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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처럼 가슴 뛰는 글을 찾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7호 32면

저자 : 박정태출판사 : 굿모닝북스가격 : 1만4800원

저자 : 박정태출판사 : 굿모닝북스가격 : 1만4800원

“사랑한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불멸의 문장』

연애나 결혼 관계를 위한 경구로 자주 언급되는 이 문장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고 계시는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비행 중 불시착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글귀다. 작품 속에서 이 문장은 연인 관계보다는 함께 전장에 나선 동료 간의 우정,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의미로 읽힌다. 무모한 공격 명령을 받고 사지(死地)로 향하는 동료를 보며, 비행사들은 말이 필요없는 일체감을 느낀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동료란 도달해야 할 같은 정상을 향해 한 줄에 묶여 있을 때만 동료다.”

책을 읽다 마음을 쿵 내리치는 문장을 만난 경험, 누구나 있다. 저자는 이 순간을 “‘작가가 힐끗 엿본 인생의 비밀’과 마주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훌륭한 작가란 보통 사람이라면 지나치고 말 삶의 비밀을 살짝이나마 눈치챈 사람들이고, 그 비밀이 바로 나의 인생과도 연결돼 있음을 깨달을 때 독자들은 전율한다. 일간지 기자를 거쳐 동서양 고전을 테마로 글과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가 세계적인 명작 64편에서 건져 올린 귀한 문장들을 소개한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SUNDAY S매거진에 실렸던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칼럼을 보완해 책으로 엮었다.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분석하거나 평론하는 글이 아니다. 저자의 관심은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힌트를 던지는가에 있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안정적인 삶을 내던지고 꿈을 찾아 떠나는 장면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쓴다. “마음에 들끓는 열정을 위해 과감히 현재를 버리는 순간의 짜릿한 전율”이 읽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기록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저자에게 “계시처럼 찾아와 머리통을 아주 세차게 내갈긴” 작품이었다. 이런 문장들 때문이다. “살아가야 할 이유(why)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방식(how)에도 견딜 수 있다.”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개략적인 내용은 물론 대문호들의 삶, 밑줄을 쳐야 할 주옥같은 문장들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아요.” (기 드 모파상,『여자의 일생』)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지?” (아서 밀러,『세일즈맨의 죽음』)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산비탈들이지 산꼭대기가 아니다.”(로버트 피어시그,『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등 곱씹으며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문장이 그득하다. 단 하나의 위대한 문장을 발견하기 위한 작가들의 고뇌와 몸부림도 생생하게 전해진다.『노인과 바다』같은 명작을 썼지만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비행기 사고로 참석하지 못한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보낸 연설문에 이렇게 썼다. “글쓰기는 기껏 잘해야 고독한 삶입니다”라고.

글의 주제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다시 봄’으로 챕터가 나눠져 있지만, 관심 있는 작품부터 찾아 읽는 것도 괜찮겠다. 슬슬 책장을 넘겨보다 맘에 꽂히는 문구가 있다면 그 내용만 먼저 읽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저자의 친절하고 사려깊은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불멸의 문장’이 담긴 소설을 읽고 싶어진다는 게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효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읽어야겠다 결심한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주인공 조르바, 그리고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에 대한 저자의 이런 해설이 너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우리는 매일같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나간다. 카잔차키스의 집 대문 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과도하게.’ 자유의 비밀은 여기 있다. 무서워하면 끝장이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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