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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신발 3만 개가 정원 문화 확산에 기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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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9면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새로 시작되는 전시를 17일 보러 갔다가 놀라운 광경과 조우했다. 헌 신발이 서울역 고가도로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듯 서울역 광장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20일 개장하는 ‘서울로 7017’을 기념해 제작한 ‘슈즈트리’였다. 가든 디자이너 황지해씨가 재능기부해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조형물은 높이 17m, 길이 100m, 폭 10m에 달한다. 신발 3만 개가 만들어낸 기이한 풍경에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사진 찍느라 바빴다.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슈즈트리에 다가서니 퀴퀴한 냄새가 났다.

서울로에 설치된 ‘슈즈트리’ 논란

마침 이날 서울시청에서 황 작가가 작품 설명회를 열었다. 예술작품이냐, 흉물이냐는 논란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는 “지지대에 신발을 엮는 기본 작업 중인데 그 과정이 고스란히 대중에 노출돼 비판을 받게 되어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목욕하다가 들킨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발은 뼈대고 그 위에 나무와 꽃이 식재된다는 설명이었다. 서울시는 “노후한 서울역 고가를 도심 속 정원으로 재생시키겠다는 ‘서울로 7017’의 의미를 전달하는, 버려질 수밖에 없던 신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작품”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서울로 7017이 나무이고, 슈즈트리는 거기서 뻗어나오는 줄기며, 신발은 줄기에서 나오는 꽃”이라는 게 컨셉트란다.

슈즈트리는 누가, 왜 기획했을까. 서울시 측은 “플라워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공개한 사업 자료에 따르면 플라워 페스티벌은 서울역 고가와 광장 일대에서 올해 연중 열린다. 사업목적은 이렇다. ‘플라워 페스티벌 개최를 통해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을 도모하고, 서울시 대표 축제로 육성해 지역경제 활성에 기여하고자 함.’ 플라워 가든을 조성하고 전시하는데 2억50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보고서 말미에 적힌 향후 기대 효과는 ‘정원문화 확산과 정원산업 발전에 기여한다’였다.

그럼 플라워 페스티벌은 누가, 왜 기획했을까. 담당부서인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개장한 서울로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의 풍경을 고민했다. 서울역 광장이 좀 칙칙하지 않나. 내려다봤을 때 화사한 공간이 됐으면 해서 플라워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조경 전문가 몇 분께 자문을 구했고, 그 중 황 작가의 디자인을 재능기부 받아 슈즈트리를 설치하기로 했다. 공모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판단했다. 작품이 모험적이라 고민도 많았는데, 작가가 워낙 유명하고 작품으로 만족을 못 시킨 적이 없었다.”

슈즈트리는 플라워 페스티벌의 사업 중 전시부분에 해당된다. 2억5000만 원 중 1억3000만 원이 배정됐다. 나머지 1억2000만 원은 플라워 가든 조성용이다. 플라워 가든은 서울로 7017 인근 지상 길 곳곳의 녹지대를 지칭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꽃 심고 나무 심고 정비했다”고 한다.

정원문화 확산과 지역 경제 활성에 기여하고자 기획된 슈즈트리가 완성도 되기 전에 논란이 되자, 서울시는 발 빠르게 작가 설명회를 열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서울로 7017 황지해 작가 제안작품(슈즈트리) 콘셉트 설명’이라는 제목이었다. ‘서울로 7017 슈즈트리 콘셉트설명’이라 쓰지 않고, 작가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다. 마치 작가가 나서서 작품을 제안한 것 같은 뉘앙스가 읽혔다. 가뜩이나 재능기부라며 시간과 노력의 대가 없이 무보수로 일하고 있는 작가는 무슨 죄일까. 작가에게 자문을 구한 것도, 작품을 선택한 것도 서울시가 아니던가.

게다가 슈즈트리는 20일부터 28일까지 전시된 뒤 바로 철거된다. 9일간의 작품값, 즉 작품 설치 및 철거비가 1억3000만원인 셈이다.신발더미는 고가로 올라가는(혹 내려오는) 좀비 떼처럼 보였다. 아직 완성전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글ㆍ사진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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