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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비상구 추락사에 시민들이 분노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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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비상구에서 떨어져 숨진 김모씨의 부인(54)이 남편의 사망진단서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진호 기자

낭떠러지 비상구에서 떨어져 숨진 김모씨의 부인(54)이 남편의 사망진단서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해 6월 부산시 동구에서 2층 노래방을 찾은 20대가 비상구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크게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2층 벽면 출입문을 비춘 뉴스의 영상을 보면서 “저거 사람 떨어지라고 만든 문 아니야”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비상구 추락사 사연 읽은 시민들 제도의 허점에 분노해 댓글만 1만개 #김씨 추락사고 원인 우리 사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안전불감증’ 때문 #전문가 "일정기간 두고 소급 적용해 안전시설물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며칠 전 그 영상이 떠올랐다. 지인으로부터 “아는 사람이 노래방 2층에서 비상구 문을 열었다가 3m 아래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다.

사고 현장에 가봤다. 뉴스에서나 보던 ‘낭떠러지 비상구’가 실제로 존재해 깜짝 놀랐다. 낭떠러지 비상구 추락 사고는 지난달 30일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의 한 건물 2층 노래방에서 발생했다.

화장실을 찾던 김모(58)씨가 이 비상구 문을 열었다가 3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김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나흘 만에 숨졌다.

 이씨의 남편 김씨를 숨지게 한 낭떠러지 비상구. 박진호 기자

이씨의 남편 김씨를 숨지게 한 낭떠러지 비상구. 박진호 기자

김씨의 부인 이모(54·여)씨는 기자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이런 비상구가 존재하는 한 남편과 같은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면서 “피해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분노했다. 해당 기사와 기사를 공유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일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친구와 길을 가다 건물 2층 벽면에 출입문이 있는 것을 보고 웬 바보가 계단도 없이 2층 벽에 출입문을 뚫어놓았냐며 비웃은 적이 있다”면서 “저런 출입문이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 모르겠다. 제발 저런 무개념 탁상행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이디 성남****)

“화재 발생 시 비상구에 사람이 몰려 엉켜버리면 다 떨어져 죽으라는 소리인가?” (아이디 dp99****),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이런 억울한 죽음들이 생기는데 법이 그걸 따라잡질 않는군.” (아이디 dhkd****) 댓글 대부분은 위험한 시설을 방치한 관련 기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안전불감증과 탁상행정 때문이다. 정부는 ‘낭떠러지 비상구’ 사고가 2015년, 2016년 경기 안산과 부산에서 연이어 발생하자 지난해 10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 안전장치를 강화했다. 하지만 신규 업소에만 경보장치와 안전로프, 비상구 추락 방지 스티커 부착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했다. 기존 허가 업소는 의무가 아닌 권고 대상이다.

강원지역 소방서 관계자는 “법률불소급 원칙에 따라 기존 허가 업소는 경보장치와 안전로프 설치 의무가 소급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현장을 점검하는 대원들도 그 부분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종영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전문제와 관련해서는 법을 개정할 때 기존 업소에도 소급적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업소의 반발을 줄이고 금전적인 타격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기간을 두고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정교하게 접근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 주변엔 낭떠러지 비상구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가 존재하는 만큼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안전장치는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숨진 김씨는 지난 초 황금연휴에 가족과 국내 여행을 준비했었다고 한다. 가정의 달 가족과 생이별을 한 50대 가장의 죽음을 단순한 불행으로 넘기면 안 된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함께 나서 곳곳에 존재하는 지뢰(안전 사각지대)를 제거할 때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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