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사전투표율이 전국 최고인 이유를 알아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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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차이자 어린이날인 5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별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차이자 어린이날인 5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별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 차인 5일 오후 2시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별관. 건물 2층 엘리베이터에서 시민들이 쉴새 없이 내렸다. 이 건물 대강당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하려고 방문한 이들이다.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온 노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투표소로 향하는 동안 바로 옆 계단에서도 시민들이 오르락내리락했다.

10년 만에 정권 교체 기대감에 문재인 안철수 후보 지지자 결집 #국민의당 광주 국회의원 8명 전원 사전투표 동참 분위기 조성 #선거법 개정으로 자유로운 인증샷에 최장 10일 안팎 연휴도 작용

어린이날을 맞아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들도 많았다. 10명 이상 대가족이 한꺼번에 찾아와 동시에 투표하고 가기도 했다. 지난해 말 군을 제대한 아들과 함께 방문한 최대엽(48)씨 부부는 “정식 투표일인 오는 9일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긴 연휴를 이용해 미리 투표했다”고 말했다.

사전투표가 치러진 지난 4일부터 이틀간 호남 지역 곳곳에서는 이런 풍경이 이어졌다. 전남의 사전 투표율은 28.95%(5일 오후 3시 현재)로 전국 17개 시ㆍ도 가운데 가장 높았다. 광주광역시(28.32%)와 전북(26.69%)도 세종시(28.33%)에 이어 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전체 사전투표율 평균 21.2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차이자 어린이날인 5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별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차이자 어린이날인 5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별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호남 지역 투표율이 유독 높았던 것은 정권 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게 유권자들의 목소리다. 정치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는 반대 성향을 띤 유권자들이 10년 만에 보수 정당에서 정권이 진보 쪽으로 넘어올 기회가 왔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섰다는 얘기다. 실제 빛가람동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회사원 윤종우(37)씨는 “정권을 바꾸기 위해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를 내세운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후보가 주자로 나선 국민의당 등 야권 후보끼리 ‘텃밭’의 표심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 흥미로운 선거 구도도 각각의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투표율을 높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국민의당 소속 광주 지역 국회의원 8명 전원이 사전투표 첫날 모두 투표를 마치는 등 투표 열기를 더한 것도 지역 유권자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1980년 5ㆍ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한 민주화의 고장인 호남 유권자들의 짙은 촛불민심이 높은 투표율로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전투표를 한 장모(32ㆍ광주광역시)씨는 “지난해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며 탄핵 이후 새 대통령을 뽑을 투표일만 기다려왔다. 정식 투표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 사전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차이자 어린이날인 5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별관에 설치된 투표소를 찾은 가족 단위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2일차이자 어린이날인 5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별관에 설치된 투표소를 찾은 가족 단위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엄지를 들거나 손가락으로 ‘V’자 표시하기, 특정 정당과 후보자의 기호 표시하기 등 자유로운 투표 인증샷이 가능해진 상황이 투표 욕구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 호남을 비롯해 전국의 투표소에서는 개성 있는 포즈로 인증샷을 찍고 곧바로 SNS에 올려 주변의 투표를 권유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전남선거관리위원회 한요택 공보계장은 "이번 선거가 궐위선거인 데다가 근로자의 날(1일), 석가탄신일(3일), 어린이날(5일)에 이은 주말과 공휴일 등으로 만들어진 10일 안팎의 5월 황금연휴도 높은 투표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주=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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