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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김영란법 피하자' 재치로 만든 츤데레상 등 받은 스승들 함박 웃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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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청주고. 2학년 10반 교실에 들어서자 이 학급 담임 최선아(31·여) 교사를 향해 학생 30여 명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최 교사 앞에 반장 김진영(17)군이 서서 ‘제 2017-♥호’와 ‘크루아상(버터를 넣어 만든 빵)’이란 이름의 상장을 들고 문구를 낭독했다.

청주고 2학년 김진영(17)군이 담임 교사 최선아(31ㆍ여)씨에게 감사 상장을 전달하고 있다. 청주=최종권 기자

청주고 2학년 김진영(17)군이 담임 교사 최선아(31ㆍ여)씨에게 감사 상장을 전달하고 있다. 청주=최종권 기자

“크루아상. 위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들으면 들을 수록 엄청난 달콤함을 지니셨으므로 이 상장을 드립니다. 2학년 10반 일동.”
영어를 가르치는 최 교사는 학생들에게 ‘꿀성대’라 불린다. 김군은 “영어를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은 목소리가 아름답고 영어 발음도 좋으셔서 빵이름을 딴 크루아상을 수여하게 됐다”며 “스승의 날에 개별적으로 꽃을 달아드리지 못하지만 뜻깊은 상장을 드리게 기쁘다”고 말했다.

김영란법도 막지 못한 청주고생들의 재치 있는 스승 사랑 표현법 #담임교사와 보건·상담 교사 등 107명에게 감사 상장 제작 전달 #크루아상·츤데레상·탐정상·강아지상 등 재치 만점 상장 눈길

청주고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담임 교사에게 선물을 줄 수 없게되자 감사의 상장을 전달하게 된 것이다.  이날 청주고 학생들은 김돈영 교장을 비롯해 담임·부담임 교사, 영양·보건·상담교사 등 교사 107명에게 이색 상장을 전달했다.

청주고 학생들이 만든 스승의 날 감사 상장. 청주=최종권 기자

청주고 학생들이 만든 스승의 날 감사 상장. 청주=최종권 기자

상장 이름은 평소 학생들이 관찰한 교사의 특징과 성격을 재치있게 녹였다. 2학년 1반 홍은표 교사는 항상 학생들을 자상하게 대해준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자상’을 받았다. 2학년 4반 김현지 교사는 칠판에 예쁜 글씨를 쓴다는 평을 받아 ‘바른 글씨상’이 수여됐다. 3학년 2반 김미정 교사는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다고 해서 ‘마더 테레사상’을, 항상 귀여운 모습으로 수업 분위기를 향상시킨 3학년 4반 정영호 교사는 ‘귀요미상’이 수여됐다.

상장 이름과 문구는 학생들이 학급 회의를 통해 정했다. 이 때문에 1학년 지도교사 사이에선 익살스런 상장 이름이 유독 많았다. 1학년 4반 함덕기 교사는 무심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을 잘 챙겨준다고 해서 ‘츤데레 상(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일본 캐릭터에서 따온 말)’을 받았다. 1학년 1반 이용원 교사는 한약처럼 쓰디쓴 충고와 조언을 자주한다고 해서 ‘한약상’이 수여됐다.
1학년 10반 최기란 교사는 강아지와 흡사한 외모를 가졌다고 해서 ‘강아지상’이 수여됐다. 이 밖에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놓는 교사는 ‘보부상’을, 담임 선생님의 한라산 정상 등반을 축하하는 ‘한라산 정상’, 뛰어난 추리력으로 제자들의 탈선을 지도한 교사에게 수여된 ‘탐정상’이 눈길을 끌었다.

스승의 날 상장 이벤트는 올해 3월 출범한 청주고 학생회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김태정(18) 청주고 학생회장은 “대의원 회의에서 김영란법 규제를 피하면서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다 상장 수여식 이벤트를 개최하게 됐다”며 “개인적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이번 행사를 통해 선생님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스승의 날 이벤트 비용은 청주고 교복 물려주기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청주고는 졸업하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교복 물려주기를 한다. 교복이 필요한 학생은 한 벌에 1000~2000원에 구매하고 이 비용은 학생회 회비로 사용했다. 학생들은 이날 상장 수여식을 촬영한 뒤 교사들 메신저와, 학교 홈페이지, 학생회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하기로 했다.

이날 ‘문학의 여신상’을 받은 최지은(36·여) 교사는 “김영란법을 우회한 학생들의 재치있는 발상 덕에 삭막할 것 같았던 스승의 날에 웃음꽃이 폈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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