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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부동산 중개 논란]공승배 변호사 vs. 황기현 중개사협회장 지상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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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부동산 거래 중개냐, 법률 자문이냐.

19일 서울고법서 공 변호사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 항소심 공판 #1심 "중개 수수료 아니라 법률자문 수수료 받았다" 무죄 선고

부동산 중개를 놓고 변호사와 공인중개사협회가 충돌했다. 트러스트부동산 대표 공승배 변호사는 ‘거래금액과 상관없이 수수료 최대 99만원’을 내걸고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공 변호사가 지난해 4월 첫 부동산 거래 계약을 성사시키자 공인중개사협회는 “공인중개사가 아닌데 중개를 했다”며 공 변호사를 고발했다. 1심 법원은 “변호사로서 중개 수수료가 아니라 법률자문 수수료를 받았다”는 공 대표 측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공 변호사는 '아파트 거래소' 서비스도 시작했다. 19일 서울고법에선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공승배 트러스트부동산 대표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다. 2심을 앞둔 양측을 인터뷰했다.


공승배 변호사, "왜 집값 따라 수수료 내야 하나. 변호사가 하면 많아야 99만원"
"서비스 질 중요, 시장 메가트랜드는 직거래로 바뀔 것"

서울 역삼동 트러스트부동산 사무실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한 공승배 대표.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부동산 매물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주고 싶어 360도 볼 수 있는 잠자리를 로고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오종택 기자]

서울 역삼동 트러스트부동산 사무실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한 공승배 대표.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부동산 매물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주고 싶어 360도 볼 수 있는 잠자리를 로고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오종택 기자]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 변호사는 판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로 변신한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등기는 법무사가 도맡던 일이었다. 영화 속 송 변호사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공승배(46ㆍ사진) 트러스트부동산 대표다. 수십 년 간 공인중개사가 해온 부동산 중개에 도전장을 던진 변호사라서다. 그는 “부동산 등기 업무를 개척한 송 변호사처럼 부동산 중개 자문에 뛰어드는 변호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역삼동 트러스트 사무실에서 한 본지와 인터뷰에서다.

그가 지난해 1월 창업한 트러스트는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왜 집값에 비례해야 할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공인중개업소를 통해 9억원 미만 주택을 매매할 때 수수료는 거래금액의 0.4~0.6%, 9억원 이상은 0.9%다. 하지만 트러스트는 매매가 2억5000만원(전ㆍ월세 3억원) 이상이면 최대 99만원, 미만이면 최대 45만원으로 수수료 한도를 정했다. 매매가 10억원 짜리 아파트에 적용하면 공인중개사가 받는 수수료는 900만원, 트러스트가 받는 수수료는 99만원이다.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 [중앙포토]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 [중앙포토]

그는 “최근 트러스트를 통해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12억2000만원)를 판 고객은 수수료를 1100만원 아꼈다. 서비스의 질과 관계없이 집값에 따라 내는 기존 중개 수수료 체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만 앞세운 건 아니다. 그는 “법률 전문성이 부족한 중개사는 거래 시 등기부 등본을 잘 살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보증금 등 권리관계 면에서 등기부 등본에 없는 내용이 많다. 이런 위험을 따져 소비자를 가장 잘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변호사”라고 말했다.

변호사로서 책임감도 강조했다. 그는 “변호사는 사무실에 앉아있고 직원만 현장에 보낼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변호사가 직접 고객과 함께 현장을 방문해 자문하고 사고 발생시 문제 해결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 또 “변호사 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변호사가 일을 잘못해 부동산 거래에 문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덧붙였다.

공승배 트러스트부동산 대표. [오종택 기자]

공승배 트러스트부동산 대표. [오종택 기자]

트러스트는 최근 ‘아파트 거래소’ 서비스를 론칭했다. 매수자가 “잠실5단지 전용 82㎡ 아파트를 15억원에 사고싶다”고 올리는 식이다. 이를 보고 매도자가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매수자에게 팔 때 트러스트는 법률 자문을 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부동산 거래 중개를 해 주는 게 아니라 매수자와 매도자의 직거래 시 법률 자문을 해 준다는 설명이다.

그는 “공인중개사협회는 중개사 이외의 중개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데 돈을 받고 중개하는 게 금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동산 계약이 법적 문제없이 체결되도록 변호사 본연의 일을 수행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택시기사와 우버의 문제를 봐라. 결국 소비자 선택을 받아 살아남는 것이 전문가”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메가 트렌드는 결국 직거래로 수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9년 사법연수원을 마쳤다. 트러스트를 창업하기 전까지 법무법인 광장ㆍ화우에서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부동산 중개 업무는 법적 실사를 하고 계약 조건에 반영해 협상하는 M&A 과정과 많이 닮았다. ‘화려한 일을 박차고 왜 부동산 중개에 뛰어드느냐’는 얘기도 듣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거의 전 재산이 걸린 부동산을 다루는 업무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기현 회장 ''변호사는 의뢰인 쌍방 대리 못해. 시장 잠식 뒤 많은 돈 요구할 것"
"교통, 상권 짚는 건 공인중개사만 가능. 부동산 거래는 법률보다 현장이 중요"

서울 청룡동 공인중개사협회 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황기현 회장. 그는 “부동산 계약을 중개하려면 전문가인 공인중개사가 상권·교통·학군은 물론 개발 가능성과 장기 전망, 개발 가능성까지 다각도로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 청룡동 공인중개사협회 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황기현 회장. 그는 “부동산 계약을 중개하려면 전문가인 공인중개사가 상권·교통·학군은 물론 개발 가능성과 장기 전망, 개발 가능성까지 다각도로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지난해 1월 취임한 황기현(58) 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트러스트 부동산의 중개업 진출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변호사 업계의 부동산 중개 시장 진출을 심각하게 보고있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 16일 서울 청룡동 협회 사무실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2심을 앞두고 공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한 공인중개사협회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려고 취임후 처음 인터뷰에 응했다. 변호사의 부동산 중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의약 분업’의 예를 들며 변호사의 중개업 진출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는 “의약 분업에 비추면 변호사는 의사, 공인중개사는 약사다. 트러스트 주장대로라면 의사가 직접 약을 짓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약에 관한 한 약사가 전문가”라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아니라 법률 자문 수수료를 받는다”는 공 대표 측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궤변에 불과합니다. 중개 수수료는 계약이 성사됐을 때만 지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거래 성사를 전제로 법률 자문료를 받는다면 사실상 중개 수수료라고 봐야 합니다. 또 변호사는 의뢰인 쌍방을 대리하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거래 양 측에서 수수료를 다 받는다면 쌍방 대리 아닙니까. 불법 자문을 해놓고 수수료가 싸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순 없습니다.”

황기현 공인중개사협회 회장. [우상조 기자]

황기현 공인중개사협회 회장. [우상조 기자]

“소비자 입장에선 ‘99만원 수수료’에 끌릴 수 밖에 없다”고 묻자 “싼 게 비지떡인 법이다. 부동산 거래에 관해선 변호사가 아니라 공인중개사가 전문가다. 수억~수십억원씩 하는 부동산 가치가 향후 수십배까지 뛸 수 있는 중요한 거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제대로’ 중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99만원은 미끼에 불과하다. 그 수수료를 받아선 사무실을 운영할 수 없다. 변호사가 공인중개사 시장을 잠식한 뒤엔 더 많은 중개 수수료를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부동산 거래에서 법률 자문은 아주 일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입지다. 상권ㆍ교통ㆍ학군은 물론 개발 가능성과 장기 전망, 개발 가능성까지 다각도로 짚는 건 공인중개사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예를 들어 신길 뉴타운 매물 거래에 대해 트러스트에 문의하는 것과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묻는 건 천지차이다. 이런 정보는 법전에서 구할수 없다”고 덧붙였다. 트러스트 측이 강점으로 앞세운 ‘법률 전문성’에 대해선 “부동산 거래는 고도의 법률 서비스가 필요한 재판과 다르다. 부동산 중개 수준 법률 자문은 공인중개사도 한다. 법률보다 중요한 건 ‘현장’”이라고 했다.

중개 수수료가 높다는 지적에 대해선 대안을 제시했다. ‘수수료 자율화’다. 그는 “현재도 거래에 따라 현행 수수료율보다 적거나 많이 받는 공인중개사가 있다. 소비자를 위한다면 수수료를 완전 자율화해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데 대한 확대 해석은 경계했다. 그는 “1심 판결에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가 부동산중개를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을 뿐이다.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를 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기아자동차 영업소장을 지낸 뒤 늦깎이로 대구한의대 풍수지리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경기도 파주에서 공인중개사로 개업해 일하다 지난해 협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부동산 중개엔 ‘휴머니즘’이 있어야 한다. 거래자 간 가격을 협상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단순 법률 행위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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