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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할롱베이도 식후경? 달콤짭짤 ‘반쎄오’ 요리 배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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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식 문화가 발달한 베트남에서는 여행자 대상 요리 강습 프로그램이 인기다. 다양한 국적의 사이공 쿠킹클래스 참가자들이 빈대떡과 비슷한 반쎄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최승표 기자]

미식 문화가 발달한 베트남에서는 여행자 대상 요리 강습 프로그램이 인기다. 다양한 국적의 사이공 쿠킹클래스 참가자들이 빈대떡과 비슷한 반쎄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최승표 기자]

가이드북에서 ‘필수 코스’로 소개하는 곳은 피한다. 대신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을 간다. 기억에 남을 만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요즘 사람들이 여행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게 요리 체험이다. 단지 맛집을 찾아다니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미식 체험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뜨는 쿠킹클래스를 직접 체험하고 왔다. 요리만 배운 게 아니었다. 취향이 비슷한 현지인, 다국적 여행자와 격의 없이 어울렸고, 값비싼 리조트에서 하룻밤 묵는 것보다 뜻깊은 추억을 얻었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음식을 즐기지 않았다. 한국 베트남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밋밋하기 때문이다. 서너 번 출장과 여행으로 베트남에 갔을 때 경험한 맛은 그렇지 않았다. 유명 맛집과 길거리 음식, 커피와 디저트까지 하루 5식은 기본. 어떤 음식을 먹든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화려하면서도 건강한 맛, 달고 짜고 시고 맵고 쓴맛이 묘하게 버무려진 모든 음식은 미각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 줬다. 그래서 벼르고 별렀다. 베트남 갈 기회가 생기면 꼭 요리를 배워보겠다고. 그리고 3월 3일 호찌민의 한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잡아 들었다.

호찌민‘사이공 쿠킹클래스’ 체험 #‘시장투어+3코스 요리’ 과정 5만원 #바나나꽃 샐러드에 전통 수프 뚝딱 #다국적 여행객과 수다떠는 재미도

강습에 앞서 셰프와 함께 재래시장을 둘러보며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도 있다.

호치민 벤탄시장을 둘러보면서 식재료에 대해 설명을 듣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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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 2주 전 여행자 사이에서 호평을 받는 사이공 쿠킹클래스 사이트(saigoncookingclass.com)를 통해 예약을 마쳤다. 시장 투어와 3코스 요리를 체험하는 프로그램 가격은 45달러(약 5만원)였다. 오전 8시45분 미팅에 맞춰 우버차량을 타고 벤탄시장으로 갔다. 요리사 복장을 한 베트남 여성 두 명과 백인 여행객 몇 명이 보였다. 약 40분간 시장을 둘러보며 베트남 음식에 쓰는 주요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개구리를 산 채로 토막 내는 장면, 정육점에 내걸린 소·돼지 내장을 보는 참가자도 몇몇 있었지만 모두 호찌민 시민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에 쏙 빠졌다.

엘리펀트 이어, 오크라 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채소들.

쿠킹클래스에서 직접 만든 베트남 남부 음식. 깐추아똠.

오전 10시 호아툭(Hoa Tuc) 식당으로 이동해 본격적으로 요리 체험을 시작했다. 3코스에는 한국에서 즐겨 먹는 쌀국수·스프링롤·월남쌈은 없었다. 첫 코스는 깐추아똠(Canh chua tom)이었다. 영어로 스위트 앤 사워(Sweet & Sour) 수프, 그러니까 ‘달고 신 수프’라는 뜻인데 영 낯선 음식이었다. 역시 한국에서 구경도 못 해 본 ‘엘리펀트 이어’라는 채소와 아욱과 식물 ‘오크라’, 그리고 새우·토마토·파인애플을 기름 두르고 볶았다. 물을 붓고 소금·설탕·레몬즙·피시소스·타마린소스를 넣고 팔팔 끓였다. 불을 끄고 사기 그릇에 옮겨 담은 뒤 맛을 봤다. 태국의 똠얌꿍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순한 맛이었다. 대충 만든 것 치고 괜찮았다. MSG 같은 화학조미료는 손톱만큼도 안 넣었는데 맛이 풍부했다. 셰프 완은 “호찌민, 즉 베트남 남부 음식은 북부 음식보다 채소를 많이 쓰고 맛이 달다”며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퓨전음식도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쿠킹클래스에서 직접 만든 베트남 남부 음식. 바나나꽃 샐러드.

베트남식 팬케이크 '반 쎄오'
베트남식 팬케이크 '반 쎄오'. 빈대떡과 비슷한 맛이다.

두 번째 음식은 바나나꽃 샐러드. 바나나꽃이 이렇게 큰지, 또 그걸 음식으로 먹는지 처음 알았다. 바나나꽃과 닭 가슴살·양파·당근·파프리카를 채 썰어 버무린 뒤 피시소스·설탕·라임주스로 간을 했다. 플레이팅을 예쁘게 했다고 셰프에게 칭찬 받았다. 세 번째 코스는 베트남식 팬케이크 ‘반쎄오(Banh Xeo)’. 호찌민 길거리에서 많이 파는 음식이다. 빈대떡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쌀가루에 코코넛 밀크를 부어 만든 반죽이 독특했다. 웍을 다루는 솜씨가 서툴러 팬케이크를 예쁘게 만드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달고 짭조름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음, 음” 소리를 내며 자신이 만든 팬케이크 맛에 감동했다.


오후 1시, 자리로 돌아가 참가자들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고 먹는 것도 좋았지만 베트남 현지인, 다국적 여행자와 어울리는 시간 자체가 즐거웠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온 댄과 사라 부부는 “집 근처에 베트남 마트가 있으니 배운 음식을 다시 만들어 보겠다”고 했고, 호주에서 온 에마와 사맨다는 “집에서 쌀국수를 만들긴 어려워도 수프와 샐러드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호찌민 맛집과 마사지숍·카페 정보를 나눴고, SNS 친구를 맺느라 휴대전화 집은 손가락을 바쁘게 놀렸다.

호찌민(베트남)=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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