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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생리에 대해 더 크게 말할 권리...'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매거진M]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화제작은 단연 ‘피의 연대기’였다. 여성이라면 매달 하고 있지만,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버자이너 모놀로그』 월경 버전 같아서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이 등장해 가감 없이 자신의 ‘생리사(史)’를 들려준다. 발랄하면서도 날카롭고, 따뜻하면서도 파격적이다. 문학을 전공하고 다큐멘터리 ‘우포늪의 사람들’(2014, 신성용 감독)에서 작가로 참여한 김보람(30)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지난해 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프로그램인 옥랑문화상을 받았다.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사진=정경애(STUDIO 706)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사진=정경애(STUDIO 706)

영화제를 앞두고 만난 김 감독은 “네덜란드 친구 샬롯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초경 때부터 탐폰을 썼고, 생리대는 써본 적이 없다”는 샬롯의 이야기에 문화 충격을 받은 것. ‘탐폰은 질 속에 넣는 것이니 몸에 좋지 않다’와 ‘축축하고 갑갑한 생리대는 찰 수 없다’는 설전은 김 감독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똑같이 피 흘리는데, 왜 생리용품을 대하는 자세는 문화권에 따라 이렇게 다를까.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김 감독은 월경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영화로 꿰뚫기로 한다. ‘월경 위키피디아’라는 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의 설명처럼 이 작품은 역사·종교·지역 등을 가로지르며 월경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금기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는 생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왜 한국 여성은 질에 삽입하는 탐폰이나 생리컵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역사학자, 산부인과 의사 등 전문가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또 생리에 대한 다채로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중학생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을 만났다. 인상 깊었던 건 대부분 자신의 몸과 질에 대해 잘 모르더란 것이다. “생리컵이나 탐폰을 사용하려면 손을 아래로 넣어서 자기 포궁의 길이를 재야 하는데 다들 거기서 막혔어요. 자신의 질에 손을 넣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내 질이 어떻게 생겼는지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사는 건 심각한 거 아닐까요. 또 그 곳이 지저분하다는 인식도 만연해 있었어요.”

김 감독은 직접 생리컵 체험에 나선다. 이 과정은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고프로를 머리에 쓰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생리컵에 담긴 새빨간 피를 보여준다. 그 이미지는 실로 파격적이면서 아름답다. 늘 일회용 생리대에 검붉게 응고되어 보지 못했던 예쁜 선홍색이다. “생리컵을 사용해보면서 내 몸을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어요.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컴플렉스였던 작은 가슴도 특색있고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었고,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순간이었어요.”

물론 이 영화가 생리컵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선택권에 대한 이야기로 보는게 옳다. 김 감독은 “한 고등학생을 인터뷰했는데, 수학여행 때 바나나 보트를 타기 위해 피임약을 먹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며 “탐폰을 쓸 수도 있는건데,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창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중고등학생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밖에도 김 감독은 저소득층 ‘깔창 생리대’ 논란과 더불어 생리대를 공공재로 인식해보자는 화두를 던진다. 공공기관 화장실에 무상 생리대를 놓는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 위스콘신주의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다.

생리에 대해 더 많이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것도 밝고 유쾌한 태도로.

김효은 기자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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