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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의 경고 “중국 공산당, 민족주의에 자신이 타버릴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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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후쿠야마 교수 개인 홈페이지]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후쿠야마 교수 개인 홈페이지]

“중국은 주변국과 분쟁이 터질 때마다 민족주의 깃발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한국과 갈등이 벌어지자 중국 정부는 민중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했다. 중국 공산당이 민족주의를 활용하려고 시작했겠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자신이 타버릴 수 있다.”
『역사의 종말』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지난 15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가진 한 대담에서 한 말이다. 후쿠야마와 대담을 한 대만 중앙연구원(학술원 격)의 주윈한(朱雲漢) 원사는 “향후 10년간 미국의 엘리트는 각 영역에서 미국의 지위를 중국이 대신할 수 있으며 미국은 반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힘들게 학습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만 창 펑(長風) 기금회 초청으로 대만을 방문한 후쿠야마 미국 스탠포드대 정치학 교수는 ‘미·중 대결과 그 영향’을 주제로 주윈한 원사와 대담을 갖고 향후 미·중 관계를 전망했다.
다음은 대만 『천하잡지(天下雜誌)』에 실린 대담 요지

중국 시진핑 정권은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몽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중국 시진핑 정권은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몽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미국과 중국은 국제 질서의 협력통치가 가능한가?
▶(후쿠야마)"미·중 관계는 경제와 전략 관계를 나눠서 살펴야 한다. 경제는 경쟁과 협력의 기회가 있지만, 전략은 제로섬 게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경제 사안에 있어 제로섬 게임을 펼쳤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미국과 일본이 무역협정으로 중국을 방어하려는 시도였다. 만일 경제 협력을 원했다면 중국을 포함했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TPP를 폐기한 것은 오바마 방식을 거부한 것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경우 오바마는 보이콧했지만, 일본과 다른 동맹국은 가세했다.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는 AIIB와 다른 중국의 야심 찬 전략이다. 미·중간 협력 공간이 한계가 있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공간은 미·중이 함께 게임 규칙을 만들어야 할 영역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인프라에 투자 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에 배워야 부분이다.”
▶(주윈한 원사) “전략 영역에서 미·중 사이의 협력 공간은 한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국제 질서에서 패권이 이동할 때 협력은 어려웠다. 2차 대전 기간 영국과 미국의 평화로운 패권 이동은 앵글로 색슨이란 민족 동질성과 정치체제의 유사성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국제 질서는 리스크가 매우 높다. 중국과 미국의 대치가 군사 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은 양국이 절제할 수 있다. 비공식채널을 활용해 오판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금융·무역·글로벌서플라이체인 등 여러 시스템에서 미국과 중국은 상호 협력 공간이 넓다.
미래 10년 동안 미국의 엘리트는 각 영역에서 미국의 지위를 중국이 대신할 수 있으며, 미국이 반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힘들게 학습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사드 갈등…민족주의 통제 못하면 자멸" #"일대일로, 미·중 한계 있지만 협력 가능" #

북한이 3월 6일 오전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같은 날 오후 10시 주한미군이 C-17 수송기에 싣고 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인터셉터 미사일 발사대 2대 등을 오산 공군기지에 내리고 있다. [사진 주한미군]

북한이 3월 6일 오전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같은 날 오후 10시 주한미군이 C-17 수송기에 싣고 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인터셉터 미사일 발사대 2대 등을 오산 공군기지에 내리고 있다. [사진 주한미군]

-중국은 미래에 국제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후쿠야마) “만일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2차 대전 후 미국이 했던 역할을 맡게 된다면 국제사회는 중국에 더 많은 공공재 제공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하기 쉽지 않다. 역사가 중국의 손발을 묶어 놨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과거 열강에게 침입당했던 사실 때문에 국제시스템의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다. 정권의 정당성 문제도 존재한다.
중국은 주변국과 분쟁이 터질 때마다 민족주의 깃발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한국과 갈등이 벌어지자 중국 정부는 민중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했다. 중국 공산당이 민족주의를 활용하려고 시작했겠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자신이 타버릴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나쁘지 않아 아직 민족주의를 도구로 삼을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일단 중국 경제가 쇠퇴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야 한다. 중국 경제의 발전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중국같은 대국이 고성장을 유지한 선례는 없다. 중국 경제가 일단 쇠퇴하면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경제가 정권을 지키는 부적이 되지 못한다면 군사력에 호소하게 될 수 있다.”
(주윈한) “중국의 굴기 속도는 지금까지 예상을 넘어왔다. 현실 정치와 심리적으로 중국은 글로벌 리더를 맡을 준비가 안되어 있고, 미국의 패권을 접수할 생각도 없다. 중국은 하지만 자신의 국가 이익에 근거해 국제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아세안+1(중국), 라틴아메리카+1(중국), 중동+1(중국)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외교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상호 유리한 시스템이다.

서울 신사동 상가 앞에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인롄카드 가맹점 표지판이 걸려 있다. [중앙포토]

서울 신사동 상가 앞에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인롄카드 가맹점 표지판이 걸려 있다. [중앙포토]

또한 AIIB, 인롄(銀聯)카드, 유쿠(優酷, 중국판 유튜브), 웨이신(微信, 모바일 메신저) 등 미국과 평행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미·중 경쟁의 주요 영역은 정권의 정당성 싸움이 아닌 과학기술 혁신과 국제정치 분야다.
IT 혁신이 가장 중요한 지표다. 첨단 기술이 사회의 안정에 끼치는 충격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이냐가 21세기 국가 거버넌스의 핵심 과제다. 이것이 가능한 사회 체제가 새로운 과학 기술을 보다 잘 활용해 더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이 스마트 시티, 그린 IT, 사물 인터넷 발전 속도에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정치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어느 쪽이 신흥 경제와 컨센서스를 이뤄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액션 플랜을 가동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예측에 따르면 2050년 글로벌 8대 경제체에는 현재의 주요 7개국(G7) 가운데 미국과 일본만 남을 것이다. 독일은 9위, 영국은 10위로 밀려난다. 중국·인도네시아·인도·브라질이 부상할 것이다.
현재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첨예한 대립을 피하고 있다. 중국이 지역 경제의 성장 기관차이기 때문이다. 인프라 건설에 융자와 직접 투자를 하고 있지만 동아시아 각국은 미국이 궁극적인 보증자가 되주기를 희망한다. 이와 동시에 미래 중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미국을 잠재적으로 능가할 것으로 의식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가 중국을 진짜 적국으로 상정할 수 없는 이유다.”

-미국 모델과 중국 모델 중 어느 쪽이 기선을 잡을 것인가?
(후쿠야마) “일대일로가 관건이다. 중국 모델의 성공 여부가 여기에 달려있다. 내가 보기에 일대일로는 과거 중국이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와 맺어왔던 방식과 다르다. 이들 지역의 상품을 수입해 중국에 파는 방식이 아니다. 중공업을 중앙아시아 등 다른 나라로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중국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성공한다면 현재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를 대폭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도전도 크다. 인프라 건설 주도형 경제성장 모델은 중국에서는 가능했지만 중앙아시아와 중동 등에서는 쉽지 않다. 통제 불가능한 요인이 많은데다 러시아의 영향력을 받는 등 중국과 환경이 다르다. 러시아가 일대일로 협력을 꺼리는 점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과거 10년간 중국이 비록 큰 성취를 이뤘지만 정치경제 발전은 10년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
중국의 우월할 수 있었던 요인은 초대형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정치체제가 효율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세계은행과 비교할 수 없이 효율이 높았다. 공개 입찰이나 국회 감독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세계 은행 등 서방기구의 핵심 가치는 법치다. 이 체제는 장기적인 발전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콩고, 베네수엘라, 엘살바도르 등에 투자를 진행하면서 내정 불간섭을 선전해왔다. 하지만 투자 손실, 환경 파괴, 노동자 권익 무시 등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베이징 모델과 워싱턴 모델의 우월을 비교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주윈한) “미국과 중국이 최종적으로 상호 적응하리라 생각한다. 최후에 혼합된 체제와 시스템이 나타나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가 병존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모델과 미국 모델은 당분간 서로 경쟁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이 이 추세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많은 조건에서 미국이 유리하다. 미국의 지리 환경이 중국보다 안전할 뿐만 아니라 동맹국도 많다. 중국은 국경을 두고 많은 껄끄러운 이웃과 접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혁신 능력, 학술 기구, 싱크탱크를 갖추고 있다. 달러는 글로벌 화폐이고 영어는 공통언어다. 중요한 소프트 파워다.
우려하는 것은 서방 세계의 역량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갈수록 쇄국으로 나가고 있다. 미국 국회가 외국어 훈련 프로그램 예산을 최근 삭감했다. 국제적인 다자 메커니즘을 선호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많은 정치가들이 단견에 빠져있다. 미·중 경쟁은 장기전이다.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결과를 알 수 있다.”

후쿠야마 교수는 대담에 앞선 14일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붕괴할 것인가?”란 주제의 공개 강연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국제정치에서 현재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포퓰리즘의 도전을 받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아시아 정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아시아의 최근 상황은 구미와 다르다. 포퓰리즘이 아직 트렌드가 되지는 못했다. 아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경제와 무역의 후퇴다. 중국은 임금 상승,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로도 흘러 나가고 있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파산했고 경기는 후퇴했다. 민중은 불만에 가득하다.

대우조선해양 등과 거래하는 협력업체가 들어선 경남 거제 오비산업단지. 조선업 불황으로 일거리가 없어 크레인은 멈춰 서 있고 작업 인력도 보이지 않는다. [중앙포토]

대우조선해양 등과 거래하는 협력업체가 들어선 경남 거제 오비산업단지. 조선업 불황으로 일거리가 없어 크레인은 멈춰 서 있고 작업 인력도 보이지 않는다. [중앙포토]

한국은 민주당이 당선될 것이다. 대만은 민진당이 승리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에서 극우파 민족주의의 등장을 보지 못했다. 아시아 대부분의 포퓰리즘 운동은 대만의 해바라기 학생운동과 같이 국가 정체성 운동이자 집권정당에 대한 항의일 뿐 급진적인 쇼비니즘은 아니다. 유럽의 극우파 정당과 다르다.
상반되게 아시아의 좌파운동은 자유주의의 중요한 일환이다. 그들은 개방사회를 희망하며 언론을 공격하지 않는다. 독재정권 구축도 시도하지 않는다. 신흥 포퓰리즘의 주요한 특징은 첫째, 반(反)엘리트 주의다. 대만 해바라기운동은 대만의 민주제도를 파괴하지 않았다. 단지 정부의 변화를 요구했을 뿐이다. 둘째, 개인숭배다.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시진핑은 모종의 민족주의를 대표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정치현상은 아니다. 공산당 내부의 적지않은 엘리트가 지지하는 국가주의다. 통치계급이 자신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일본, 중국 모두 비슷하다. 위에서 아래로 젊은이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다른 점이다.
아시아는 아직 이민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는 자만할 수 없다. 아시아 인구 구조의 감소, 노령화가 급속화되고 있다. 노동인구의 감소는 이민 문제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대량 이민을 받아들여 인구 성장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어갔다.”

후쿠야마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중국 정치를 다룬 많은 글을 저술했다. 중국 주요 국제 포럼에 참석하며 고위층과도 잦은 교류를 가져왔다. 2015년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와 대담을 나눴다. 반년 후 시진핑 주석과 회견을 가졌다.
그는 당시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중국은 근본적인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소련 해체를 재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미래에 법치로 국가의 힘을 제한할 수 있을 지, 굴기하는 중산층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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