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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DMZ, 5·18 아픈 역사 … ‘블랙 투어리즘’ 관광자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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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관광산업 체질 바꾸자 

지난 13일 경기도 파주 제3땅굴을 견학한 외국인 DMZ 관광객들. [사진 코스모진]

지난 13일 경기도 파주 제3땅굴을 견학한 외국인 DMZ 관광객들. [사진 코스모진]

“중국인이 작년보다 최대 90% 줄었어요. 아무리 일본·동남아에서 메운다고 해도 작년의 절반이나 채울까 걱정입니다.”

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제안 #분단 현장, 일제 유산, 민주화 등 #외국인에겐 한국에만 있는 볼거리 #역사·문화 콘텐트 적극 활용해야 #중국인 관광객 감소, 재정비 기회로

지난 1월만 해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遊客)으로 가득했던 한 테마파크 관계자의 토로다. 지난달 15일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 관광상품 판매를 금지한 이후 국내 관광업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유커 전문여행사는 개점 휴업 상태고,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40% 줄었다.

자료:문체부·남이섬

자료:문체부·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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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 외국인(1724만1823명) 중 중국인(806만7722명)이 절반 가까이(46.7%) 됐다. 그런데 중국인 관광객이 3월 한 달 동안 전년 대비 40%나 빠지면서 국내 관광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중국 시장에 의존하던 관광산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자료:문체부·남이섬

자료:문체부·남이섬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문화분과 위원들도 “관광산업 정상화를 위한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문제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시장을 재정비하고 시스템을 회복하는 기회”라고 했다. 중앙일보 온라인 여론 수렴 사이트 시민마이크(peoplemic.com)에 올라온 의견도 다르지 않다. ‘중국 관광객 감소가 한국 관광산업의 위기일까’라는 질문에 ‘지나친 중국 의존을 탈피할 기회’라고 답한 시민이 87%를 기록했다.

자료:문체부·남이섬

자료:문체부·남이섬

경계할 점도 있다. 중국인이 빠진 자리를 동남아인으로 채우겠다는 정부 대책에는 문화 콘텐트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문화분과 위원들은 쇼핑 위주의 유커 대상 저가상품을 동남아 대상 저가상품으로 대체하는 돌려막기를 피하려면 문화 콘텐트를 활용한 관광자원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했다. 문화 인프라 구축을 통한 관광의 안정적 성장이다.

실행과제1. 네거티브 헤리티지 활성화하자

우리나라는 자연·문화자원이 빈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세계 유일의 관광자원이 있다. 냉전의 현장인 판문점과 비무장지대(DMZ)다. 통계를 보면 DMZ 방문객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늘 많다.

우리에겐 아픈 역사가 외국인에게는 귀한 볼거리가 된다. 전문용어로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라 부르고, 관련 관광산업을 ‘블랙 투어리즘’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한다. 김종민(전 문화관광부 장관) 문화분과장은 “역사의 네거티브도 우리 것으로 소화해 문화관광 콘텐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경기도 의정부시는 관광 도시가 아니다. 군사 도시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16년째 음악극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의정부의 대표 음식이 부대찌개입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 새로운 음식이 됐죠. 음악극도 음악과 드라마가 어울린 장르입니다. 군사도시의 이미지를 예술로 승화하려는 데 축제의 가장 큰 뜻이 있습니다.”

4년째 축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이훈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관광학자가 지방 도시의 예술 축제를 이끈다는 점에서 문화관광 축제의 의의가 있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아시아문화전당도 아픈 현대사를 문화예술로 승화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에 120여 개가 남아 있는 일본군 갱도 진지와 전북 군산과 전남 목포 등의 근대문화유산은 일제강점기 흔적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사례다. 부산에도 영도다리·초량동·감천동 등 피란민의 애환이 서린 유산이 수두룩하다.

실행과제2. 안방 시장부터 다지자

지난달 15일 이후 롯데그룹이 본 관광산업(면세점·호텔·테마파크 등) 피해액은 약 2500억원으로 집계된다. 롯데의 피해가 유독 큰 것은 관광상품이 유커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시장을 다변화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문체부에 따르면 2015년 국내 관광산업 규모는 63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관광산업은 인바운드(외국인 국내 관광), 아웃바운드(한국인 해외 관광), 인트라바운드(한국인 국내 관광)로 구분되는데 의외로 인트라바운드 시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앞장서 중국인 단체에 각종 편의를 제공했지만 사실 최선의 정책은 국민의 국내 관광 활성화였다. 김대관 경희대 호텔관광대학장은 “정부와 업계 모두 외국인 유치에 신경을 썼을 뿐 국내 관광에 대한 산업적 고민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문화 콘텐트를 활용한 국내관광의 성공 사례가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다. 2011년 문체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서 비롯됐다. 쇠락한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작가 27명이 골목 담장에 그림을 그렸다. 시장 골목이 하루 평균 1000명이 찾는 대구 최고의 명소로 거듭나자 관광 당국과 지자체가 인프라를 추가했다. 문체부는 시티투어 버스 ‘김광석 음악버스’ 운행을 시작했고, 대구 중구청은 옛 양로원 건물을 개조해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를 개장할 예정이다. 코레일의 ‘내일로’(만 25세 이하 기차 자유여행권) 여행자 대부분이 대구를 들르는 이유도 김광석 거리 인증샷 때문이다.

실행과제3. 우리 것을 젊고 매력적으로

심상민 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며 “우리의 진짜 문화가 있어야 관광이 되살아난다”며 “우리 문화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젊은 콘텐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적인 문화를 젊은 층이 즐기는 매력적 자원으로 만들자는 의견이다.

한류 활용 디지털 콘텐트는 이미 관광산업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서울 삼성동의 ‘SMTOWN@coexartium’은 한류 스타의 홀로그램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지난해만 115만 명이 방문했다. 매일 홀로그램 콘서트가 열리는데, 동방신기 공연의 경우 일본인 관객 비중이 94%나 된다.

서울 을지로 롯데피트인에서는 ‘K-Live’ 공연이 펼쳐진다. 빅뱅·싸이·GOT7 등 K팝 스타의 홀로그램 콘서트 현장이다. K-Live 측은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체험 시설도 인기가 많다”며 “외국인 관객은 대부분 SNS나 온라인 여행사로 예약한 개별 여행자”라고 설명했다.

한국적인 것을 관광상품으로 활용한 사례가 한복 체험이다. 서울의 경복궁·북촌, 전주 한옥마을 등은 한복을 입고 찍은 인증샷을 SNS에 올리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복 체험 여행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한옥마을에만 50곳이 넘는 대여점이 성업 중이며, 한복이나 옛날 교복·교련복을 입고 인증샷을 남기는 젊은 층의 ‘코스튬 투어(Costume Tour)’ 문화가 전국의 관광지도를 바꾸고 있다.

◆특별취재팀=박정호 문화전문기자, 손민호 기자, 김혜진(연세대 대학원 사회복지학2) 인턴기자 jhlogo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