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후 외자 봇물 이자만해도 5억弗넘어"

중앙일보

입력

18일 오후 서울지법에서 열린 대북송금 사건 결심 공판.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아오던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지난 1일 열린 3차 공판에 나와 현대가 정부지원금 1억달러를 대신 떠안았던 이유 등을 역설했던 鄭회장은 사흘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 김상균 부장판사는 재판에 앞서 "鄭회장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게 돼 재판부로서도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송두환 특검도 논고에 앞서 "얼마 전 이 세상을 타계한 鄭회장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제가 그림자처럼 모시던 鄭회장이 갑자기 타계했다"며 "제가 鄭회장을 죽음으로 몰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이 든다"고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도 대북 송금의 불법성을 두고 특검팀과 대북송금 주역 간의 설전은 재연됐다.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실정법상 잘못에 대해 모든 것은 제가 책임을 지겠다"며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우리 국민이 외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송금액 5억달러를 염두에 둔 듯 "정상회담 이후 외자 유치가 크게 늘어 외채 이자만 해도 연간 5억달러를 절감했다"면서 "다시 내게 이런 일이 주어진다고 해도 결코 마다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당시 대북경협 사업은 공개적 추진 자체가 부적절했고 가능하지도 않았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남북 긴장완화와 투자유치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특검팀은 "당시 정상회담을 몇몇 사람의 은밀한 작품으로 추진한 게 아니라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다면 다소 논란이 일었어도 국론 분열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피고인들을 나무랐다.

한편 눈병.다리 골절상 등을 앓고 있는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은 휠체어를 타고 링거 주사를 맞으며 자리를 지켰다. 한화갑.김옥두.김근태 의원 등 민주당 의원 6~7명의 모습도 보였다.

김근태 의원은 "다른 의원들과 특별한 논의 없이 온 것"이라며 "대북송금의 투명성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그로 인해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역류(逆流)가 일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