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지혜 빌려달라"...반 전 총장 "한미 정상회담, 정중하면서 당당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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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110분간 오찬 회동을 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두분이 예정된 70분을 한참 동안 넘기며 외교 현안 등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 활동을 위해 지난 4월 출국했던 반 전 총장은 1일 귀국했다.

여정부 시절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과 반기문 당시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여정부 시절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과 반기문 당시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오찬은 박 대변인만 배석했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먼저 “국내정치는 소통을 하면서 풀어가면 되지만 외교문제는 걱정"이라며 "경험과 지혜를 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특히 6월하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화제에 올랐다.
 반 전 총장은 “정중하면서도 당당하게 임하는 것이 좋다”며 “한ㆍ미 동맹이 초석이란 인식을 갖고 북핵에 대한 한ㆍ미간의 공통분모를 잘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를 포괄적, 단계적, 근원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철학은 미국과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새 정부가 출발을 잘 해서 국민 지지를 크게 받고 있고, 미국 조야(정부와 민간)에서도 높은 평가와 기대를 함께 하고 있다”며 “미국에서 주로 만난 정부 인사들도 한국에 대한 걱정들을 많이 하면서도 새정부에 대해 기대가 많다”고 전했다.

청와대 본관 백악실서 110분간 오찬 '독대' #반기문 전 총장 "북핵 관련 한ㆍ미간 공통분모 활용해야" #청와대, 사드 관련 오찬 내용은 공개 않기로 #문 대통령, 과거 대담집에서 "반기문, 너무나 친미적" 평가

  한ㆍ미 현안인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한 대화도 오고 갔지만 청와대는 이를 공개않기로 했다. 박 대변인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술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게 두 분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대북 정책과 관련, 반 전 총장은 “초기에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북한에 원칙적인 자세를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며 “대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일도 중요한데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접근이나 평창 동계올림픽 등 비교적 이견이 적은 비정치적 방법 등을 활용하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문 대통령이 소집을 지시한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상임위원회와 관련해 “상임위 성명을 보니 매우 적절한 수준이어서 잘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오찬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도 새 정부의 외교정책 수립과 외교현안 해결에 많은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에 반 전 총장은 “대통령 말씀이 있지 않아도 연설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입장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며 “언제든 대통령과 새 정부의 자문 요청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답했다. 오찬에선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이날 문 대통령은 오찬장 입구에 나가 반 전 총장을 직접 맞았다. 오찬이 끝난 뒤에는 1층 현관까지 내려가 반 전 총장을 배웅했다. 문 전 대통령과 반 전 총장은 대선경쟁자였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과 외교보좌관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당시 반 전 총장을 외교보좌관으로 발탁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대선정국에서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선 반 전 총장에 대해 “너무나 친미적이어서 미국의 요구를 절대 거부할 줄 모른다”고 혹평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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