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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은 정권 아닌 국가 차원에서 결정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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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우리미래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외교 안보 분야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전 회장, 김소희 우리미래 공동대표, 김제동 방송인. 김성룡 기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우리미래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외교 안보 분야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전 회장, 김소희 우리미래 공동대표, 김제동 방송인. 김성룡 기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과 방송인 김제동 씨의 대담은 14일 서울 마포구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진행됐다. 청년정당 '우리미래' 주최로 열린 '통일 대통령의 조건' 정책토론회에서다. '우리미래'는 당원 평균 연령 27세의 최연소 정당으로 지난 3월 초 창당했다. 김씨는 우리미래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석현 전 회장과 방송인 김제동 주요 대담록

두 시간여 동안 대담을 참관했던 대학생 김희영씨는 "어려운 주제를 귀에 쏙쏙 들어오게 얘기해 줘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통일을 새삼 피부에 와 닿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00여명의 2030 세대가 들어찬 대담장엔 연신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씨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을 이토록 여러 번 할지 몰랐다.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지 새삼 느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

통일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홍석현
"미국에 유학을 갔던 1972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은 뿔이 달린 나라라고 생각했다. 미국 도서관에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조앤 로빈슨 교수의 『미러클 코리아』를 읽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국내에 그 책이 있었다면 금서였을 게다. 책을 보니 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우리보다 잘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놀라웠다. 
또 하나는 1994년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인해 국내는 조문 파동에 휩싸였다. 그때 젊은 중앙일보 사장으로 있었는데, 중앙일보도 그저 보수신문의 논조를 이어갔다.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세 시간 반 동안 '3단계 통일론'을 들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전기가 됐다."
김제동
"제가 1974년생이다. 제가 잉태되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웃음). 7·4 남북공동성명서도 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도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통일이)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강산에 우리 애들이 가방 메고 수학여행 가면 좋지 않을까. 통일 되면 열차 타고 유라시아까지 수학여행을 갈 수 있는 나라를 내 딸과 아들에게 물려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우리미래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외교 안보 분야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전 회장, 김소희 우리미래 공동대표, 김제동 방송인. 김성룡 기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우리미래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외교 안보 분야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전 회장, 김소희 우리미래 공동대표, 김제동 방송인. 김성룡 기자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현 시국을 어떻게 생각하나
홍석현
"단지 '설' 이상의 상황이다. 6·25 전쟁 이래 최고조에 달하지 않았나 싶다. 이 전에 가장 위험했을 때는 북한 영변 핵시설을 타격하려고 했던 1994년이다. 그때보다 10배는 위험하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그것도 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규모 핵실험이 준비되고 있고, 오늘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다.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안보불감증'에 걸려 있지 않나 싶다."
김제동
"'늑대가 나타났다'란 거짓말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있다. 매번 안 나타나니깐. 이건 첫번째로 안보를 정권유지를 위해 이용했던 사람들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실제로 위기가 와도 믿지 않는거다. 위정자들이 안보를 망쳐 놓았다. 
반대의 상황이 있다. 위기가 최고조인데도 지금도 북핵 얘기하면 '대선에 이용하려는 거 아닌가. 위기 부추기지 마라'고 무조건 등한시하는 거다. 양쪽 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불안의 실체를 정확히 드러내야 하며, 그걸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전쟁 위험에 대한 실체를 이제 얘기해야 한다."
홍석현
"전적으로 동의한다. 직시해야 하는 건 '김정은의 북한'과 '김정일의 북한'은 다른 나라라는 점이다. 김정일이 핵을 보유하려 했다면 김정은은 5년간 세번의 핵실험, 수십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북한은 어쩌면 '2개의 코리아'를 원할 지 모른다. 현재 자칫 통일을 했다간 흡수통일이 될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경제력 차이가 40배나 난다. 남한의 우위는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북한은 누구도 침략할 수 없는 핵을 가진 나라에 전력하는 거다. (북한 김정은은) 이제는 자신감까지 차 있다. 핵 위험은 상존해 있다. 북핵에 관해선 정권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의견은
홍석현
"여태까지 사드 배치 과정 자체만 보면 나도 반대하고 싶다. 국민을 뒷방 노인네로 취급했다. 이건 안보에 필요한가, 아닌가와는 다른 문제다. 김정은의 북한은 사실상 핵을 보유한 정권이 됐다. 보수정권 9년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교류 협력을 하나도 안 하는 사이 북한의 핵보유를 방치한 셈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해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확인하고,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늦춰야 한다. 아무런 정책적 조치를 하지 못했다. 사드가 과연 효용성이 있는가는 부차적 문제다. 보수 표심이 사드 배치를 원하니 지금 대선 주자도 표를 의식하고 있다."

김제동
"오늘 홍회장과 한바탕 붙으려고 했는데(웃음) 홍 회장 의견에 100 퍼센트 동의한다. 내가 경북 성주에 가서 그토록 외쳤던 건 하나다. 평생 농사 지었던 분들을 이렇게 대우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사드 배치는 국민과 합의가 없었다. 국민의 합의가 가장 중요한 국방이다. 의견이 다른 국민이라도 함부로 내치지 않아야 한다. 하나된 힘이 가장 강력한 국방이다."

사드배치로 인해 중국의 경제보복이 이어지고 있는데
홍석현
"이 문제는 우리 국민이 합심해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드 배치는 주권국가의 안보정책이다. 이건 국가 안위가 걸린 사활적 사안이다. 반면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 역할을 다했는가. 과거 달라이 라마의 방한과 관련해서 우린 중국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주지 않았나. 이 문제는 주권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설사 손해가 있더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

김제동
"사드 배치의 첫번째 책임은 당연히 북한이다. 2차적 책임은 중국에 있다. 사드 배치는 철저히 우리 주권의 문제다. 중국과 미국에 다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드가) 필요하면 중국을 설득해야 하고, 필요 없다면 그것 또한 미국에 전달해야 한다. 미국이 배치하려 해도 국익에 맞지 않으면 배치하지 않는 것, 그것 또한 한미동맹의 시작이다. 우리가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그게 주권국가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남북교류는 활발해질 것으로 보나
석현
"북한의 도발은 남한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에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하자며 도발하는 거다. 지금은 탄핵 문제로 우연히 겹쳤을 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당분간 남북 교류협력 무드가 생기기엔 시간이 꽤 걸리지 않을까 싶다.  
두가지 이유에서다. 첫번째는 핵실험이다. 그걸 대선 앞두고 할지, 끝난 직후에 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두번째는 진보정권이 들어설 경우다. 중국은 대한민국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사드를 철회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새정부가 출범해도 최소한 6개월의 냉각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제동
"우리 국민에겐 두가지 시선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보수정권 들어서면 남북대화는 폐지한다, 진보정부 집권하면 보수층의 의견은 무조건 무시한다. 이게 잘못됐다. 어떤 이념의 정부가 들어온다 해도 최소 3가지는 진행해야 한다. 이건 전쟁중에도 하는 거다. 첫째 무조건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두번째는 인도적 지원은 해야 한다. 세번째는 이산가족 상봉이다. 이 세가지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과일나무를 키울 수 있는) 씨과일은 남겨 두어야 하지 않나."

홍석현
"대북정책은 정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결정돼야 한다. 사실 진일보한 대북정책은 보수정부에서 나와주어야 한다. 과거 공산주의국가 중국의 문을 연 것은 미국 보수정권 닉슨 집권기였다. 반대로 노동문제에 관해선 진보정부가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독일도 2000년대 초반까진 유럽의 병자였다. 노동문제에 발목이 잡혀서다. 그걸 슈뢰더 사회당 정부가 노동 유연성을 도입하면서 오늘날 독일의 번영을 만들었다. 비록 (슈뢰더 총리는) 정권은 잃었지만 자기 진영을 설득해서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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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선 어떤 후보도 통일을 얘기하지 않는다
석현
"통일담론이 실종됐다. 통일을 얘기하는 게 득표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우리의 살 길은 통일이다.(박수) 일차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게 우선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통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간디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통일을 얘기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김제동

"오늘 보니 중앙일보가 진짜 독립언론인가 싶다. 사주 의견과 반대되는 기사를 (신문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웃음)"
홍석현
"JTBC는 더 독립돼 있다.(웃음)"

김제동
"서로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만나는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반도는 70년 넘는 기간 동안 사실 섬나라처럼 살아왔다.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을 후손에게 열어주는 건 우리 몫이다. 우리가 만든 장애물은 우리가 치워줘야 한다.  
두가지 측면서 얘기하고 싶다. 분단된 국가 체계로 이뤄낼 수 있는 발전은 이제 거의 다 이뤄냈다. 그래도 이대로 살 거냐. 직장 좀 없어도 괜찮다 싶으면 통일 안 해도 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높은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통일 없이 한국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하는 건 다 사기꾼이다."
홍석현
"주미대사로 있을 때 도널드 럼스펠트 국방장관 사무실에 갔다. 동북아시아 사진이 있더라. 밤에 위성으로 찍은 건데 남한과 일본, 중국은 있는데, 북한은 없었다. 불이 없어서다. 우리는 이제 반도성을 회복해야 한다. 지난 2년간 '평화 오딧세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보·보수 지식인과 함께 중국과 연해주 등을 찾았다. 그때 연해주에서 북한을 바라보니 '저렇게 놔둬도 될까' 싶었다. 짠한 감정이 절로 일어났다. 우리는 반드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최민우·채윤경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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