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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실장, 재벌 저격수 별명 붙었지만 정의선 부회장 멘토 역할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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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05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나 진보 진영에 유독 까칠한 학자가 한 명 있었다. 약 3년 전인 2014년 10월에는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자기 얼굴을 알리려는 진보 연예인, 진보 책장사들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사회민주주의에도 비관적 견해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 250년간 카를 마르크스를 빼고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의 대안을 말하지 못했다”며 “주주가치만이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라고 주장했다. 장하성(64) 청와대 정책실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식 주주자본주의 선구자 평가 #98년 삼성전자 주총서 13시간 발언 #고려대 경영대학장 맡으면서 변화 #‘삼성전자·현대차 배워라’ 광고도

장 실장은 1996년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시작했다. 대기업의 차입을 통한 몸집 불리기 경쟁으로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이전이다. 20년 전 신진 학자였던 시절부터 그는 “총수가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자산 규모가 수십조원씩 되는 재벌을 경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계열사 간 부당거래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13시간30분간 쉬지 않고 의사진행 발언을 이어갔다. 20년 넘게 삼성그룹의 경영 승계를 신랄하게 비판해 ‘삼성 저격수’란 별명도 얻었다. 2003년 장 실장은 SK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과 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장하성 펀드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

줄곧 한국 대기업을 비판해왔던 그가 조금 달라진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건 2005년 고려대 경영대학장에 취임하면서다. 스스로도 “모교 출신 경영인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2009년 12월 고려대 경영대가 일간지에 게재한 ‘고대 경영대, 삼성전자·현대자동차를 배워라’는 지면 광고 역시 장 실장의 아이디어다. 삼성전자·현대차가 불과 30년 만에 글로벌 톱 기업에 올랐듯이 고려대 경영대를 미국 하버드대·펜실베이니아대 같은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메시지였다.

대기업에 목소리를 내는 방식도 변화했다. 몇 시간씩 주총에서 소액주주 발언을 이어갔던 방식에서 탈피해 2006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를 만들어 주요 주주로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청했다. ‘장하성 펀드’로도 불린 KCGF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에 투자한 뒤 지배구조 개선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소액주주운동의 또 다른 형식이었다.

재계에선 장 실장과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깊은 인사로 정의선(47) 현대차 부회장을 꼽는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89년 입학한 정 부회장은 90년 고려대 조교수에 임용된 장 실장과 20년 넘게 인연을 쌓았다. 2002년 6월 정 부회장(당시 현대차 전무)이 대주주인 전장업체 본텍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모비스와 합병하려다 포기한 것도 당시 교수였던 장 실장의 충고 덕이다. 장 실장은 제자인 정 부회장에게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받기보다는 정정당당하게 시장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하라”며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니 아버지에게 당당히 말하라”고 설득했다. 2006년 정몽구 회장이 구속기소되는 등 현대차그룹 최대 위기였던 글로비스 비자금 사건 때도 정 부회장은 은사인 장 실장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

일감 몰아주기 막아 일자리 창출 의도

포스코의 지배구조를 설계한 주인공도 장 실장이다. 그는 2003년 고려대 기업지배구조개선연구소장 시절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의 요청으로 포스코의 지배구조 개선안 작업을 주도했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박태준 명예회장의 갈등을 비롯해 정치적 외풍에 휩싸였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장 실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2007년 포스코는 전원(7명)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했다. 회장 선임 절차에 외부 입김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이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외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장 실장은 노무현 정부 시기 경제 운용에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펴낸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 333쪽에서 그는 “진보적인 정부였다고 평가받는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집권 초기 경제정책의 구상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할 정도로 재벌에 의존적이었다”고 썼다. 이 때문에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합류 요청을 선뜻 수락한 것이 의외라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그는 2012년 대선에선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의 경제교사 역할을 했다. 임명 직후 청와대 기자회견 자리에서 장 실장은 “지명 사흘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얼떨결에 이자리에 섰다”며 “문재인 정부의 파격적 인사에 감동받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 장 실장은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재벌의 문제는 호텔부터 꽃배달 서비스까지 직접 다 하려는 것”이라며 “고용 창출 효과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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