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제발 제발” 조현병 환자 가족들의 간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민영 기자 중앙일보
이민영사회1부 기자

이민영사회1부 기자

45세 여성 이모씨는 조현병(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을 동시에 앓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의 정신질환자 재활시설 ‘태화 샘 솟는 집’에서 만난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12년간 직장을 다녔다고 한다. 조카 용돈을 줄 때 모처럼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19세 때 조현병에 걸렸다. 다른 환자처럼 한때는 무기력 자체였다. 20대 중반까진 모든 게 귀찮아 누워만 지냈다. 어머니가 머리를 감겨줄 정도였다. 네 차례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씨가 세상에 나온 건 이 시설 덕분이다. 여기서 밥 짓고 청소하는 법을 배우고 취업 교육도 받았다. 이씨는 “여기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부모에게도 버림받았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기자는 30일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의 장단점을 취재하려고 환자·보호자 10명을 만났다. 이 법은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을 어렵게 만들어 인권 침해를 막자는 게 핵심이다. 강제입원 비율이 한국은 67%로 영국·미국의 4~5배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강제입원을 줄이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한꺼번에 2만 명가량 퇴원하면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며 법률 시행을 반대하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는 한목소리로 강제 입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40대 남성 환자는 샤워장에 동행하는 직원에게 항의했다가 기저귀를 차고 몸이 묶였던 기억에 몸서리쳤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태화 샘 솟는 집’ 등 정신질환자 사회복귀시설에서 만난 환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공통적인 이유가 있었다. 정신건강증진센터 전문가의 관리를 받고 주간재활·공동주거 등 사회복귀시설에서 소통하고 사회생활을 체험했다는 점이다. 이 덕분에 외톨이가 되지 않 고 입·퇴원을 반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센터는 적정 인원의 두 배를 관리하느라 숨이 찬다. 사회복귀시설은 9000명 정도만 관리한다. 새 법 시행으로 퇴원환자가 늘어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조현병 아들(37)을 공동생활가정에 맡긴 김모(60)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김씨 아들은 조현병이 잘 조절되지만 집에 오면 확 나빠진다. 입소 제한 기간(3년)이 곧 끝난다.

조현병 아내를 둔 이모(52)씨는 “가족이 환자 관리를 다 떠안아야 한다”고 애타게 토로했다. 환자 가족 중 한 명은 조현병 환자 실태를 다룬 본지 기사(5월 30일자 16면)에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시설·치료 전문인력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제 정부가 화답할 때다. 정신보건 예산은 복지부 예산의 0.2%(1224억원)다. 선진국의 16%에 불과하다. 강제입원 축소 정책의 승패는 사회복귀 인프라에 달렸다.

이민영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