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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 딱 맞는 직업이네 ‘플랜트 헌터’

중앙일보

입력

'식물 사냥꾼(Plant Hunter)' 니시하타 세이준이 4월 13일 새로 개장한 서울 광장동 비스타 워커힐 호텔 스카이야드 가든에서 포즈를 취했다. 꼬마 당근을 거꾸로 꽂은 듯 보이는 나무들이 그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옮겨온 고생대 고사리과 식물 '딕소니아'다. 신인섭 기자  

'식물 사냥꾼(Plant Hunter)' 니시하타 세이준이 4월 13일 새로 개장한 서울 광장동 비스타 워커힐 호텔 스카이야드 가든에서 포즈를 취했다. 꼬마 당근을 거꾸로 꽂은 듯 보이는 나무들이 그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옮겨온 고생대 고사리과 식물 '딕소니아'다. 신인섭 기자

호텔의 첫인상은 흔히 문을 열고 들어와 맨 처음 맞닥뜨리는 로비 분위기로 좌우된다. 특급 호텔들이 시선을 압도하는 화려한 조형물과 샹들리에 등으로 로비 인테리어를 꾸미는 이유다.

지난 4월 재개장한 비스타 워커힐 서울(구 W서울 워커힐 호텔) 로비에선 꽤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어른 팔뚝만한 굵기의 밧줄을 여럿 꼬아놓은 듯 신비한 풍채를 지닌 올리브 고목이 제일 처음 고객을 맞는다. 지중해 시칠리아 섬에서 옮겨온 것이다. 21세기의 영상 미디어 아트를 배경으로 11세기 말에 싹을 틔운 수령 800살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이색 조합은 ‘자연·사람·미래가 공존하는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지향하는 비스타 워커힐 서울의 대표적인 상징이 됐다.

4층 야외 가든에서도 25종의 독특한 식물을 볼 수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꼬마 당근을 거꾸로 꽂아놓은 듯 보이는 스물세 그루의 ‘딕소니아’다. 고생대 고사리과 나무로 약 4억 년 전부터 생존해 온 가장 오래된 육상 서식 식물이다. 이 역시 호텔이 추구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주요한 상징으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배로 한 달 걸려 옮겨 왔다.

비스타 워커힐 서울 호텔 4층에 조성된 스카이야드 가든. [사진 비스타 워커힐 서울]

비스타 워커힐 서울 호텔 4층에 조성된 스카이야드 가든. [사진 비스타 워커힐 서울]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식물들을 옮겨와 호텔을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변신시킨 주인공은 일본인 ‘플랜트 헌터(Plant Hunter)’ 니시하타 세이준(37)이다. 플랜트 헌터란 전 세계 희귀식물을 탐험하고 채집·보급하는 전문가로 17세기 유럽 왕족과 귀족의 의뢰로 처음 등장했다.

“테마에 맞는 식물로 공간을 꾸미거나 식물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전 세계 희귀식물을 찾아내서 옮겨 심는 게 제 일이죠.”

니시하타 세이준은 150년 된 일본 조경업체 하나우의 5대 사장이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건 2012년 3월 22일 도쿄 긴자의 루미네 쇼핑가에서 진행된 ‘사쿠라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일본 전 지역에서 자생하는 벚꽃나무 47종을 옮겨와 한 날 한 시에 개화시킨 행사였다. 기후환경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자란 여러 종류의 벚꽃을 동시에 개화시키려면 기온·습도·영양 상태 등 고도의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니시하타는 “당시 동일본 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우린 다시 하나가 되어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그는 도쿄와 오사카에 ‘소라식물원’을 개장했다. 현재는 다수의 국내외 기업·단체·아티스트와 함께 연간 5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희귀식물을 찾아 니시하타가 이동한 거리를 길이로 환산하면 지구 둘레를 세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다. 식물과 교감할 수 있는 책도 십여 권 썼다. 대학에서 조경학과·디자인학과 학생들을 위한 강의도 한다. 젊은 층의 주목을 받으면서 2015년에는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광고에 등장해 플랜트 헌터로서의 삶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플랜트 헌터가 되려면’ 이라는 질문”이라며 “그때마다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 제대로 된 지식, 그리고 힘든 일을 버텨낼 각오 세 가지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니시하타의 일에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식물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눈앞에 두고 싶다’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낯선 땅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많은 식물이 적응 못하고 죽어간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그는 이 질문에 “어느 정도 이들의 주장을 이해한다”면서도 “알고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식물·과일의 90%가 외래종”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삶의 윤택함을 위해 식물의 생태 환경을 인위적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식물은 본래 자기의 씨앗을 멀리까지 보내서 싹 틔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면서 “플랜트 헌터는 이를 돕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NHK 다큐멘터리에선 니시하타를 ‘지구를 꽃꽂이 하는’ 인물로 소개한 바 있다.

그는 대화 내내 플랜트 헌터로서 자부심을 보이면서도 투철한 책임감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세대는 과거보다 더 식물로부터 감동과 힐링, 위안을 받을 것이다. 때문에 낯선 곳에서도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플랜트 헌터는 제대로 된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번 워커힐 작업 때문에 한국을 처음 찾았다는 그는 “한국 자생 식물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면서도 “조경업체 시장에 가보니 비슷비슷한 식물들만 잔뜩 있었다”며 쓴 소리도 남겼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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