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타일] 옥돔 스시, 녹차 밀푀유 … ‘미식의 섬’ 제주

중앙일보

입력 2017.05.23 01:44

업데이트 2017.05.23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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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5월 20일 제주도 서귀포시 해비치호텔 그랜드 볼룸.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화려한 갈라디너가 열렸다. ‘아시안 고메’를 주제로 한 이날 갈라디너는 일본에서 2015년 36세의 최연소로 미쉐린(미슐랭) 3스타를 받은 ‘코하쿠’의 고이즈미 고지 셰프와 2013년 중식 셰프로는 가장 어린 나이인 38세에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아우 앨버트 홍콩 라이선F&B 총주방장, 서울 ‘두레유’의 유현수 오너셰프, 가로수길 디저트 카페 ‘소나’의 성현아 오너셰프, 그리고 이 호텔 이재천 총주방장, 이렇게 다섯 명이 함께 준비했다. 제2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갈라디너는 1인당 25만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350석이 매진됐다.

관광객 늘며 유학파 셰프들 몰려
프렌치·이탈리안 식당, 일식집 늘어
고등어·달치·말고기·고사리 …
외국 셰프들 “흥미로운 식재료 많아”

‘스시호시카이’는 참돔·다금바리·자리돔·생고등어뱃살 등 제주 앞바다에서 나는 생선으로 스시를 낸다. [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스시호시카이’는 참돔·다금바리·자리돔·생고등어뱃살 등 제주 앞바다에서 나는 생선으로 스시를 낸다.[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임덕현 셰프가 제주산 생선으로 스시를 만들고 있다.

임덕현 셰프가 제주산 생선으로 스시를 만들고 있다.

흥행 성공은 제주에선 접하기 어려운 초특급 이벤트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 저변이 그만큼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제주의 미식문화는 최근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갈치조림·돔베고기·고등어회·몸국 등 비슷비슷한 메뉴만 팔던 제주가 아니다. 최근 2~3년 사이 제주도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해 좀 더 과감한 실험을 하는 고급 식당이 많이 등장했다. 2014년 횟집 일색이던 제주시 오라동에 ‘스시효’ 출신 임덕현 셰프가 ‘스시호시카이’를 연 것을 계기로 제주엔 수준 높은 스시집이 잇따라 들어섰다.

청담동 닮은 파인다이닝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이보다 앞서 제주도에 자리 잡았다. 2013년 제주시 한림읍에 문을 연 ‘모디카’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ALMA)를 졸업한 이성우 오너셰프가 문어·달치 등 제주산 식재료로 만든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이 셰프는 “제주도에 2~3일만 머물러도 음식이 단조롭게 느껴지는데, 괜찮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디저트 카페 ‘더 심플’의 녹차 밀푀유. [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디저트 카페 ‘더 심플’의 녹차 밀푀유.[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2015년엔 해비치호텔에 제주도 내 첫 프렌치 파인다이닝인 ‘밀리우’가 문을 열었다. 이들 레스토랑이 처음 오픈할 당시 “과연 손님이 있을까”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인기다. 스시호시카이는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는 통에 금~일요일은 식사 시간을 1, 2부로 나눠 운영한다. 밀리우는 코스 가격이 8만9000원부터지만 금~일요일엔 예약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서울 청담동에서나 볼 법한 고급 디저트 가게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르코르동블루 숙명아카데미 출신 박진선 셰프가 서귀포에 연 ‘더 심플’은 오후 3시면 빵을 살 수 없을 만큼 인기다.

해비치호텔에 있는 제주 유일의 프렌치 레스토랑 ‘밀리우’. [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해비치호텔에 있는 제주 유일의 프렌치 레스토랑 ‘밀리우’.[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사람’ 늘자 ‘맛’ 좋아지다

제주5일장을 찾은 폴란드 알렉산더 바론(오른쪽) 셰프 일행. [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제주5일장을 찾은 폴란드 알렉산더 바론(오른쪽) 셰프 일행.[사진 밀리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제주도가 향토음식 일변도인 다른 숱한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던 이유는 사람이다. 2006년 저비용항공 취항으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더 늘었다. 2010년 이후엔 아예 제주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도 늘었다. 2009년 56만 명이던 제주 인구는 2010년 이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2016년 현재 66만 명을 넘어섰다. 제주를 찾는 외부인이 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요리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이재천 해비치호텔 총주방장은 “타지에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은 물론 제주를 제 집 드나들듯 자주 찾는 사람이 늘면서 향토음식을 넘어선 새로운 음식을 원하는 욕구가 커졌다”며 “셰프들도 이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하면서 미식 수준이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찾는 사람, 만드는 사람이 수준 높은 미식세계를 만든 게 사실이지만 제주의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산과 바다를 가진 환경 덕분에 제주엔 식재료가 넘쳐난다. 제주가 고향인 스시호시카이 임 셰프는 “남들이 못 쓰는 재료를 쓸 때 쾌감을 느낀다”며 “신선한 고등어뱃살이나 옥돔을 스시로 만들 수 있는 건 국내에선 제주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모디카 이 셰프는 “몸통에 검정 동그란 무늬가 있는 달치는 제주에서 많이 나는 생선으로, 지중해에서 나는 잔도르와 비슷해 이탈리아 요리에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해산물뿐 아니라 말·흑우·흑돼지 같은 육류도 풍부하다. 따뜻한 기후 덕에 신선한 채소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특히 메밀·고사리·표고버섯은 전국에서 제주산을 최고로 칠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식재료 욕심이 많은 건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이번 페스티벌 참가차 한국을 찾은 셰프들도 지난 17일 제주 5일장을 돌아보며 모두들 제주산 식재료에 매료됐다. 폴란드 모던 퀴진의 대표주자인 ‘쏠레츠44’의 알렉산더 바론 셰프는 “제주도엔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신선한 해산물이 다양할뿐더러 말린 생선 등 재료 다루는 방법도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제주=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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