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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듣고 공감하고 알려주고 … 오래 잊고 살아온 소통의 원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다. 여기까지는 젊은이들의 비극이었다. 여기에 취업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가 오포세대다. 20~30대로 더 넓혀졌다. 여기에 또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한 세대가 등장했다. 칠포세대다. 40~50대도 포함된다. 이런 용어들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역설적으로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 싶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먹고사는 경제적 문제는 그렇다 치고 왜 인간관계마저 포기하게 됐다는 것일까?

흔히 인간사 고통의 대부분은 관계의 어려움에서 온다고 한다. 직장 동료, 남녀, 가족, 윗사람·아랫사람, 갑과 을의 어려움 등 사람 관계의 불화가 만가지 고통의 시작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소통하라고 한다. 소통. 그거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전화·편지·e메일·메신저·페이스북까지 소통 수단은 이렇게 넘치고도 많은데, 왜 그렇게 소통은 더 힘들어졌을까?

요즘엔 혼자 사는 것이 편해 혼밥·혼술 하는 사람이 많다. 다수를 따라가는 경향도 희미해져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투표도 소신투표가 더 많아졌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개취(개인의 취향)’라는 줄임말이 유행하기도 한다. 친구와 겉친구(Acquaintance)를 구분하기도 한다. 겉친구는 아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뭐든지 빨리 해대고 마는 한국 사회에서 관계도 속성으로 만들어진다. 취하도록 같이 술 마시고, 새벽부터 일어나 골프 치러 함께 가고, 등산이나 종교 모임에 행여나 빠질세라 열심히 나간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때뿐 술 깨고 나면 서먹해지고, 골프 치다 보면 갑과 을이 느껴지며 신성해야 할 종교 모임마저 분란이 일어난다.

사람과의 관계는 이렇게 어려운 데 반해 기계와의 관계는 갈수록 편해지고 있다. 컴퓨터와 인간의 대화 방식을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erface)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카드에 일일이 구멍을 뚫어 컴퓨터에 알려 주어야 했다. 지금은 키보드·마우스를 거쳐 음성 인식이나 얼굴 인식이 가능한 세상이다. 기계가 알아서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내 마음을 미리 눈치채기까지 한다.

그래서 컴퓨터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흔히 소통이라고 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컴퓨터는 늘 먼저 듣는 역할이다.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입력할 때까지 기다린다. 컴퓨터는 경청부터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를 언제나 피드백해 준다. 반응 없는 컴퓨터란 없다.

만일 시간이 걸리는 요구라면 컴퓨터는 모래시계를 뱅뱅 돌리거나 상황막대를 보여줄 것이다. 기다려야 하는 인간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대화창을 열어 옵션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 결코 혼자 알아서 해 버리는 법은 없다. 무엇보다 컴퓨터는 인간을 지배하려 들거나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만나자고 하진 않는다.

물론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소통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원래 해 왔던 소통 방법을 잊어 버린 것이다. 소통으로 주고받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마음이다. 많은 이야기가 필요 없다. 듣고, 공감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이 쉬운 원리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소통을 강조하는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광화문에서 퇴근길 국민과 소주 한잔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기대가 크다. 너무 오랫동안 불통의 시대를 겪었다. 우리가 원래 살았던 방식, 소통하는 시대를 살고 싶다.

임문영 인터넷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