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상생 비전 제시한 한·중·일 30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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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동북아 3국 각계 지도자들의 모임인 '한.중.일 30인회'가 발족했다. 중국은 '동북아 명인회', 일본은 '일.중.한 현인회의'라고 부르는 이 모임의 멤버들이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13일 하루 동안 3국 간 상생과 협력의 비전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탓에 3국 정상 간 대화 채널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민간을 대표하는 전직 고위 인사와 지식인, 기업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시의적절한 행사였다고 본다.

대륙과 반도, 섬이라는 각기 다른 지형 속에 수천년을 이웃으로 살아온 한.중.일 3국은 한자와 유교로 대표되는 동일한 문화권 속에서 때로는 협력.교류하고, 때로는 반목.갈등하면서 역사의 유산을 공유해 왔다. 세계화와 지역화라는 21세기의 큰 흐름 속에서 3국은 이미 경제.문화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실질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7%, 교역량의 약 15%를 담당하고 있는 세 나라의 선택에 따라 동북아는 평화와 번영의 중심이 될 수도 있고,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는 지구촌의 변방에 머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동북아의 진로는 중국의 급속한 강대국화, 미.일 동맹의 강화,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 한반도의 불안 속에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터에 비교적 입장이 자유로운 3국의 정치 원로, 경제인, 석학들이 뜻을 모아 동북아의 바람직한 협력 방향을 모색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대로 참석자들은 한.중.일 3국의 협력이 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전제 조건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일단 제쳐놓고 같은 것부터 뜻을 모아가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 동북아 협력의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는 민간 포럼으로 '한.중.일 30인회'가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3국 정부도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현인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