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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개헌, 때가 무르익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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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일 일본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신헌법 제정 추진 대회’에서 연설 중인 아베 신조 총리(가운데). 그는 개헌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AP=뉴시스]

1일 일본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신헌법 제정 추진 대회’에서 연설 중인 아베 신조 총리(가운데). 그는 개헌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AP=뉴시스]

“과거에는 헌법에 손가락 하나 대서는 안 된다는 논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헌법을 불마(不磨·불멸)의 대전(大典)으로 생각하는 국민은 매우 적지 않나.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다.”

70돌 맞은 평화헌법 개정 드라이브 #기시·신타로 이어 3대째 밀어붙이기 #중·참의원 개헌파 3분의 2 넘었지만 #야권 ‘군 보유’ 위한 9조 개정 소극적 #국민도 개헌 반대가 50%, 찬성 41%

일본의 헌법 시행 70돌을 이틀 앞둔 1일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헌정기념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초당파 의원 모임의 신헌법 제정 추진 대회에서 다시 개헌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헌법 시행 70년의) 분수령의 해에 반드시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겠다”고도 했다. 아베는 지난달 말의 ‘헌법 시행 70주년 기념식’에서도 “헌법은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전면에 나서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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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1993년 정치 입문 이래 개헌 세력의 주축을 맡아왔다. 개헌은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이래 아베가(家) 3대의 숙원이기도 하다. 아베는 관방장관 때인 2006년 “아버지(신타로·晋太郞·전 외상)도 조부(기시)도 이루지 못한 과제를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행 헌법은 46년 연합국의 일본 점령 당시 미군 주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초안을 작성하고 국회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이듬해 5월 시행됐다. 교전권을 포기하고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9조 때문에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반면 일본 우파 세력은 현행 헌법을 GHQ에 의한 ‘강요 헌법’이라며 자주 헌법 제정론을 펴왔다.

신헌법 제정 의원모임 회장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이날 “현행 헌법은 더글러스 맥아더(GHQ 사령관)의 초법규적 힘이 작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헌은 국민이 처음으로 직접 참여해 헌법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아베 주도의 개헌 작업 토대는 상당 부분 마련됐다. 중·참의원 양원 모두에서 개헌에 적극적인 세력의 의석이 3분의 2를 넘는다. 3분의 2는 국회의 개헌안 의결과 국민투표 발의를 위한 정족수다. 여기에 집권 자민당은 총재 3연임을 허용해 아베 정권이 개헌 전략을 마련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놓고 있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적잖다. 우선 개헌 세력 간에 개헌의 속도나 내용에 대해 입장 차가 크다. 자민당은 헌법 9조 개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2012년에 내놓은 헌법 개정 초안은 현재의 평화주의를 견지하면서도 국방군 보유를 명시하고 있다. 자위대가 아닌 군을 가진 보통 국가의 실현이 목표다. 반면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은 9조 개정에 극도로 신중하다. ‘평화의 당’을 표방해온 만큼 환경권 등 국민의 권리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유신회는 총리 직선제 도입을 축으로 하는 권력 구조 개편에 큰 관심을 둔다.

민진당 등 야권도 개헌의 총론에는 찬성 쪽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에서의 개헌에는 반대하고 있다. 9조 개정에도 소극적이다. 현재 중·참의원에 개헌 문제를 논의하는 헌법심사회가 설치돼 있지만 겉도는 것은 각론에 대한 간극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1일 “자민당 개헌 초안을 그대로 국민에게 제안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은 일단 국회에서 공통분모를 확대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국민 여론도 큰 변수다. 개헌의 마지막 관문은 국민투표의 과반 확보다. 하지만 개헌에 대한 국민의 저항감은 크다. 현행 헌법이 전후 70년간의 평화에 한몫했다고 보는 믿음 때문이다.

2일 발표된 아사히신문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1%로, 반대(50%)를 밑돌았다. 현행 헌법이 “일본에 좋았다”는 응답은 89%에 달했다. 9조 개정에 대해선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63%로 개정 찬성(29%)을 압도했다.

아베로선 9조 개정은 뒤로 미루고 긴급사태 조항이나 환경권 신설 등을 축으로 한 개헌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2단계 개헌론이다. 국민의 공감대 확산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내년 말까지 치러질 중의원 선거, 2019년 참의원 선거, 2020년 도쿄 올림픽 등을 고려하면 실제 개헌은 올림픽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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