의 통일이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해서 설득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을 일종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삼고 싶어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기술 수준을 보고 중국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 북한이 원하는 건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일 것이다.

리트바크 = 중요한 건 북한이 핵 개발을 과연 멈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가하는 압박이 너무도 효과적인 나머지 북한 체제의 존속까지 위협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인데, 문제는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 달성까지 마지막 1마일을 갈 생각이 없다.

= 미국이 중국을 더 강하게 압박할 여지는 없는가.

리트바크 =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중국을 설득해야지 압박을 가하면 안 된다. 그래서 미국 국무부의 어깨가 무겁다. 미국이 중국에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북한에 실효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 이것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되리라 본다.

= 그사이 한국은 핵보유국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 살아가야 한다.

리트바크 =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선 북한이 핵탄두를 더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선 외교적인 조치를 다해야 한다.

로버트 리트바크는 …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부소장이자 국제안보연구소장이다. 조지타운대 외교대학(School of Foreign Service)의 비상근 교수직과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의 컨설턴트직도 맡고 있다. 리트바크는 빌 클린턴 1기 행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비확산 담당 국장이었다. 저서로는 『불량국가와 미국의 외교정책』 『냉전 이후의 봉쇄정책과 정권교체』 『9·11 프리즘을 통해 본 미국의 전략』 등이 있다. 리트바크는 또한 하버드·옥스퍼드대 등에서 외교 관련 펠로십을 받았으며, 미국 외교협회(CFR) 회원이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3년생.

김영희 칼럼니스트·대기자 정리 = 전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