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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전 1만명이 모은 10만원, 지리산 지켜냈다

중앙일보

입력

지리산이 대한민국 첫 국립공원이 된 지 올해로 50년이다. 전남 구례 주민들이 모인 산악회 '연하반'이 주축이 돼 정부와 국회를 설득한 끝에 1966년 국립공원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지리산이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사진은 노고단에서 야영을 준비 중인 연하반 회원들. [사진 우두성씨 제공]

지리산이 대한민국 첫 국립공원이 된 지 올해로 50년이다. 전남 구례 주민들이 모인 산악회 '연하반'이 주축이 돼 정부와 국회를 설득한 끝에 1966년 국립공원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지리산이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사진은 노고단에서 야영을 준비 중인 연하반 회원들. [사진 우두성씨 제공]

"1만 가구가 10원씩 내서 10만원을 모았어요. 1963년 당시엔 이 동네에서 괜찮은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어요."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우두성(65)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장은 50여 년 전의 상황을 회고하며 22일 이렇게 말했다. 지리산이 국내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 1967년 12월이었다.
국립공원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던 당시에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을 처음 추진한 것은 정부가 아니었다. 우 회장의 선친 우종수(2014년 작고)씨 같은 지리산 토박이, 그중에서도 구례 주민들이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어렵지만, 국립공원 지정 이전엔 지리산에서 나무를 몰래 베어내는 도벌(盜伐), 마구 베어내는 남벌(濫伐)이 성행했다고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에 주축이 된 구례군민 산악회 '연하반' 회원들이 1955년 지리산을 등반하고 있다. 당시에 빨치산이 남아 있던 때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지리산을 등반할 수 있었다. [사진 우두성씨 제공]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에 주축이 된 구례군민 산악회 '연하반' 회원들이 1955년 지리산을 등반하고 있다. 당시에 빨치산이 남아 있던 때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지리산을 등반할 수 있었다. [사진 우두성씨 제공]

"60년대 초 주민들이 길목에서 조사한 바로는 구례를 통해서만 하루에 트럭 250대 분량이 실려 나갔어요. 군용트럭 엔진에 회전 톱을 연결한 제재소가 골짜기 곳곳에 들어서 있었으니까요."
누구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것은 바로 지리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구례 주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지리산을 산행하는 주민 모임인 ‘연하반'(煙霞班) 회원들은 파헤쳐진 숲을 목격하며 도벌·남벌에 분개했다. 우 회장 선친이며 당시 구례중학교 교사였던 우종수씨가 연하반 총무였다. 우종씨 등 연하반 회원들 보기에 지리산 황폐화는 시간문제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1호 지정, 올해로 50년 #전후 혼란기 도벌·남벌 성행해 황폐 위기 #구례 주민, 정부 설득해 국립공원법 제정 #63년 10만원 모아 첫 캠페인…집 한 채 값 #대 이어 지리산 지키기 덕에 반달곰 복원도

63년 산지 개발을 위한 정부조사단 일원으로 내려온 김헌규 박사(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의 입에서 나온 '국립공원'이란 단어에 회원들의 귀가 솔깃해졌다. 한 해 앞서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제1회 세계국립공원대회'를 참관하고 온 김 박사가 국립공원 제도를 주민에게 알려준 것이다.
연하반은 지리산을 대한민국의 첫 국립공원으로 만들기로 하고 '국립공원 지정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국립공원법도 없던 때라 정부를 설득해 법부터 만들어야 했다.

지리산 등산로에 사용할 이정표를 만들고 있는 우종수씨. [사진 우두성씨 제공]

지리산 등산로에 사용할 이정표를 만들고 있는 우종수씨. [사진 우두성씨 제공]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캠페인 자금이었다. 구례 주민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금에 참여했다. 당시 구례군 1만2000가구 중 1만 가구가 동참했다.
1만 가구가 63년에 10원씩 내서 10만원, 3년 뒤인 66년에 20원씩 내서 20만원을 모았다. 당시 10만원이면 구례에서 괜찮은 집 한 채는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추진위원회는 수차례 상경해 정부에 건의서를 냈다.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국회와 정부도 관심을 보여 마침내 66년 3월 국립공원법이 제정됐다. 법 제정 뒤 정부는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국립공원지정 추진위에서 조사부장을 맡던 우종수씨도 정부 조사단의 조사에 참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듬해 12월 지리산이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안개와 노을, 혹은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일컫는 단어인 '연하'는 지리산 봉우리 중 하나의 이름으로 정해졌다.

우두성(65) 지리산환경생태보존회장이 지리산에서 이 직접 수거한 밀렵 도구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구례=프리랜서 오종찬

우두성(65) 지리산환경생태보존회장이 지리산에서이 직접 수거한 밀렵 도구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구례=프리랜서 오종찬

선친 우씨는 지난 95년 은퇴했다. 그때부터 아들 우두성씨는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를 꾸려 밀렵 방지 등의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지리산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것이다. 지리산환경생태보존회 등 관련 단체 노력에 힘입어 지리산에선 2000년대 초 이후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추진 중이다.

현재 국립공원엔 반달가슴곰 45마리를 비롯해 다양한 생물이 깃들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은 면적이 483㎢(서울시 면적의 80%)로 국토 면적의 0.48%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 전체 생물종 4만7000종의 16.8%인 7882종이 여기에 서식한다. 우 회장은 “밀렵꾼을 설득하고 밀렵도구를 제거해온 덕분에 지리산에 야생 반달가슴곰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지리산 보호 노력을 2대째 이어가는 우두성(65) 지리산환경생태보존회장이 18일 지리산 봉우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씨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차일봉이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리산 보호 노력을 2대째 이어가는우두성(65) 지리산환경생태보존회장이 18일 지리산 봉우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씨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차일봉이다. 프리랜서 오종찬

67년 지리산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 태백산국립공원에 이르기까지 국립공원은 전국에서 22곳으로 늘어났다. 지리산의 성과는 다른 공원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신용석 소장은 “지리산에서 시작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의 경험과 기술이 다른 국립공원에서 진행되는 산양이나 여우 복원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칠선계곡. 탐방예약을 통해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과 월요일에 하루 60명 정원으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자연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칠선계곡. 탐방예약을 통해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과 월요일에 하루 60명 정원으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자연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올해는 국립공원에 매우 각별한 해다. 국내 1호 국립공원이 지정된 지 50년,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출범한 지 30년 되는 해다. 지난달부터 전국 국립공원에선 이런 의미를 기념하는 '3050'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다음 달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도 열린다.
지리산의 사례에서 보듯 국립공원 지정은 소중한 생태계를 지키는 지름길이다. 환경부 유호 자연공원과장은 “90년대와 2000년대엔 주민들이 규제를 걱정해 국립공원 지정에 반발하고 이미 지정된 지역에선 해제를 원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국립공원 지정을 바라는 주민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립공원 내의 마을 중에서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마을을 ‘명품마을’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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