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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중국의 섣부른 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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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병연서울대 교수·경제학부

김병연서울대 교수·경제학부

강대국의 역사에 비추어본다면 중국의 굴기는 예외적이다. 근대 이후 최강대국은 일인당 소득 면에서 최고 수준이었거나 그에 근접했다. 스페인, 영국, 미국이 다 그랬다. 그러나 중국은 일인당 소득은 낮은데 인구가 많기 때문에 대국이 됐다. 중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20%가량이며 미국의 4배 수준인 반면 일인당 소득 순위는 190여 개국 중 70위권에 머물고 있다. 만약 중국이 최강대국이 된다면 발전 단계가 낮은 국가가 세계를 주도하는 근대사 초유의 일이 일어나는 셈이다.

중국은 인구감소와 고령화에다 #4차 산업혁명 주도 가능성 작아 #세계 최강대국 되기는 어려울 것 #중국의 사드 철회 요구 거부하되 #레이더 사거리를 축소하거나 #조건부 사드 배치로 협상해야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선두로 나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다음의 이유로 그 가능성은 작다. 첫째, 인구 감소와 고령화 때문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중국 인구는 지금보다 불과 2000만 명 늘어나지만 미국 인구는 8000만 명 증가한다. 더욱이 2050년 중국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7%로 같은 해 미국의 20%보다 높다. 중국의 고령화는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져 인구 감소가 시작되는 2030년부터 중국과 미국의 평균성장률이 비슷해질 수도 있다. 또 일본은 일인당 소득 4만 달러대에서 인구가 최대치에 도달했고 한국도 3만 달러대에서 그렇게 되겠지만, 중국은 1만 달러대 혹은 2만 달러대 초반부터 인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따라서 중국의 일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커진다 하더라도 이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의미다.

둘째, 중국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가능성은 작다. 영국과 미국이 각각 1차(증기력·면직), 그리고 2차(전기) 및 3차 산업혁명(컴퓨터)의 진원지였다는 사실은 최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 기술을 주도할 역량이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기술 간의 융합과 사물 및 사람과의 연결이 관건인 4차 산업혁명을 이끌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 자본뿐만 아니라 자유와 자율을 기초로 다양한 실험이 장려되고 이를 유연한 법과 제도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 정치제도, 관료주의, 심각한 부패가 얽혀 있는 중국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더욱이 시진핑 주석은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할 시기에 오히려 개인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셋째, 해외에 전파할 수 있는 중국의 가치와 문화, 제도가 부족하다. 경제력, 군사력이 강대국의 전부가 아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수용하고 싶은 문화와 제도를 구축한 나라가 최강대국이다. 영국과 미국이 시작하고 발전시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보다 더 나은 제도를 중국이 만들 수 있을까. 지극히 회의적이다. 중국 문화는 세계에서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홍콩·대만과의 관계, 남중국해 문제,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은 중국 정부의 의식 수준이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국익을 위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오히려 중국의 이미지를 악화시켜 국익을 저해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중국의 착각은 2008년 무렵 시작된 것 같다. 미국이 금융위기로 인해 휘청거리자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르던 정책을 버리고 밖으로 나와 세련되지 못한 힘을 곳곳에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미국의 경제력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고,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 제도의 균열을 알리는 징조는 될 수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중천에 떠 있는 해와 같다. 식민지를 상실하자 최강대국의 지위를 잃어버렸던 영국과 달리 거대한 자국 영토와 혁신 역량을 결합한 최초의 국가라는 점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기간은 영국보다 훨씬 길 것이다.

열강 속에서 부대끼며 생존을 모색하고 통일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우리는 한 수가 아니라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수십 년 이후의 세계 질서까지 전망해야 한다. “친미(親美)냐 친중(親中)이냐, 혹은 반미(反美)면 어떠냐”라는 레토릭은 우리에겐 너무 비싼 사치재다. 오히려 이분법에 익숙한 우리의 사고와 외교 공간을 경제·안보·환경·문화 등 다층화된 복합 구조로 바꿔야 한다. 만약 중국이 ‘친중·반미’를 제안하고 그 일환으로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한다면 이에는 “노(No)”라고 해야 한다.

중국과의 사드 마찰은 지난 정부의 외교와 대북정책이 한 수 앞도 보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실패도 현 정부가 지고 가야 할 과제다. 한·미 동맹을 견지하고 국가의 위엄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섣부르게 굴기한 근육질 중국을 고려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경제뿐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도 그렇다. 사드 레이더의 사거리를 북한까지로 축소하거나 북한 비핵화의 어느 시점에서 사드 배치 철회를 고려한다는 약속 등이 협상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