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대통령에 부담” 공세 … 인사추천위 일단 접은 추미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새 정부 내각에 주요 인사를 천거하려 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인사추천위원회’가 당·청 갈등 양상까지 보이며 좌초했다. 인사추천위는 추미애 대표가 밀어붙였던 카드였으나 당내 친문(親文)계가 제동을 걸었다.

새 정부 인선 둘러싼 갈등 잠복 #추 “당이 인사 추천 투명하게 관리” #당무위서 당헌 개정하려다 포기 #친문·비문, 16일 원내대표 경선 등 #당 주도권 싸고 재격돌 불씨 남아

인사추천위는 추 대표가 지난해 8·27 전당대회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구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당·청 일체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며 화답했다. 추 대표는 “이번 대선은 과거처럼 후보 캠프 중심이 아닌 당이 중심이 돼 치렀던 만큼 선거 뒤 공직 인사에도 당의 추천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인사추천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새 정부 내각의 인사 추천 문제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당무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은 대표 비서실장인 신창현 의원. [박종근 기자]

새 정부 내각의 인사 추천 문제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당무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은 대표 비서실장인 신창현 의원. [박종근 기자]

하지만 민주당은 12일 당무위원회를 열어 인사추천위 관련 조항을 당헌 개정안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국정운영에 필요한 인사추천에 관한 필요한 사항은 당규로 정한다’(당헌 113조 5항)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 부닥치면서였다. 이를 계기로 사실상 인사추천위는 없던 일이 됐다는 평가다.

이날 당무위에서 추 대표와 친문계 전해철 의원 등이 설전을 벌였다.

▶추 대표=저는 인사위원회 없이 가만히 있어도 당 대표로서 인사를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정부마다 인사권이 특정 계파의 패권에 의해 왜곡되거나 비선으로 흘러가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나. 당에선 인사추천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려는 거지, 대통령을 압박하려는 게 아니다.

▶전해철 의원=당에서 추천한 인사를 대통령이 받기도, 안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이석현 의원=당무위에서 이미 의결했고, 이야기가 끝난 거다. 왜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거냐.

이 과정에서 논란을 정리한 쪽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낸 박남춘 의원이었다고 한다. 박 의원은 “이번 인사추천위는 대표가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것인 만큼 당 대표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라면서도 “인사라는 게 공식화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되고 분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며 관련 조항 삭제를 제안했다.

결국 지난 3월 당헌 개정 당시 113조 4항(‘대통령은 정례적인 당정협의를 해야 한다’)에 추가했던 ‘국정운영에 필요한 인사를 추천할 수 있다’는 내용만 유지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추 대표로선 인사 추천권 추가만으로도 “당·청 일체의 의미가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추 대표와 가까운 김민석 특보단장은 “인사 추천은 공적으로 해야 한다는 추 대표의 의중과 대통령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우려를 절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사추천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당내 갈등 요인이었다. 추 대표는 지난 11일 비공개 최고위에서 인사추천위 구성안 의결을 위한 중앙위원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친문계 중심의 최고위원들이 반대하자 “왜 어렵다고만 하느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추 대표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앙금도 당·청 간 난기류의 하나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으로 일한 임 실장은 추 대표의 중앙선대위 인선을 공개 비판한 일이 있다. 이에 추 대표가 격분해 임 실장의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임 실장이 11일 취임 인사차 국회를 방문했을 때 추 대표는 임 실장을 만나주지 않았다.

집권 초반 여권 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신경전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추 대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위한 당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추 대표는 비문 인사를 중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당내에선 “추 대표가 친정 체제를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선대위 총무본부장으로 일했던 안규백 사무총장이 사무총장직을 그만두기로 한 게 그 신호탄이다. 사무총장 후임으로 김민석 특보단장을 염두에 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오는 16일 새 원내대표를 뽑는다. 친문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홍영표 의원과 고(故) 김근태계의 우원식 의원 두 명만 출마해 주류·비주류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추인영·채윤경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