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보이즈’ 대책없으면 어때, 꿈이 있는데!

중앙일보

입력 2017.06.05 11:06

 노래가 하고 싶어 모인 일록(백승환), 예건(이웅빈), 대용(신민재), 준세(김충길). 네 남자의 밑도 끝도 없는 사중창 대회 도전기를 그린 ‘델타 보이즈’(6월 8일 개봉, 고봉수 감독).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암울한 현실에서도 대책 없이 당당한 이들을 따뜻하면서도 유쾌하게 품어주는 연출에 놀라고,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에 다시 한번 놀란다. 척하면 척, ‘감독과 배우의 찰떡 호흡이란 게 바로 이것이다!’ 알려주는 영화라고 할까.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 인디포럼 올해의 관객상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독립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받은 ‘델타 보이즈’.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고봉수(41) 감독과 배우 백승환(31), 신민재(34), 김충길(29), 윤지혜(29)를 만났다. 이들은 “개봉을 한다는 게 정말 기쁘고, 꿈만 같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델타 보이즈’

‘델타 보이즈’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1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고봉수 감독(이하 고 감독) “정말 오랫동안 바라던 순간이다. 그래서 아직은 모든 게 꿈만 같다. 극장에 걸린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정말 궁금하다.”

신민재 “‘델타 보이즈’는 제작비 250만 원으로 만든 영화다. ‘기적 같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윤지혜 “개봉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꿈을 이루기보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첫 장편영화다. ‘델타보이즈’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고 감독 “백승환, 이웅빈, 신민재, 김충길 배우와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찍고, 호흡을 맞추면서 ‘이들과 함께 장편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영화를 기획하던 중 우연히 흑인 남성 사중창 그룹 델타 리듬 보이즈의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제리코의 싸움)’ 공연 영상을 보게 됐고, 남성 사중창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침 우리 남자 배우도 네 명이고, 이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제작비가 250만원이다. 저예산으로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게 힘들진 않았나.

고 감독 “오히려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컸다. 생활고를 겪는 게 힘들지, 영화를 찍을 땐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았다.”

‘델타 보이즈’ 백승환

‘델타 보이즈’ 백승환

4명의 캐릭터가 모두 매력적이다. 감독님의 애정이 가득 느껴지던데.

고 감독 “오랫동안 봐오면서 각자의 매력을 알게 됐다. 그걸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이고 싶었다.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모습이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된다.”

윤지혜 “감독님이 내 성격을 정확히 파악해서 깜짝 놀랐다. 성질 더러운 건 우리 엄마밖에 모르는데, 그걸 감독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다(일동 웃음).”

고 감독 “지혜 배우는 교회 캠프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찬 느낌이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하게 됐다.”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인지, 어느 순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았다.

고 감독 “배우들에게 기본적인 설정과 내용을 알려주고, 리허설을 두 번 정도 했다. 그리고 바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도록 했다. 상황을 주고, 마음껏 놀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거지. 워낙 실력이 출중한 배우들이라 알아서 잘 하더라.”

백승환 “솔직히 말하면, ‘델타 보이즈’를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본을 숙지하고, 컷을 나눠서 촬영한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연기를 하고 있어야 했으니까. 대부분 롱테이크로 촬영을 하다 보니, 웃음이 터지는 상황이 생겨도 계속 연기를 해야 했다.”

고 감독 “카메라 한 대로 촬영을 했고, 모든 연기가 애드리브라서 롱테이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델타 보이즈’ 신민재

‘델타 보이즈’ 신민재

현장에서 배우들의 애드리브 연기를 지켜보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놀라웠을 거 같다. 

백승환 “감독님은 우리에게 연기를 시켜놓고 보는 걸 재미있어 한다.”

윤지혜 “감독 겸 관객이라고 보면 된다.”

김충길 “연기하는 우리보다 현장에서 제일 신나 보인다. 카메라 뒤에서 늘 웃고 있다. 본인 웃음소리 때문에 NG가 날까봐 ‘튼튼이의 모험’을 촬영할 땐, 아예 밖에 나간 적도 있다. 우리끼리 끝내고 감독님을 불렀다(일동 웃음).”

윤지혜 “도대체 어디가 웃긴 건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혼자 웃으신다.”

영화 속에서 삼겹살, 햄버거 등 음식을 먹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특히 일록과 예건은 매번 라면을 먹더라.

고 감독 “누구든 모이면 뭘 먹고 시작하지 않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특히 라면이 자주 등장한 건 그들의 사정이 어렵고,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어서다. 삽겹살은 우리 모두의 사심이 들어간 음식이다. 촬영 소품이 곧 우리의 한 끼 식사였기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으로 골랐다.”

준세와 지혜를 제외하고, 캐릭터들의 헤어스타일이 정말 독특하다.

백승환 “방금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게 미리 한 달 전에 레게 머리를 해서 두 달 가까이 그 스타일로 지냈다. 잘 때도 불편하고, 머리 감는 것도 힘들어서 빨리 뜯어내고 싶더라.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스타일이었는데 다신 하지 않을 거다.”

신민재 “감독님 아버님 친구 중에 맥가이버 머리를 고수하는 분이 계신데, 묘한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 동네에 그런 분들이 꼭 한명씩 있지 않나. 대용이가 시대착오적인 인물이길 원하셔서 바로 맥가이버 스타일로 결정했다.”

일록의 경우,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마주하고, 스스로 뺨을 때리면서 감정을 푼다. 그때 카메라는 거울 속 얼굴을 비추는데, 어떤 의도가 있는 건가. 

고 감독 “허공에 대고 화를 내는 것보다 거울을 보고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가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 나에게 짜증나는 경우가 있지 않나(웃음). 그걸 영화에 반영하고 싶었다.”

백승환 “그 장면은 나와 감독님, 오디오 잡아주는 형까지 셋만 남아서 촬영을 한 거다. ‘빨리 때리고 끝내자’는 생각으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연기했다. 그래서 민망하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고 감독 “덧붙이자면,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원래 없던 설정이었다. 집중하는 순간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것 같더라.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울컥했다.”

‘델타 보이즈’ 윤지혜

‘델타 보이즈’ 윤지혜

도넛 장사를 하는 준세와 지혜의 부부싸움이 정말 현실적이더라. 몸싸움도 있어서 촬영이 힘들었을 거 같은데.

윤지혜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리허설 한 번 하고 바로 다음 날 싸우는 촬영을 했다. 그 때 감독님이 ‘여자 배우가 하기에 어려운 연기지만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서로 머리를 잡아당기고 육탄전을 심하게 해도 된다고 해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충길이를 정말 많이 때렸다. 아팠을 거다.”

김충길 “아프지 않았다. 둘 다 워낙 몰입을 해서 즐겁게 촬영했다.”

윤지혜 “연기를 정말 잘 받아줬다.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빴을 텐데 그걸 연기로 승화시키더라.”

김충길 “촬영할 때 한번 크게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애드리브를 하다가 더 재미있게 하려고 설탕을 던졌는데 많은 양이 지혜 옷 속으로 들어갔다. 더운 여름에 얼마나 찝찝했겠나. 그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잘 참아줘서 고마웠다.”

마지막 부분에 대용의 긴 독백이 인상적이었다. 거의 4분 가까이 되더라.

신민재 “4분이나 되는지 몰랐다(웃음). 감독님이 단편 찍을 때부터 독백을 해보라고 시켰다. 이번에도 독백을 준비하라고 하더라.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헤어스타일이 떠올랐다. 김병지와 비슷한 스타일이니까 그를 소재로, 나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전달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학창시절에 생각한 것들, 연기를 대하는 태도, 동료와 작업하는 느낌을 더해 독백을 만들었다.”

백승환 “NG 없이 한 번에 갔었나?”

신민재 “너무 길어서 한 번 NG가 났고, 조금 줄인 버전으로 바로 오케이 받았다.”

배우들 연기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거 같다.

고 감독 “연기에 대해선 진정한 고수들이다.”
신민재 “이제 감독님의 믿음이 점점 부담된다(일동 웃음). 사실 그 정도는 아닌데, 사기 당했다는 기분이 들까봐 걱정된다.”

김충길 “‘너희들을 내가 너무 높게 봤다’고 하실까봐 불안하긴 하다.”

‘델타 보이즈’ 김충길

‘델타 보이즈’ 김충길

백승환 “밑천이 다 떨어진 기분이다. 감독님과 8편정도 함께 작업을 했는데, 다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건 엔딩 장면에 딱 한 번 등장한다.

김충길 “감독님이 엔딩을 한번만 촬영한다고 했다. ‘잘하든 못하든, 중간에 틀려도 그냥 끝낸다’고 하더라. 얼마나 긴장한 상태로 노래를 불렀는지 모른다. 그래서 몇몇 동작이 틀렸는데 그대로 실렸다. 노래 끝나니까 정말 딱 촬영을 마쳤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튼튼이의 모험’이 상영됐다. 또 다른 차기작이 있나. 

고 감독 “멜로영화를 준비 중이다. ‘델타 보이즈’는 승환 배우, ‘튼튼이의 모험’은 충길 배우가 중심인물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민재 배우다.”

신민재 “운 좋게 내가 멜로를 하게 됐다. 기괴한 멜로영화가 나올 거 같다.”

‘델타 보이즈’

‘델타 보이즈’

‘델타 보이즈’를 왜 봐야할까.

고 감독 “대한민국에 이런 배우들이 있다는 걸 소개해주고 싶다. 나에겐 이들이 대니얼 데이 루이스(김충길)고, 알 파치노(신민재)고, 로버트 드니로(백승환)고, 메릴 스트립(윤지혜)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배우들의 미친 연기를 직접 확인하고 사랑해주시길 바란다.”

김충길 “내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나도 사실 배우가 꿈이었는데’ 하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하면 대부분 ‘내가 무슨 연기를 해’라고 자신 없게 말한다. 나는 이런 친구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걸 끝까지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 그리고 주위에 영화 연출이 꿈인 친구들을 보면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할 때까지 도전하지 않더라. 이 영화가 화제가 돼서, 영화는 돈으로만 찍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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