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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묻고, 차붐 부자 답하다..."너의 장점을 믿어라"

중앙일보

입력

차범근(가운데)-두리(왼쪽)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에이스 이승우(오른쪽)가 7일 서울 평창동 차범근 U-20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신인섭 기자

차범근(가운데)-두리(왼쪽)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에이스 이승우(오른쪽)가 7일 서울 평창동 차범근 U-20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신인섭 기자

"내가 독일에서 뛰던 시절에 함부르크에 케빈 키건(66)이라는 영국 선수가 왔어. 덩치는 조그마한데 엄청 빠르더라고. 장대숲 같은 수비수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영리하게 골을 넣는 모습에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해. 널 보면서 몇십 년 만에 그때 그 느낌이 되살아나더구나."(차범근)

차범근-두리 부자 찾아 고민 경험 나눈 이승우 #차붐 부자 "임대라도 꾸준히 뛸 수 있는 팀으로" #"유망주 A대표팀 뽑아 경험 쌓게 했으면" 제안 #이승우 "A대표팀 부를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 것"

"성인팀 도전을 앞두고 보니 감독님께서 유럽 무대에서 남긴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절실하게 느껴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이승우)

차범근(64) 20세 이하(U-20) 월드컵 축구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과 U-20 대표팀 에이스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A)가 만났다. 차 부위원장의 장남이자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선수였던 차두리(37) 전 축구대표팀 전력분석관도 자리를 함께 했다. 차 전 분석관은 최근 독일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지도자 A-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세 사람은 7일 서울 평창동 차 부위원장 자택에서 마주했다. 대화는 막바지로 향해 가는 U-20 월드컵 이야기로 시작해, 세 사람의 유럽 축구 도전기와 국가대표선수 경험 등 다양한 주제로 이어졌다. 45년 후배 이승우가 속내를 털어놓으면 45년 선배 차범근 부위원장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건넸다.

차범근(왼쪽)-두리(왼쪽에서 두번째)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승우(오른쪽에서 두번째)가 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차범근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맨 오른쪽은 이승우의 친형이자 에이전트 이승준 씨. 신인섭 기자

차범근(왼쪽)-두리(왼쪽에서 두번째)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공격수 이승우(오른쪽에서 두번째)가 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차범근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맨 오른쪽은 이승우의 친형이자 에이전트 이승준 씨. 신인섭 기자

한국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조별리그에선 초반 2연승으로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했지만, 16강전에서 포르투갈에게 1-3으로 져 탈락했다. 아쉬움은 이승우에게 새로운 도전욕을 불러 일으켰다. 14세 때 혈혈단신으로 스페인에 건너간 이후 줄곧 '바르셀로나 1군 진입'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 보며 뛰었던 그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선택도 '경우의 수'에 넣었다. 더 많은 1군 출장 기회를 보장 받기 위해서다. 그와 바르셀로나는 내년 6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현재 재계약 협상 중이다. 프랑스·독일·네덜란드·포르투갈 등 유럽 각지의 클럽들도 고액연봉과 1군 엔트리 보장 등의 조건을 제시하며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차범근 부위원장은 "포르투갈과 16강전 당시 현장에서 본 우리 선수들 몸 상태는 조별리그 때와 확연히 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긴장해서 잔뜩 굳어 있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몸이 풀리고 플레이가 살아나는 유럽·남미 선수들과 정반대 상황이 발생한 건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증거다"라며 "(이)승우 연령대 선수들은 좋은 기회를 얻으면 단기간에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임대나 이적을 통해서라도 경기 출장 횟수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팀을 옮긴다면 연봉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전술적 성향을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 잘해도 실패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차두리 전 분석관은 "(이승우가) 성인무대 데뷔가 늦어지는 것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바르셀로나의 1군은 전 세계 최강 팀이기 때문이다"며 "그런데 바꿔 말하면 그만큼 1군에 진입하거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1군 생존 가능성을 냉정히 따져 임대로라도 팀을 옮기는 게 합리적 대안"이라고 거들었다.

전 축구 국가대표인 차범근, 차두리(왼쪽)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에이스 이승우(오른쪽)가 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차범근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신인섭 기자

전 축구 국가대표인 차범근, 차두리(왼쪽)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에이스 이승우(오른쪽)가 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차범근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신인섭 기자

차붐(차범근 별명) 부자는 "대한축구협회가 이승우 같은 유망주들을 10대라도 성인대표팀에 발탁해 경기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차 부위원장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는 10대 후반의 유망주들을 번갈아가며 A대표팀에 합류시켜 선배들의 훈련 및 컨디션 관리 방법을 배우게 하는 시스템이 일반적"이라며 "나도 17세 때 대표팀에 뽑혔다. 당대 최고 공격수 이회택(71) 선배님과 슈팅 훈련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경험을 살려 1998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기술위원들과 싸운 끝에 당시 고등학생이던 (고)종수(39)와 (이)동국(전북·38)이를 엔트리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승우나 백승호(20·바르셀로나B) 같은 유망주를 당장 월드컵 최종예선에 출전시키라는 게 아니고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배울 기회를 주자는 뜻이다. 미래를 대비해야 대표팀도 건강해진다"고 덧붙였다.

A대표팀을 경험했던 차 전 분석관은 "대표팀 선수 발탁과 운영은 감독의 철학이자 고유 권한이다. 특히나 지금은 월드컵 최종예선 기간 중인 만큼 어린 선수를 뽑자는 논의 자체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면서도 "나도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훈련 파트너로 합류했다가 대표팀에 발탁됐다"며 "A팀에서 훈련하는 동안 매일 실력이 발전하는 게 느껴졌다.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 감독님이 나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뽑았을 때 신문 1면에 '차두리를 뽑은 건 큰 실수'라는 기사가 실려 마음고생도 했지만, 그 때 내 축구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스페인에서 여러 차례 귀화 제의가 있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 거절했다"며 "언제가 되든 A대표팀에서 부를 그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차범근(가운데)-두리(왼쪽)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에이스 이승우(오른쪽)가 7일 서울 평창동 차범근 U-20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신인섭 기자

차범근(가운데)-두리(왼쪽) 부자와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에이스 이승우(오른쪽)가 7일 서울 평창동 차범근 U-20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자택에서 만났다. 신인섭 기자

성인무대 도전을 앞둔 이승우의 고민은 작은 체구(키 1m70cm)다. 이승우는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으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지만 덩치 큰 수비수들과 맞닥뜨리면 간혹 겁이 날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고민을 들은 차 부위원장은 "지난 4월 잠비아 U-20팀과의 평가전 때 (이)승우가 골키퍼 키를 살짝 넘기는 칩슛으로 골 넣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며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런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단점 신경쓰지 말고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드리블 돌파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골을 만들어내는 천재성 같은, 이승우 특유의 장점들만 믿으라"고 조언했다. 차 전 분석관도 "다비드 실바(31·맨체스터시티)는 작고 발도 느리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거칠고 빠른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적응했다"며 "성인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특기로 승부를 걸어달라"고 당부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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