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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딩도 '카공족' 합류..."반갑다"는 프랜차이즈vs"고민 많다"는 동네 카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1일 오후 프랜차이즈 카페 ‘탐앤탐스’ 서울대입구점은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3층 좌석을 채운 30여 명 대부분이 밑줄을 그어 가며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카페 한쪽에서 두꺼운 재정학 교재를 읽던 서울대생 한경록(27)씨는 “학교 중앙도서관에선 책 넘기는 소리만 내도 눈치가 보여 카페를 찾았다”고 말했다.

‘공부하러 도서관에 간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 전국에 퍼져 있는 9만여 개(지난 4월 소상공인진흥공단 조사 결과)의 카페들이 도서관 겸 사무실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어서다. ‘카공(카페에서 공부하는)족’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다.

[새터데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인 '카공족'  학생들이 31일 서울대 인근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20170531

[새터데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인 '카공족'  학생들이 31일 서울대 인근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20170531

20~30대가 주로 찾는 구인ㆍ구직 전문 사이트 ‘알바천국’의 설문조사 결과도 이런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알바천국이 지난달 이용자 765명을 대상으로 ‘공부나 독서, 노트북 작업을 위해 주로 찾는 공간’을 묻자 64.9%가 카페라고 답했다.

IT기업에 다니며 주말마다 시민 기자 사이트에 기사를 기고하는 신모(27)씨의 작업실은 집 앞 작은 카페다. 신씨는 “현대인에게 도서관보다 카페의 접근성이 월등히 좋다”며 “도서관은 각 구에 3~5곳 정도 있지만 카페는 반경 100m 안에서도 대여섯 곳씩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도서관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카페의 매력이다. 신씨는 “필기를 하거나 타이핑을 할 때 눈치가 안 보인다. 또 커피나 와인을 즐기면서 책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페 업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적극적으로 카공족들을 잡겠다는 입장인 반면 동네 작은 카페들은 카공족이 반갑지만은 않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테이크아웃 손님이 많고 좌석 여유도 있어 카공족들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오히려 편하게 일하기 좋은 사랑방이란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서울 서교동에서 테이블 10개 남짓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좌석이 적고 테이크아웃 수요가 많지 않은 동네 카페에서는 음료 한 잔을 5000원으로 계산했을 때 한 사람이 2시간마다 한 잔씩은 주문해 줘야 수익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은 오후 2시쯤 회의를 하러 들른 사람들이 오후 8시까지 있었다. 점심, 저녁을 교대로 나가서 먹고 왔다. 음료 강제 주문 규정을 만들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알바천국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1.31%가 “한번 카페에 가면 3~4시간 정도는 머무른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카공족 전성 시대에 맞춰 카페 주인과 손님들 간에 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주 바쁜 시간대가 아닌 이상 오래 앉아 있기 좋은 카페로 입소문이 나는 것은 동네 카페에도 이득이다. 다만 ‘진상 손님’들의 행동을 막기 위해 3시간이 지나면 음료 한 잔을 추가 주문하는 등의 룰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카공족은 성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고등학생 이가빈(16)양은 대치동 ‘투썸 플레이스’에 들어와 테이블에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대치동 한 카페에서 고등학생 이가빈(16)양이 수학 숙제를 하고 있다. 김나한 기자

대치동 한 카페에서 고등학생 이가빈(16)양이 수학 숙제를 하고 있다. 김나한 기자

가빈양은 “학원 가기 전에 숙제를 하려고 들어왔다. 집중이 잘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1㎞ 정도 떨어진 한 카페에서는 중학교 1학년인 강모(13)군이 영어 교과서를 읽고 있었다. 공부한 지 3시간 정도 됐다는 강군은 “일주일에 서너 번은 카페에 온다. 도서관은 오히려 만화책 같은 유혹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카공족' 유혹하는 백색소음

알바천국의 설문조사에서 ‘카공족’ 528명 중 116명은 “약간의 백색소음이 있는 게 집중이 더 잘 된다”고 말했다.
백색소음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자연의 소리다.
배명진 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장은 백색소음이라는 단어가 태양광을 뜻하는 백색광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배 소장은 “태양광은 빨ㆍ주ㆍ노ㆍ초ㆍ파ㆍ남ㆍ보 일곱 가지 빛깔이 섞인 색이다. 백색소음도 도ㆍ레ㆍ미ㆍ파ㆍ솔ㆍ라ㆍ시 일곱 가지 음계가 섞인 소리라고 해서 ‘백색’이란 단어가 붙었다”고 말했다.
배 소장에 따르면 폭포나 비바람 같은 자연의 소리는 모두 백색소음이다. 그는 “백색소음은 특별한 내용을 담지 않아 방해는 안 되면서 적막감과 외로움은 달래주기 때문에 더 오래 집중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집중이 잘 되는 소리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녹음된 백색소음을 틀어놓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여러가지 종류의 백색소음을 담은 모바일 앱들도 속속 출시됐다. 이런 앱들에 담긴 소음에는 ‘홍익대 근처 A 카페의 소리’처럼 특정 카페 내의 잡담 소리들도 포함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개인과외 장소도 집에서 카페로 옮겨졌다. 강군이 공부하던 카페 한쪽 구석에서는 재수생 오승준(19)씨가 양지원(18)양에게 국어와 화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오씨는 카페를 선택한 이유로 “집에서 하면 학부모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카페에선 편안한 마음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양도 “자유롭고 통제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대치동 한 카페에서 오승준(19)씨가 과외 수업을 하고 있다. 윤재영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대치동 한 카페에서 오승준(19)씨가 과외 수업을 하고 있다. 윤재영 기자

김나한ㆍ윤재영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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