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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추락하는 한국당엔 날개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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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위기다. “‘차떼기당’으로 몰려 천막당사를 차렸던 2004년 한나라당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지난 2일 갤럽 여론조사에선 한국당 지지율이 국민의당ㆍ바른정당과 같은 8%였다. 의석수 107석인 원내 제1야당의 초라한 현주소다. 특히 당의 교두보였던 대구ㆍ경북(TK)에서조차 바른정당에 역전당했다. TK 정당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33%) 1위, 바른정당(22%), 한국당(18%) 순이었다.(자세한 결과는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지난 1~2일 충북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열렸다. 사진=박성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지난 1~2일 충북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열렸다. 사진=박성훈

한국당은 지난 1~2일 충북 단양에서 의원-당협위원장 등 200여 명이 모이는 연석회의를 열었다. 대선 패배 후 당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회의장 단상 뒤엔 “혁신하고 소통하겠습니다”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보수 쇄신’ 구호에 그친 자유한국당 연석회의

눈길을 끈 건  20대의 목소리를 듣는 ‘청년 쓴소리’ 코너였다. 외부에서 초청된 ‘청년정치크루’ 운영자 이동수씨는 “보편적 상식 가진 대학생 한 명도 한국당 지지 안한다. 이 정당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라며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 쓴소리를 했다. 성보빈 한국당 대학생위원회 대변인은 “한국당이 언제까지 종북 프레임으로 60대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만 붙들고 있어야 하나. 이제는 개혁ㆍ혁신이란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청년층의 의견이 여과없이 쏟아졌지만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20대는 정유라에 대해선 비판하고 문준용(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의 부정 취업은 왜 비판하지 않나”(정준길 대변인), “다른 당과 비교해서 정확히 지적해야 된다”(정우택 원내대표)는 정도에 그쳤다.

1일 한국당 연석회의 '청년쓴소리 코너'에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진=박성훈

1일 한국당 연석회의 '청년쓴소리 코너'에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진=박성훈

소설가 복거일씨는 ‘자유한국당의 혁신과제’ 특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수의 이념적 정체성 확립이 우선돼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정부를 부정하는 것을 막기 위한 용기한 시도”라고 말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었지만 문제제기는 없었다. 강연이 끝난 뒤 한 초선 의원은 “보수가 나아갈 길을 분명히 제시한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국민 다수의 정서와 여전히 괴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의원들은 당의 문제점에 대해선 ▶당원 교육이 부족하다 ▶선거형태가 바뀌어 SNS나 트위터 팔로우 지원이 필요하다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바른정당과 당대당 통합이나 후보 통합 논의가 필요하다 ▶ 특단의 언론대책위 설립이 시급하다 등의 의견을 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 임이자 의원은 “당시 새누리당 구성원들이 패배의식 빠져서 허둥지둥했고 조기 대선 전략 수립에 실패했다”며 “우리가 시대정신을 읽지 못해 노동자ㆍ청년ㆍ여성 외연 확대를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 제기는 많았지만 계파 청산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구체적인 당 쇄신 방안도 나오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보수를 혁신하기 위한 성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남지역의 한 재선의원은 회의가 끝난 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토론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당내 개혁에 소극적인 분위기는 다른 데서도 감지됐다. 이번 연찬회는 7월 3일 전당대회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열렸다. 원내 의원과 전국 원외위원장이 동시에 모인 자리인데 인사를 하고 다니는 의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 대표 출마를 염두에 둔 의원들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다. 당 관계자는 “모두 쉬쉬하며 피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고전할 것이 뻔한데 총대 매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진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을 만들어내는데, 보수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나올때까지 대책없이 기다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연석회의 첫날 저녁 취재진과 한국당 의원들과 저녁 자리에서 한 의원의 건배사다. “이제 한국당이 9년 만에 야당이 됐으니, 위하‘여’가 아니라 위하‘야’로 하자. 위하‘야’”

한국당은 이날 “철저한 쇄신을 통해 새로운 보수,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겠다“고 결의문을 냈다. 정부 정책을 비판만 하는 것이 야당의 역할은 아닐 게다. 해법도 찾지 못한 한국당이 건배사만 바꾼 건 아닐지.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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