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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갈갈이' 찢긴 사회는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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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이제 서로 협력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야 할 때다. “갈갈이/갈가리 찢긴 사회를 봉합하고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언론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가닥으로 찢어진 모양을 나타낼 때 ‘갈갈이’라고 해야 할까, ‘갈가리’라고 해야 할까.

‘갈가리’는 ‘갈갈이’를 소리 나는 대로 잘못 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갈가리’와 ‘갈갈이’는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이므로 구분해 써야 한다.

‘갈갈이’는 ‘가을갈이’의 준말이다. ‘가을갈이’는 다음 해의 농사에 대비해 가을에 논밭을 미리 갈아 두는 일을 뜻한다. “우리 민족은 오랜 경험을 통해 갈갈이가 다음 해 농사에서 작물의 소출을 높여 준다는 것을 알았다” 등처럼 쓸 수 있다.

‘갈가리’는 ‘가리가리’의 준말이다. ‘가지가지’가 줄어 ‘갖가지’가 되고, ‘고루고루’가 줄어 ‘골고루’가 되는 것처럼 ‘가리가리’가 줄어 ‘갈가리’가 된 것이다.

‘갈가리’를 ‘갈갈이’라고 잘못 쓰게 된 데는 ‘갈갈이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모았던 TV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다. 무를 이빨로 갉는 묘기 때문에 ‘갈갈이’를 무를 가리가리 산산조각 내는 행위를 표현한 단어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갈갈이’는 ‘가리가리’가 아닌 ‘갉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쓴 표현으로 보인다.

‘갈바람’과 같이 ‘가을’의 줄임말이 ‘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갈갈이’가 가을에 하는 (토양) 갈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가을갈이-갈갈이’ ‘가리가리-갈가리’가 짝이라 기억하자.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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