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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⑪ 경신(更新)하러 가던 서킷, 갱신(更新)하러 가다 (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매번 개인의 기록을 경신(更新)하기 위해 향하던 서킷이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서킷 라이선스(유효기간 1년)의 갱신(更新)과정이 필요하다. '빨리' 타는 것에 앞서 '오래' 타기 위함이다.

앞서 <경신(更新)하러 가던 서킷, 갱신(更新)하러 가다 (상)> 편에서는 갱신 과정의 첫 단계인 필기시험 단계를 이야기해봤다. 이번엔 실기시험, 바로 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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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에 퇴근해 서울에서 인제로 향하자 시간은 어느덧 동틀 무렵. 갱신 시기를 잊고 있었던지라 '단정'한 출근 복장은 서킷 주행에는 '불량'한 것이 됐다. 딱딱한 구두에 셔츠와 칼 주름 잡힌 정장 바지는 서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구두의 굽은 서킷 주행에 적합하지 않다.

서킷 주행에 나설 경우, 밑창이 얇은 드라이빙 슈즈를 신는 편이 낫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차 트렁크에 드라이빙 슈즈와 글러브, 헬멧, 한스, 발라클라바를 구비해둔 덕에 갑작스러운 서킷 방문에도 주행이 가능했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잠과 맞바꾼 인제 스피디움 라이선스다. 신규 취득자가 아닌 갱신자의 경우 소정의 기념품도 지급된다. 사진 : 박상욱

구두라고 해서 주행을 못 할 리 만무하나 발바닥 전체로 차의 피드백을 느끼기엔 제한이 있다. 레이싱 슈즈를, 아니면 최소한 창이 얇은 드라이빙 슈즈를 권장하는 이유다. 언제나 레이싱 슈즈와 글러브, 헬멧과 한스, 발라클라바를 차에 두고 다닌 것이 처음으로 쓸모가 있었다.

실기 주행을 앞두고 차량들이 피트레인에서 대기중이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실기 주행을 앞두고 차량들이 피트레인에서 대기중이다. 사진 : 박상욱 기자

라이선스 갱신을 위한 실기주행은 신규 취득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기주행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갱신 주행인 만큼 유경험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전반적인 주행 페이스가 소폭 빠른 편이다. 페이스카(Pace Car) 역할을 하는 인제 스피디움의 세이프티카(Safety Car)를 따라 일정 랩을 주행한 이후 페이스카 없이 서킷의 디지플래그(DigiFlag, 디지털 신호기) 지시에 맞춰 주행하면 된다. 신호를 잘 준수해 코스아웃까지 마무리하면 모든 갱신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날 서킷 라이선스 갱신에 나선 드라이버는 3명에 불과했다. 이정도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자유로운 주행이 가능하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이날 서킷 라이선스 갱신에 나선 드라이버는 3명에 불과했다. 이정도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자유로운 주행이 가능하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이날은 단순히 장구류의 준비뿐 아니라 차량의 준비도 미흡했기에 주행 페이스를 굉장히 낮췄다. 엔진오일과 브레이크액 등 케미컬류를 교체한 지 4개월가량이 지났고, 브레이크 패드의 잔량도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 스포츠 타이어로 주행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4계절용 런플랫 타이어이기도 했다. 갱신 차량이 총 3대에 불과했던 만큼 서킷 환경도 낮은 페이스로 달리기에 적합했다.

빨라지고 싶다면 먼저 천천히 달려봐야

그런데 뜻밖에도 페이스를 낮춘 라이선스 '갱신'만을 위한 주행은 결과적으로 기록 '경신'에도 도움이 됐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양을 최소화하면서 전반적인 주행 속도는 느려졌지만 덕분에 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트랙의 기울기와 곡면의 변화, 연석 마다의 크기와 높이 등의 차이, 차량의 하중이 이동하는 양상과 별다른 스키드음 없이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는 속도 등등. 무조건 빠른 기록을 내겠다며 연신 자동차를 몰아붙일 때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부분이다.

천천히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갖고 서킷을 돌아보면 평소 스포츠 주행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게 된다. [사진 엑스타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천천히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갖고 서킷을 돌아보면 평소 스포츠 주행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게 된다. [사진 엑스타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천천히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갖고 서킷을 돌아보면 평소 스포츠 주행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게 된다. [사진 엑스타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두번째 갱신으로 '인제 3년차'에 접어들었다. 무리 없는 주행이었지만 랩타임은 생애 첫 서킷 주행보다 빨랐다. 분명 첫 주행에서 타이어는 비명소리를 내질렀는데, 더 빠른 랩타임을 낸 이번 주행에선 아무런 스키드음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럼 얼마나 부질없이 타이어만 태워왔던 것인가' 되돌아보게 됐다. 2018년 갱신 주행 때에는 또 2017년의 주행이 얼마나 모자랐는지 깨닫게 될거라 생각하니 겸연쩍어진다.

페라리 스쿠데리아 F1 드라이버와 팀 크루가 경기에 앞서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서킷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Formula 1 홈페이지

페라리 스쿠데리아 F1 드라이버와 팀 크루가 경기에 앞서 트랙워크를 하며 서킷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 Ferrari Scuderia 홈페이지
WEC 참가 팀의 드러아비와 크루가 트랙워크를 하며 서킷 상태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 WEC 홈페이지
Williams Martini Racing F1 드라이버와 팀 크루가 경기에 앞서 트랙워크를 하며 서킷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 Formula 1 홈페이지

실제 프로 선수들은 대회에 앞서 서킷을 천천히 둘러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미 수천바퀴의 랩을 소화한 선수들도 대회 직전엔 반드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다시금 트랙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가까이에서 볼수록 포장면의 세세한 부분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이들처럼 서킷을 거닐며 상세히 포장면을 살펴보는 일은 아마추어 드라이버에겐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는 없어도 천천히 돌아보는 것으로 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될 때, 이 '느림'은 '빠름'을 향한 답을 줄지도 모른다.

[사진 Mercedes AMG DTM 홈페이지]

[사진 Mercedes AMG DTM 홈페이지]

서킷은 스티어링을 그저 좌우로 휘젓는 1차원의 공간이 아니다. 앞뒤의 기울기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좌우의 기울기인 '뱅크(Bank)'도 있다. 그저 납작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면의 각도와 기울기가 쉴새없이 바뀌는 트랙 위를 달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사와 뱅크각은 차량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은 특히 코너에서 극대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코너를 돌아나가는 코너링은 랩 타임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다.

차량이 감속할 경우(빨간색) 앞으로, 가속할 경우(초록색) 뒤로 하중이 이동한다. 사진 : Mercedes AMG DTM 홈페이지

차량의 스티어링 휠을 오른쪽으로 감을 경우(빨간색) 왼쪽으로, 왼쪽으로 감을 경우(초록색) 오른쪽으로 하중이 이동한다. 사진 : Mercedes AMG DTM 홈페이지

서킷의 포장면이 3차원이듯 자동차의 움직임도 3차원이다. 오른쪽으로 스티어링휠을 돌리면 차체는 왼쪽으로 기울고, 왼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기운다. 가속을 하면 뒤로, 감속을 하면 앞으로 기운다.

서킷의 포장면. 위아래 경사뿐 아니라 좌우 기울기가 얽힌 3차원의 공간이다. 사진 : Mercedes AMG Petronas Formula 1 홈페이지

서킷의 포장면. 위아래 경사뿐 아니라 좌우 기울기가 얽힌 3차원의 공간이다. 사진 : Mercedes AMG Petronas Formula 1 홈페이지
서킷의 포장면. 위아래 경사뿐 아니라 좌우 기울기가 얽힌 3차원의 공간이다. 사진 : Mercedes AMG DTM 홈페이지

상하좌우 굽이진 코너를 상하좌우 움직이는 자동차로 돌아나가는 것이 바로 코너링인 셈이다. 1개의 코너를 지나는 몇초의 시간 동안 드라이버는 ① 감속하고, ② 스티어링휠을 조작하고, ③ 재가속하는 등의 행동을 수행한다. 그 사이 ① 노면의 경사, ② 노면의 좌우 기울기, ③ 차량의 전후 하중 이동, ④ 차량의 좌우 하중이동, ⑤ 타이어의 마찰력 등의 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는 각종 고려사항을 최소한으로 추린 것으로, 코너링은 그저 '핸들(스티어링휠의 잘못된 표현)을 꺾는 것' 쯤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진 : JTBC 정치부회의

사진 : JTBC 정치부회의

한때, '코너링을 잘 하면 운전병에 뽑힐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온 사회를 뒤흔든 일이 있다. 불과 몇달 전의 일이다. 실제 위에 열거한 고려사항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심도 깊이 이해하고, 또 실제 주행에 적용할 수 있다면? 운전병뿐 아니라 모터스포츠 팀 또는 관련 협회 차원에서 보호해주고 육성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코너링은 어렵고도 중요한 것이다.

모터스포츠 다이어리의 다음 이야기는, 한때 인터넷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키워드, '코너링'이다.

'다이어리'를 핑계 삼아 코너링에 대한 공부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쁨에 넘쳐 식은 땀이 난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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