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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보호 소홀 국가 잘못” vs “병역거부 허용 北 돕는 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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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호 11면

양심적 병역거부 잇단 무죄 판결 논란

군대 [중앙포토]

군대 [중앙포토]

양심적 병역거부는 제2의 간통죄가 될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6건을 포함해 총 30여 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사건을 심리 중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병역법 제88조 1항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헌재는 이미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이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도 2004년 전원합의체를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적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국방의 의무를 위해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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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은 하급심 법원 판사들이다. 2011년 헌재의 두 번째 합헌 결정 이후 사라졌던 무죄 판결이 2015년을 기점으로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사법적 최종 판단기관인 대법원·헌재에서 여러 차례 유죄, 합헌이라고 본 사안을 두고 판사들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데 주목하고 있다. 2015년 2월 폐지된 간통죄처럼 하급심발 사법혁명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측면에서다. 간통죄도 4차례 합헌 결정이 났지만 하급심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부분 집행유예형을 선고해 관련 조항을 식물형법으로 만들기도 했다. 결국 다섯 번째 심리에서 헌재는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런 전례에 비춰 보면 하급심에서 이어지고 있는 무죄 판결 동향이 큰 변화의 전조가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 잘못 지적하는 무죄 판결 #하급심발 사법혁명될지 관심 #간통죄 위헌 당시 상황과 유사 #“무조건 1년6개월 실형은 부당” #“섣부른 판결 병역제도 붕괴 불러” #힘든 대체복무 등 국민 합의 필요

올해만 7차례 하급심 무죄 판결

2000년까지만 해도 종교·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이들에겐 군사재판에서 징역 3년형이 관행처럼 선고됐다. 강제로 입영시킨 뒤 총을 드는 것을 거부한 데 대해 항명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관행은 2001년 재판 관할권이 민간 법원으로 넘어오면서 바뀌었다. 민간인 법관들은 병역법 시행령상 1년6개월 이상 실형을 받아야 병역이 면제되는 조항을 감안해 최저형을 선고했다. 박승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는 “초창기엔 더 낮은 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감옥에서 일부러 기물 파손을 해 형량을 늘리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후 1년6개월 이상 형을 살아야 병역이 면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관들 사이에 공식처럼 활용되기 시작했다.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 한 최대한의 선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년 600여 명을 군대 대신 교도소에 보내는 일이 과연 정당하냐는 문제 제기가 반복되면서 공식은 흔들렸다. 대체복무제라는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형사처벌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법관들이 법률 조항이 위헌적이라고 판단했을 때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인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이어졌다. 헌재는 2004년 이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가 대체복무제 등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탰다. 2007년에는 국방부가 ‘병역 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병역보다 더 힘든 공공근로 업무를 담당하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골자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방부는 이듬해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논의를 중단했다. 헌재는 2011년 이 조항에 대해 두 번째 합헌 결정을 내렸다. “남북 대치 상황을 감안하면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더라도 국가 안보라는 중대한 공익 달성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판단을 쉽사리 내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잠잠했던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논의는 최근 다시 활발해졌다. 2015년 전까지만 해도 4건에 불과했던 무죄 판결 건수가 급증하면서다. 지난해까지 항소심을 포함해 10여 건의 무죄 판결이 쏟아진 데 이어 올 들어선 지난달까지 7건의 무죄 선고가 추가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올 초에는 예비군훈련에 불참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사실관계가 거의 동일한 사건에 대해 유무죄가 갈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법관들도 이른바 ‘양심적 유죄 거부’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잘못 불이익 개인 전가는 부당”

무죄 판결을 내린 법관들은 한결같이 소수자 보호를 소홀히 한 국가의 잘못으로 인한 불이익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항소심에서 첫 무죄를 선고한 광주지법 형사3부가 판결문에 쓴 설명이다.
“피고인은 병역의무를 기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의무를 이행할 의사는 있지만 집총 병역의무는 양심 또는 종교상 교리와 충돌하니 다른 대체역무를 부과한다면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국가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런 갈등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도로의 설계가 잘못돼 다수가 이용하는 한 방향만 통행이 가능하고 소수가 이용하는 다른 방향은 그 이용이 불가능한데 잘못된 설계를 바로잡을 생각 없이 무조건 소수에게만 생각을 바꾸라고 하는 것이다.”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사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소수자 보호다. 다수결에만 의존하다 보면 소수가 희생되기 쉽기 때문이다. 소수의견은 다수의견과 대립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다수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것은 형평성 문제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국가는 누군가 지켜야 한다. 양심적 이유로 대체복무를 허용한다고 하면 누가 군대에 가려고 하겠나. 그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국가에 속한 국민으로서 의무는 다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없으면 사법부도 없다”고 지적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도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를 지켜 줄 무장력은 현역 군인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면 북한을 도와주는 셈이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은 대체복무가 조금 길면 어때 이런 생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현실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부의 섣부른 무죄 판결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체복무가 필요한 건 공감한다. 하지만 엄연히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죄를 선고하면 병역제도가 붕괴될 수 있다. 현행법대로 판단하든가, 아니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결론을 기다리든가 하면 되지 독자적으로 재판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고 말했다.

헌재 “탄핵 다음으로 까다로운 사건”

“진작에 검토는 다 끝났다. 하지만 선택을 못하고 있다. 탄핵 사건 다음으로 까다로운 사건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심리 진행 상황을 묻자 돌아온 헌재 관계자의 답변이다. 기존에 진행된 2차례 합헌 결정 사건과 2015년에 열린 공개변론을 통해 양측 주장과 근거는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 하지만 주요 판단 기준 중 하나인 사회적 공감대 측면에서 확신에 이를 만큼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사회적 기류는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2014년 병무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체복무 도입에 대한 반대의견은 58.3%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국민인권의식 조사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한다는 의견이 52.1%였다. 2005년 89.9%와 비교하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국민이 부정적인 셈이다.

실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느끼는 체감 정도는 더하다. 현재 1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박상욱(23)씨는 “아버지가 14년간 특전사로 근무하시는 모습을 보고 군대를 가면 안 되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지난해 친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는데 ‘빨갱이’라며 절연 선언을 하더라”고 말했다.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이상민(30)씨는 “친한 친구들조차 이해는 하겠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국방부도 이 같은 국민적 여론을 감안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관련 법안에 반대의견을 내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과 향후 병역자원 부족 등을 고려하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대체복무제는 향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국가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해 도입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류가 다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변호사 63.4%가 대체복무 없는 병역의무 요구는 헌법 위반이라고 답했다. 대체복무제를 법률로 도입하자는 의견에는 80.5%가 찬성했다.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하기 전에 국회와 정부에서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군대만큼 우리나라에서 민감한 문제는 없다. 사적인 자리에선 특히 군대 갔다 온 남자라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전부 반대할 것이다. 그런 문제인 만큼 국민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섬 같은 근무 기피 지역에 현역 복무기간의 두 배 정도 합숙 형태로 근무하게 하면 국민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공공근로가 필요한 영역은 계속 늘고 있다. 병역거부자에게 굳이 형사처벌을 가해 인생을 망치게 하는 대신 누구나 인정할 만큼 힘든 대체복무를 하게 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박민제 기자, 조수영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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