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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이는 강남 웨딩업계 "결혼식도 양극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본 건물의 임차인 강남 라루체 웨딩홀은 부도처리됐습니다.’

지난달 12일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웨딩홀 ‘라루체’ 정문에 안내문 한 장이 붙었다. 이곳은 300~450석 규모의 연회장과 예식장, 지하주차장을 갖춘 6층 규모의 대형 웨딩 컨벤션이다. 업체 대표 고모씨는 “불황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진 상태에서 어음 사기까지 겹쳤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강남 라루체 웨딩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폐업했다. 임현동 기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강남 라루체 웨딩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폐업했다. 임현동 기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강남 라루체 웨딩홀 입구에 계약해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임현동 기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강남 라루체 웨딩홀 입구에 계약해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달 30일에는 청담동의 한 웨딩컨설팅 업체 대표 A(40)씨가 자살을 시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업 악화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오다 가족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수면제를 복용했다.

웨딩의 메카 강남이 흔들리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월 394곳이던 강남의 예식장ㆍ예식서비스 업체는 현재 270여 곳만이 남아있다. 지난 1년간 30%가량이 문을 닫은 셈이다.

비혼과 만혼의 흐름이 짙어진 게 1차적인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2006년 33만 건에서 지난해 28만 1600건으로 감소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남녀의 평균 결혼 나이는 각각 35.8세, 32.7세로 10년 전에 비해 2.4년이 늦어졌다.

결혼식 트렌드가 ‘작은 결혼식’이나 ‘호텔 결혼식’으로 양극화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소박한 ‘작은 결혼식’과 럭셔리한 ‘호텔 결혼식’이 유행하면서 ‘준고급형’으로 입지가 어정쩡한 강남 웨딩홀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작은 결혼식’은 대형 웨딩홀 대신 레스토랑ㆍ관공서ㆍ공원 등에서 100명 안팎의 가까운 지인만 초대해 치르는 결혼식이다. 예물과 예단, 스드메(스튜디오ㆍ드레스ㆍ메이크업)라 불리는 부대비용도 최소화한다.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린 이항주(30)씨는 “하객 절반 이상이 모르는 사람인 웨딩홀 결혼식보다는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며 지인 70여 명만을 결혼식에 초대했다.

작은 결혼식에 대한 정부이 지원도 활성화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작은 결혼식 장소로 개방된 공공시설은 2013년 132곳에서 현재 231곳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모두 1632쌍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달 20일 종로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하객 70여명을 초대해 열린 작은 결혼식.

지난 달 20일 종로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하객 70여명을 초대해 열린 작은 결혼식.

호화 결혼식의 상징인 ‘호텔 결혼식’의 인기도 여전하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올해의 주요 트렌드로 선정한 ‘YOLO(You Only Live Once의 약자. 자기만족과 현재를 우선하는 소비성향을 뜻함)’문화의 한 측면으로 풀이된다.

지난 2월 서울 장충동의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 회사원 정모(31)씨는 “1시간 남짓한 결혼식에 1년치 연봉을 전부 쏟아 붓는 게 부담은 됐다”면서도 “이왕 한 번 하는 결혼식인데 배우자에게 최고의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관계자는 “경제불황으로 웨딩산업 전반이 침체기지만 호텔 웨딩에 대한 수요는 큰 변함이 없다. 야외수영장에서 열리는 결혼식의 경우 상당히 비싸지만 고객 문의는 꾸준히 들어온다”고 말했다.

호텔 웨딩의 경우 평균적으로 300명 이상의 하객을 초대해 1인당 10만~20만원의 식사를 제공한다.

야외 수영장에서 열리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의 '오아시스 웨딩'. 사진 반얀트리

야외 수영장에서 열리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의 '오아시스 웨딩'. 사진 반얀트리

줄어든 강남 대형 웨딩홀의 인기는 웨딩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을 입힌다. 대형 웨딩홀의 경우 매달 임대료만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까지 나오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드레스 업체, 한복 업체, 꽃장식 업체, 사진 스튜디오 등 관련업계 10여 곳이 공동출자 형식으로 운영한다. 웨딩홀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이들 모두가 손님이 끊기는 셈이다.

청담동의 한 한복업체 대표는 “작은 결혼식이 유행하면서 한복을 입지 않는 부부가 급격히 늘고 있다. 5년 전 고객 수를 100이라고 할 때 3년 전은 30, 지금은 사실상 0에 가깝다”고 말했다.

강남구 논현동의 한 사진 스튜디오 대표 권모(45)씨는 “손님이 줄어들면서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붙고 있다. 웨딩 촬영을 위해 방문하던 중국인 단체 손님들까지 (한한령으로) 모두 사라져 가게 문을 곧 닫아야 할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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