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현리서 열리는 농민 프리마켓 ‘더불어 장터’
재미있는 시골 장이 선다고 해서 가봤다. 장터의 먹거리가 궁금했다. 음식 세계관의 확장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어쩌다 가본 장터에서 마구잡이로 겪은 체험은 각골난망(刻骨難忘; 뼈에 새긴 듯 잊기 어려움)의 추억이다. 추억이 강물로 흐르고 있다면 손오공 근두운을 빌려 타고라도 쫓아가 강에 몸을 던지고 싶을 만큼 그날들이 그립다. 그런 감상에 들떠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리 아침마루[朝宗]공원에서 열리는 ‘더불어 장터’에 흰 구름 같은 마음으로 흘러갔다. 이 장터는 현리 오일장(매 4일, 9일)과 일요일이 겹치는 날에 열린다. 4월 9일 첫 자리를 폈고, 지난달 14일에 이어 지난 일요일(4일) 세 번째 장이 열렸다. 다음 장날은 7월 9일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린다.
5월, 6월 장에 가봤다. 지난 일요일에는 동행 5명이 더 있었다. 가마솥에서 끓는 장터 국밥과 막걸리 한 잔을 기대하며 도착한 장터는 생각과 딴판이었다. 먹은 걸 중심으로 살펴보자. 아침에 집에서 쑨 두부, 콩죽, 졸참나무 도토리묵과 묵밥, 그 가루로 부친 산나물 전, 고로쇠 수액으로 담근 청주(동동주), 화덕 구이 잣단팥빵, 예가체프 커피, 치즈 스테이크와 수박, 치즈 쌍쌍바, 크림치즈 레인보우 부르스케타, 돼지고기 구이(굽기 전 300g 1만원)와 밭에서 뜯어온 상추쌈, 가래떡초코크런키, 수수조청과 가래떡, 무전, 취나물 밥. 음식을 살펴보면 전통은 도도히 흐르고, 새로운 음식은 범람한 해일처럼 터를 잡았다. 이런 별미를 3시간 30분 동안 전투적으로 먹었다. 일행의 결론은 자연스럽게 모였다. “맛있고 재미있다. 잘 먹었다.”
먹은 음식들 가운데 생소한 몇 가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인다. 콩죽은 불린 쌀을 콩즙에 넣고 쑨 죽이다. 지역에 따라 소면을 넣기도 한다. 졸참나무 도토리는 흔히 ‘총알도토리’라고 부르는데 동글고 걀쭉한 게 도토리 가운데 작은 편이다. 9월쯤 떨어지는 굵은 상수리보다 늦게 익어 10월에나 땅에 떨어진다. 도토리는 참나무속의 나무열매를 모두 일컫는다. 세계적으로 200여 종이 있다. 한국에서 식용하는 열매는 대체로 굴참나무·상수리나무·떡갈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 도토리다. 굵고 일찍 익는 도토리로 묵을 쑤면 색이 진하지만 찰기가 적다. 늦게 익는 졸참나무 ‘총알도토리’ 묵은 색이 연하지만 아주 차지다. 채친 묵을 젓가락으로 집어도 부러지지 않고 찰랑거린다.
화덕 구이 잣단팥빵은 가평~청평 사이 호명산 자락 계곡에 있는 카페 ‘달과 6펜스’에서 참나무장작 화덕에 구운 천연 발효종 단팥빵이다. 빵 배꼽에 가평 특산물인 잣 다섯 알을 새 둥지의 알처럼 보기 좋게 넣었다. 커피는 지역 주민이 직접 로스팅한 예가체프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내린 수제 커피다.
치즈 스테이크는 ‘연인산풍경 요리사의농원’ 안주인 정매연씨의 신제품이다. 치즈를 손바닥만하게 잘라 스테이크처럼 구웠다. 수박 속살을 치즈보다 큼지막하게 잘라 스테이크처럼 잘라 함께 먹게 했다. 궁합이 절묘했다. 수박이 치즈 맛을 또렷하게 살려줬다. 이 음식을 개발하고 첫 손님이 되었다. 정씨의 남편은 목장과 펜션을 운영한다. 아내는 남편이 생산한 우유로 치즈와 요거트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목장 앞에서 요리교실도 연다. 기존 대표상품은 치즈 쌍쌍바였다. 치즈를 잘라 손잡이 막대 두 개를 끼워 굽고 다 익으면 둘로 갈라서 먹는다. 모양이 비슷한 아이스바에서 힌트를 얻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이 쌍쌍바는 서울에서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도시형 농부시장 ‘마르쉐@’장터에서도 인기 품목이다. 크림치즈 레인보우 부르스케타는 주황·황·홍색 파프리카와 샐러리 줄기를 잘게 썰어 크림치즈에 따로 넣고 비빈 다음 구운 바게트에 색색으로 올린 서양식 음식이다.
가장 새롭게 본 상품은 가래떡초코크런키였다. 초코칩을 중탕으로 녹여 막대기 끼운 가래떡을 담가 코팅을 한 다음 4색 크런키 가루에 굴리면 완성되는 간단한 주전부리인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 전통과 새로운 것이 이렇게 어울려 추억과 새 전통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장에 나온 물건은 ▷농산물: 채소·잡곡·깨·들기름·과일잼 ▷축산물: 치즈·요거트·바비큐·유정란 ▷임산물: 잣·산나물·버섯·목기·꿀·도토리묵·야생과일청 ▷반찬류: 김치·장아찌·된장·고추장·청국장·간장, 그밖에도 화덕빵·커피, 손바느질 소품, 화훼류 등이다. 장날마다 바뀌는 2000~3000원짜리 장터 밥은 4월 뼈해장국, 5월 취나물 밥이 나왔고 6월에는 졸참나무 도토리 묵밥이었다. 즉석에서 전을 부쳐 팔기도 하고 막걸리도 있지만 장터에서 술을 사서 마시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팔러 나온 사람들은 모두 생산자이자 지역 주민들이다. 아는 사람들끼리 장을 벌였으니 물건이 빤하다. 그래서 품질을 속일 수도 없고 터무니 없는 값을 받을 수도 없다. 큰 돈을 벌자고 나온 것도 아니다. 물건이 있기는 한데 임자 만날 기회를 못 얻었으니 좋은 주인 만나 마땅한 쓰임새를 찾기 바랄 뿐이고, 그러다가 오랜만에 아는 사람 만나면 회포도 풀고 세상 공기와 호흡하려는 것뿐이다. 그런 인정의 사이를 오가다 우연히 들리는 소리. 한 아주머니가 손님의 물음에 답했다. “여기요? 뭐든지 다 팔아요. 사람만 빼고 있는 거 다 팔아요.”
이 장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만들었다. 뜻이 모아지기까지는 시간도 꽤 걸렸고,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보기에는 아담한 장터지만 장소 확보부터 이해관계의 조정까지 풀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장터에서 궂은 일 마다않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던 김현주씨다. 장터 일을 도우면서 동네에도 이런 장이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농민들에게 직거래 장터를 열어주고 장터를 통해 소통하면서 허물어져가는 공동체의 정서적 울타리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는 조종면 이웃인 상면 원흥리 주민이다. 초·중학교를 이 지역에서 나와 양쪽 마을 많은 사람들과 언니·오빠·동생으로 어울려 지낸다. 2개 면 유지들과 단체 여기 저기를 찾아 다니며 의견을 듣고 부탁하고 사정하며 애를 썼다.
장터를 열 준비가 되자 이번엔 장에 나올 사람이 문제였다. 또 일일이 찾아 나섰다. 장 잘 담그는 동네 아주머니, 산나물 많이 키우는 할머니, 두부와 도토리묵 잘 쑤는 자신의 친정어머니, 평소 오빠라 부르는 화덕빵 카페 주인, 3년 묵힌 장아찌가 맛있는 두 명의 경숙 언니 등 일일이 찾아서 함께 하자고 졸랐다. 집안 일은 팽개쳐두고 미친 듯이 쫓아다녔다. 초등학교 동기인 남편의 바깥활동 소식을 동네사람 통해서 들을 정도다. 그 과정을 꾸준히 도와준 사람은 ‘요리사의농원’ 요리사 정매연 언니다.
1년 가까운 기간을 준비해서 첫 장을 지난 4월 9일에 열었다. 장터의 구호는 '우분투(UBUNTU)'다. 컴퓨터 운영체체(OS) 리눅스의 무료 배포판 이름이기도 한 이 말을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영어) 공유[공동체] 정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한 영어사전은 ‘인간미,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관용’이라고 풀이했다. 아프리카 반투어에서 유래한 말로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of you)’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1918~2013)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만델라는 이 말이 존경·도움·나눔·공동체·보살핌·믿음·헌신과 같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리에서 열리는 ‘더불어 장터’는 이 정신을 조금이나마 구현해보려고 “우분투”를 구호로 외치며 장을 시작한다.
김현주씨는 장이 열리게 된 사연과 장터에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들 이야기를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ga5840&from=postList&categoryNo=68)에 소개했다. 소박하지만 꾸밈없는 진심이 글마다 가득해 명작과는 다른, 보석의 원석 같은 감동이 있다. 일부를 요약해 소개한다.
▶4월 13일 더불어 장터를 만듭니다(※4월 9일 장 후기)
2017년 첫 장을 열었습니다. 준비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요란한 준비를 할 것처럼 이야기 했는데 준비가 없어서 죄송했습니다. 화덕빵, 치즈 쌍쌍바, 요거트, 막걸리, 직접 로스팅한 커피, 들기름, 효소, 껍질 깐 들깨, 와인, 청국장, 된장, 조청, 가래떡, 토마토 고추장, 당귀 순, 김치, 그리고 제가 장터를 만들면 꼭 하고 싶었던 해장국. 돼지등뼈를 푹 고아서 된장 풀고 얼갈이·배추 우거지, 토란대 삶아 넣고 끓인 해장국. 다들 한 그릇씩 편안히 나눠 먹었습니다. 얼마나 팔았을까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웃지요. 얼마나 팔겠다고 이렇게 나왔느냐고 묻는 어른들께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많이 파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장터의 목표는 소통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농민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장터에서 돈도 벌고 소통도 하고, 그냥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함께 해서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분투니까요.
▶5월 17일 더불어하는 농민장터(※5월 14일 장 후기)
다들 농번기라 바쁘기 때문에 말씀도 못 드리고 혼자 서둡니다. 그 일을 왜 네가 혼자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냥 합니다. 그냥 좋아서 합니다. 언니가 빌려준 차가 없었더라면 짐 나르다가 지난 밤을 샐 뻔했습니다. 오전 7시 천막 칠 준비를 시작해 9시가 되자 암튼 장터 준비 끝. 6개의 파란 천막과 7개의 노란 파라솔이 자리를 잡고, 언니 오빠들 물건으로 채워졌습니다. 자원봉사 나온 23명의 중·고생과 초등학교 6학년 지연이까지 바글바글. 정말 장터가 세워졌습니다. 농민과 상가번영회와 주민들이 함께 만든 장터. 이날 장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머윗대 팔러 오신 연 어머니 6만5000원어치 완판하셨다고 몇 번씩 고개 숙이십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안 나온다고 하시더니, 팔 게 없어 안 나온다 하시더니 다행입니다. 안 팔려서 혼자 쭈삣거리고 계시면 누굴 시켜서라도 대신 사드리고 싶었던 연 어머니 머윗대. 어머니의 눈빛 때문에 나는 이 장터를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5월 20일 삼순이네 된장(※5월 14일 장 후기)
대보리에는 삼순이네 된장이 있습니다. 당신을 소개할 때면 꼭 "TV에 나온 김삼순이 아니라 홍삼순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그 분의 된장 이름을 ‘삼순이네 된장’이라 지었습니다. 삼순이네 된장·간장은 정말 다른 양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딱~~~~이었지요. 그래서 장터에 꼭 나오시라 부탁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주저하셨습니다. 집에 있어도 단골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어와 팔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하셨거든요. 그래도 장터에 나오시라는 이유는 딱 하나. 맛있는 된장을 먹어보고 '된장은 수퍼에서 사먹는 것이 아니라 담가 먹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장터가 끝난 뒤 제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너무 고마워 나를 장터에 나오게 해줘서"
"아, 완판하셨어요?"
"아니 다 팔지는 않고 우리 친정엄마랑 형님 동생 하면서 사시던 감골집 아줌마를 만났어. 정말 오랜만이야, 아줌마가 날 보고 막 달려오시는 거야"
마치 엄마를 만나신 듯 끌어안고 좋아하셨답니다. 너무 오랜만에 뵈었다고, 감골집 할머니가 늙으셨다고, 그래서 청국장 몇 개 싸드렸다고. 된장을 많이 판 게 아니라 감골집 아줌마 만나서 좋았다는, 그래서 장터 나오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는 그 분. 장터는 사람 만나러 나오는 거가 맞나 봐요. 자주 나오세요. 보다 열심히 장터를 만들게요.
▶5월 22일 식은 밥에 찬물에 말아 먹다가(※5월 14일 장 후기)
딸이 어버이날에 맛있는 것 사주겠다고,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묻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먹고 싶은 게 없습니다. 딸이 자꾸 재촉하니까 정말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식은 밥 찬물에 말아서 꼭 한 점 얹어 먹고 싶은 것. 무를 1년 동안 소금물에 담가 둡니다. 1년 뒤 꺼내 해가 들지 않는 반그늘에서 꾸둑꾸둑하게 하루 저녁 말립니다. 고추장 항아리에 다시 2년 묻어 둡니다. 3년 만에 무를 꺼내 찬물에 헹군 뒤 잘게 썰어 참기름 조금, 실파 송송 썰어 조금, 그리고 참깨 조금 넣어 조물조물 무칩니다. 식은 밥을 찬물 말아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이 조그만 장아찌 하나 올려 꼭꼭 씹습니다. 시원함, 고소함, 새콤함, 구수함, 달콤함, 매콤함... 형용하기 힘든 맛들이 입안에 점점 퍼지면 행복해집니다. 생각 없이 꼭꼭 씹다가 3년을 삭힌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달도 기다리기 힘들어 설탕·간장·식초 끓여 붓고 후다닥 피클로 만들어 버리는 나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 무장아찌 담은 항아리의 창호지가 빛에 바래서 누렇게 뜨고 세월에 지쳐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꾸~욱 참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잊지는 앉고 지내는 세월 3년. 그냥 묻어두고 잊으면 이 맛이 날까요? 절인 뒤 쓰다듬고, 들여다보고, 옮겨주고… 때때로 잘 있나 물어도 보고, 그렇게 3년을 지냈을 겁니다. 오물오물 씹다 보니 갑자기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긴 기다림으로 그리움을 만들어 주시는 분은 한경숙·이경숙, 두 경숙 언니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더불어하는 농민장터가 꿈꾸는 모습입니다.
▶5월 23일 봄취에 취하다(※5월 14일 장 후기)
장터에는 국밥이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나물밥에 양념간장 쓱쓱 비벼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나물밥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매연 언니가 더 좋아했다. “현주야, 취나물 밥이야. 우리 봄취에 실컷 취해보자. 마일리에 정말 대단한 취밭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할머니 취를 사서 밥을 하고 취나물을 팔아 드리는 거야.” 마일리로 가니 가파른 산 하나 가득 취나물이다. 꺾어 놓으시는 대로 장터에서 팔아 드릴 거라 말씀 드렸다.
취나물 밥. 취를 삶아 찬물에 우려 건져 놨다. 송송 썰어서 최철순 여사(※김현주씨 친정어머니)의 들기름과 홍삼순 여사의 조선간장을 넣어 약간 심심하게 무친다. 그리고 밥솥 안에 쌀을 담고 물을 맞춘다. 그 위에 무쳐놓은 취나물을 얹어 취사 버튼 누르면 끝. 밥을 앉힐 때 밥알이 안 보여야 나물밥이라고 조언을 들었건만(요리연구가 박종숙 선생님) 나름 밥에 일가견이 있다는 여자 삼총사(울 엄마 최철순, 영양사 박용숙, 그리고 달 언니)께서 하는 대로 놔두었더니 이렇게 멋진 밥이 나왔다. 그리고 황하순 여사의 맛있는 양념장, 위금순 언니의 배추김치. 취나물 밥 한 그릇 2000원.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오래 건강하게 살아 주셔서 고마우니까 무료. 2000원씩 받아 뭐 남겠냐고 하지만 그냥 좋다. 남는 돈 하나도 없어도 좋다. 그날 장터에 나온 취나물이 다 팔렸기 때문에 제대로 취나물 밥 장사를 한 것 같았다.
장터를 마치고 며칠 있다가 취밭에 다시 올라가봤다. 김은례 할머니. 20세에 서른 살 할아버지 만나 현재는 78세. 16년 전 혼자 되셔서 여태껏 마일리 꼭대기에서 취나물을 키우시면서 산다.
“할머니 취나물 많이 팔아서 좋죠? 장터에 나오세요.”
“나 늙어서… 추해서...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에이 안 나가. 요즘 허리가 너무 아파. 구부리고 일할 때는 좀 나은데 펴지지가 않아.”
장터에 정말 안 나오신다고 하시길래 할 수 없다고 내려갈 준비를 하는 우리들에게 슬쩍 건네는 말씀. “나 개복숭아청이 너무 많아. 괜찮다면 장터에서 좀 팔아줄 수 있겠어?”
우리 언니, 매연 언니는 그러마, 꼭 그렇게 하마 하시고는 돌아내려온다. 자기가 파는 요거트도 있건만. 줄 세워놓고 파는 치즈쌍쌍 바도 있건만 할머니 말씀에 토 달지 않고 그러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안다. 매연언니가 치즈 제쳐두고 복숭아청 파는 마담 언니로 변신할 거라는 것을. 연민의 눈이 아닌 가치를 알아주는 사랑의 눈을 가진 매연 언니가 참 고맙다.
현리 장터에 가려면 용산·왕십리·청량리역에서 ITX-청춘 열차를 타고 청평역에 내린 다음 청평터미널에 가서 현리행 버스를 타면 된다. 청평~현리 택시요금은 1만9000원 내외. 청량리역 버스환승센터에서 광역버스 1330-4(또는 44)번을 타도 간다. 문의는 김현주씨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203254336) 메신저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