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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일본, 임대주택 버블 초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각 지방에서 개인 사업자가 짓는 일본식 아파트(연립주택) 등 임대주택이 급증하고 있다. [사진 전일본부동산협회 홈페이지]

일본 각 지방에서 개인 사업자가 짓는 일본식 아파트(연립주택) 등 임대주택이 급증하고 있다. [사진 전일본부동산협회 홈페이지]

일본 금융당국이 지방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임대주택 버블’ 현상에 긴장하고 있다.
2013년 4월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시행한 이후 시중에 풀린 자금이 제대로 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부동산 개발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절세 방안으로 개인들이 우후죽순 일본식 아파트(연립주택)나 맨션(아파트) 짓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일본 각 지방에서는 저출산과 초고령화, 인구 유출 등에 따른 빈집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 이로 인한 '일본판 서브프라임'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노믹스 이후 부동산 개발에 자금 쏠려 #지방은행 융자 역대 최고치…141조원 넘어 #임대주택 건설 1년 새 11.4% 늘어나 #"상속세 아낄 수 있다" 절세 대책으로 각광 #"관계자들 과잉 알지만 눈앞의 이익만 쫓아" #은행 융자금 갚으려 빚 내는 악순환 시작돼 #"日 금융당국, 심사 과정 면밀히 주시" # #

위기 징후는 지방은행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지방은행의 개인 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융자 잔고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7.2%포인트 늘어난 약 13조8000억 엔(약 141조1491억원)을 기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BOJ가 2009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고치”라면서 “7년 새 5조 엔(약 51조2575억원)이나 불었다”고 7일 전했다.
미쓰비시도쿄UFJ와 같은 대형은행들이 지속적으로 관련 대출을 줄여온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같은 기간 대형은행의 융자 잔고는 2조4000억 엔(약 24조6067억원) 정도 줄어 지난 3월 말 현재 8조6000억 엔(약 88조1740억원)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은행의 수익 구조가 부동산개발에 집중된 배경에는 지방경제의 쇠퇴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우량기업 대출이 어려워지자 지방은행들이 호경기에 힘입은 임대주택 건설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지난해 2월 BOJ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해 은행 간 초저금리 경쟁이 심화되면서 부동산개발 융자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초고령화에 따라 일본 전역에서 빈집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초고령화에 따라 일본 전역에서 빈집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신인섭 기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면서 일본 전역에서는 임대주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지난해 착공을 시작한 임대주택이 재작년 대비 11.4%포인트 증가한 42만7275호에 달했다.
역시 2008년도 이후 최고치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임대주택 건설 붐은 2015년 1월 상속세 인상 조치 이후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건설업자들은 나대지에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을 경우 평가액을 낮춰 절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주들을 부추겼다.
그러자 논밭 한 가운데 2층 연립주택을 짓는 등 수익성이 의심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구 28만 명의 미에(三重)현 쓰(津)시도 변화를 몸으로 겪고 있다.
이미 빈집이 넘쳐나는 데도 바로 인근에 또다시 연립주택을 짓는 기현상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부동산업자들은 이런 임대주택들을 ‘아파트 긴자(銀座: 은행계좌란 뜻으로 은행 빚으로 지은 주택을 의미)’라는 과거 버블 시기의 유행어에 빗대고 있는 실정이다.
마이니치는 대형 부동산업체 현지 지점장의 입을 빌려 “명백히 공급 과잉이다. 관계자는 모두 알고 있지만 건설회사도 융자를 내주는 지방은행도 눈앞의 이익만 쫓기 때문에 공세를 멈추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미 시작됐다.
나고야(名古屋)의 한 임대업자는 “입주자가 없어 월세를 받지 못하다 보니 은행 대출을 갚기 위해 또 빚을 지는 업자들이 있다”면서 “임대주택을 매각해도 융자를 다 갚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금융당국도 문제의식을 갖고 심각히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청은 지난해 12월 융자잔고를 늘린 12개 지방은행을 추출해 상세한 계약 내용을 제출토록 했다.
충분히 심사하고 대출한 것인지 융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BOJ도 지난 4월 발표한 관련 보고서에서 “심사 과정에서 주변 건물의 입주율이나 인구 변화 등 수급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 지방 금융기관이 70% 정도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은행에서 출발해 일본 금융기관 전반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위기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BOJ 금융기구국은 “2008년 리먼 쇼크와 같은 부동산 급락 사태를 맞을 경우 대출액이 많은 금융기관은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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