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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왜 AI 후진국이 됐냐고 물으신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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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임미진 산업부 기자

임미진 산업부 기자

우리는 어쩌다 인공지능(AI) 후진국이 됐을까. 한국의 인공지능 관련 논문 수는 미국·중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고, 인도·스페인·캐나다에도 뒤진다. 국내 이동통신 업계 전체의 AI 인력을 합쳐도 아마존(4000명)의 8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중앙일보 5월 30일자 1·8면> 첨단 기술 강국을 자처하던 우리가 왜 AI 분야에선 이리 뒤처지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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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질문은 “우리는 왜 창업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을까”라거나 “우리는 왜 기초과학의 뿌리가 약할까”라는 질문과 비슷하다. 하루 이틀 나온 질문도 아니고, 답을 한두 번쯤 들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며, 원인이 한두 가지로 요약되지도 않는 데다, 무엇보다 해법도 모호하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 조카가(혹은 아이가)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많은 고등학생이야. 대학에서 뭘 전공하면 좋을까. 미래 직업으론 뭘 추천하겠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선 고정돼 있었다.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 영재가 ‘과감히’ 적성을 살려 공학이나 기초 과학을 전공하겠다고 나서면 주변의 축하와 격려를 받았을까. 과학 내지 공학을 전공하고 난 뒤 이 영재는 어떤 직업을 택할 수 있었을까. 그 직업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키우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었을까. 지난 20년을 돌아보자면 그러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척박한 연구 환경 등을 고려하면 이 영재는 오히려 “왜 나도 의대를 가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깨달음이 후대에 전승돼 이공계 기피는 갈수록 심해졌다. “뽑을래야 뽑을 인력이 없다”는 AI 인력난은 상당 부분 여기에 기인한다.

지금은 뒤졌지만, 20년 뒤엔 우리도 AI 강국이 될 수 있을까. 현실을 살펴보면 걱정이 앞선다. 많은 대학생이 컴퓨터 공학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대학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은 컴퓨터 전공자가 600명을 훌쩍 넘는데,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정원은 몇년째 55명으로 고정돼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여전히 개발자를 ‘시키는 대로 프로그램 짜는 하청 인력’처럼 취급한다. 국내 S급 컴퓨터 인력의 최대 목표는 구글·아마존·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인력이 실리콘밸리로 빠져나가고 있다.

미래를 내다 본 장기적 투자, 과학·공학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은 오래 전부터 강조돼 왔다. 얼마나 빨리 실행에 옮기느냐가 20년 뒤 우리 나라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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