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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의 직격 인터뷰

콜롬비아 남편-한국인 아내로 살아가기의 힘겨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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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레오나르도 멘도사와 신진영씨 부부가 부산시 가야동의 대형마트 앞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멘도사는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다. 한국생활 16년 동안 크고 작은 인종 차별을 함께 겪었고 같이 이겨 나왔다”며 웃었다. 10년 이상 교육계에 몸담았던 부부는 요즘 유기견 구조사업에 푹 빠져 산다. [부산=송봉근 기자]

레오나르도 멘도사와 신진영씨 부부가 부산시 가야동의 대형마트 앞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멘도사는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다. 한국생활 16년 동안 크고 작은 인종 차별을 함께 겪었고 같이 이겨 나왔다”며 웃었다. 10년 이상 교육계에 몸담았던 부부는 요즘 유기견 구조사업에 푹 빠져 산다. [부산=송봉근 기자]

인종 차별 논란 촉발한 멘도사 부부 

한국은 외국인 200만 명이 사는 다문화사회다. 하지만 이들 외국인의 한국살이가 녹록지만은 않다. 유교문화의 영향 등으로 인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정서적 혐오감을 갖고 있는 이가 적지 않아서다. 부산에 사는 결혼 11년차 레오나르도 멘도사(44)와 신진영(36)씨 부부가 최근 겪은 황당한 일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부부는 대형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도우려다가 아이의 할아버지로부터 인종 차별적 폭언을 당했다. 이를 조사한 경찰도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다. 화가 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외국인들을 위한 경고성 글을 올린 게 순식간에 퍼지면서 외국인 인권 보호 문제가 이슈로 급부상했다. 지난 10일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멘도사 부부는 콜롬비아인 갑돌이와 한국인 갑순이, 딱 그거였다. 오누이처럼 다정했고 키와 성격도 비슷했다. 질문이 나오면 서로 질세라 경쟁하듯 답변에 나섰다. 남편은 “한국 마누라는 무서워요~” 익살도 떨었다. 사건 전후 상황과 한국살이의 애환을 들어봤다.

사건 발생 순간의 상황은.
“부산시 망미동의 대형 쇼핑몰에서 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갔다. 할아버지·할머니, 젊은 엄마와 6세가량의 남자아이가 걸어오는데 아이가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녀 위험해 보였다. 아래층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오던 차가 아이를 보지 못하고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아내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러 차가 아이의 몇 ㎝ 앞에서 멈췄다. 우리가 아이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선의가 악몽으로 변한 계기는.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대뜸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고 윽박질렀다. 상황 파악을 못하고 우리가 아이를 야단치는 것으로 오해한 듯했다. 그래서 아이가 차에 치일 뻔해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할아버지가 아내를 여러 번 꼬나보더니 다가가려 했다. 큰일 날까 싶어 내가 막았더니 밀쳐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내 몸 위에서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때리려 했다. 내가 ‘경찰, 경찰’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외국인이라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전혀 맞대응하지 않았다.”
인터뷰어 멘도사, 연수경찰서에서 강의중, 출처: 멘도사 페이스북

인터뷰어 멘도사, 연수경찰서에서 강의중, 출처: 멘도사 페이스북

경찰은 누가 불렀나.
“아내가 이 장면을 찍으니깐 젊은 엄마가 휴대폰을 빼앗았다. 아내에게 욕을 했다. 대형 마트 직원이 와서 폰을 받아 건네자 아내가 신고했다. 10분 뒤 도착한 경찰은 ‘별일 아닌데 조사에 2~3시간이 걸린다. 사과받고 가면 어떠냐’고 유도했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계속 인종 차별적 욕설을 내뱉었다. 진정으로 사과할 자세가 아니었다. 내가 정식으로 조사해 달라고 하고 경찰 차에 탔다.”
경찰서에서는 어땠나.
(신씨)“경찰에선 100% 보호를 받을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의 폭언이 더 심해졌다. 경찰관이 남편에게 국적을 물어 ‘콜롬비아’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폴란드 새끼’라고 그러더라. 경찰관이 콜롬비아라고 정정하니깐 ‘더 못한 곳에서 왔네…’라고 폄하했다.”

대형쇼핑몰에서 아이 구하려다
인종차별적 욕설 세례 받아
경찰서에서도 수수방관
페이스북 글 올린 후 논란 촉발 

경찰관이 제지를 안 했나.
“경찰관은 그저 할아버지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말만 두 번 했다. 한국에 인종차별법이 없는 줄은 알고 있지만 경찰서 안에서만큼은 외국인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경찰관은 ‘검둥이 새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경찰관이 인종 차별을 계속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 경찰관이 욕설을 제지하지 않은 건 그 역시 동의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집에 오자마자 글을 써서 올렸다. ‘한국에서는 절대 남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부산에 사는 외국인 4000여 명이 팔로어 하는 내 페이스북 계정에 외국인을 위한 경고성 글을 올리자 파장이 컸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외국인이 많았다.”
이런 일이 처음인가.
“아니다. 크고 작은 사건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상대를 안 했다.”
부산 지역의 특수성도 있다고 보나.
“부산 사람들은 다혈질이다. 평상시 싸우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실제로도 잘 싸운다. 부산 사람들끼리 싸울 때는 상황을 놓고 따진다. 그런데 외국인에게는 인종 차별적인 욕설과 폭언이 뒤따른다. 콜롬비아에선 ‘주차도 못하네’에서 끝날 일이 부산에 오니깐 ‘주차도 못하는 콜롬비아인’이 되더라. 심지어 아내는 나이 드신 분에게서 ‘창녀’라는 말도 들었다. 외국인인 나와 사귄다고 해서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2007년께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 인근에서 젊은 남자가 시비를 걸어왔다. 갑자기 그 남자가 트렁크에서 곤봉을 들고 나오더니 나를 때렸다.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대부분 아내가 그 남자와 사귀다가 외국인인 나와 놀아났다고 오해했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본 사람이 없다. 선입견을 갖고 내가 사태의 근원이고 아내가 놀아났고, 한국 남자가 화가 나 때렸다는 식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항상 외국인이 잘못했다고 여긴다.”
사건 발생 후 부산 연제경찰서장(류삼영)이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나.
“맞다. 사흘 뒤인 일요일(4월 2일) 저녁에 전화로 ‘통상 교육을 하긴 하는데 많이 미흡했고, 앞으로 외국인들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사과했다. 그 다음 날 또 전화해 인권과 인종 차별 관련 내부 교육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5일 강연차 경찰서에 갔다. 서장실에서 만났더니 ‘전국 경찰서장 중 파마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경찰관 중엔 외국인을 초빙해 강의 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청중이 많지 않아도 양해해 달라’고 하더라. 막상 강당에 가 보니 250명의 경찰관이 꽉 들어차 있었다. 당시 사건 처리 경찰관도 참석해 직접 사과했다. 나는 외국인 사건을 수사하는 외사계가 있다는 걸 한국생활 16년 만에 처음 알았다.”
인터뷰어 멘도사, 연수경찰서에서 강의중, 출처: 멘도사 페이스북

인터뷰어 멘도사, 연수경찰서에서 강의중, 출처: 멘도사 페이스북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런 게 진짜 실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영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경찰서장이다. 포스팅이나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런데 경찰서장은 자신의 할 일을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결국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내가 세어 보니 한국엔 252개의 경찰서가 있다. 연제경찰서만의 변화로 그쳐선 안 된다. 나머지 251명의 서장도 외국인 안전대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찰서장의 전화 사과받고
경찰서 강당서 인권강연까지
인종차별 기준은 피해자 상처
국내 법과 시스템 정비 시급 

할아버지는 사과했나.
(신씨)“경찰서에선 ‘현장 동영상을 찍었으니 초상권 침해로 감옥에 처넣겠다’고 큰소리치던 할아버지의 태도가 부산 연제서로 가서는 돌변해 사과를 했다. 마지막에 악수를 하면서 ‘아버님이 콜롬비아 새끼라고 했는데 제가 한국 새끼라고 하면 기분 나쁘시지 않겠어요?’라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멘도사)“난 그 사람 비난 안 한다. 그냥 앵그리맨, 즉 화가 난 일반 시민일 뿐이다. 왜 고소 안 했느냐, 합의금은 받았느냐고 묻는 지인도 있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엔 해피엔딩이지만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는 게 맞다.”
한국 내 인종 차별이 심각한가.
(신씨)“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가슴 아픈 일이 많다. 남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한국 사람들이 모함해 추방당한 외국인도 적지 않다. 외국인 여자의 경우 강간이나 학대를 당해 경찰서에 갔는데도 네가 짧은 치마를 입어 그렇다는 식으로 타박하는 일이 많다고 친한 외국인들에게 들었다. 동남아시아나 이런 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취급받는 게 다르다.”
선진국 국민은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건가.
“그렇지도 않다. 동남아뿐만 아니라 노르웨이계 자제 분도 이런 일에 휘말려 조언을 해 준 적이 있다. 사회적 계급과 지위에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흑인·백인·아시아인·유럽인 상관없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인종 차별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말은 그렇게 하나 실제로는 안 그렇다. 경찰관도 ‘우리가 외국인에게 얼마나 관대한데요?’라고 하더라. 내가 포스팅한 글의 댓글에서도 ‘우리는 외국인에게 잘한다’는 글이 많았다. 자기 인식과 실상이 다르다. 이중적이다.”
문제가 뭔가.
“정말 문제는 외국인이 생각하는 인종 차별의 기준을 한국인이 잘 모르고 차별을 막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인종 차별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화가 나는 일이냐, 아니냐를 가해자 측과 동일한 한국인이 판단하게 된다. 성희롱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느끼면 가해자가 뭐라고 변명해도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성희롱법은 있는데 인종차별금지법은 왜 안 만드나. 준거법이 필요하다.”
똑같은 상황이 콜롬비아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콜롬비아에는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 인종, 성별, 성적 취향 등의 면에서. 그런 법과 시스템, 지혜가 있기 때문에 일이 제대로 처리됐을 것이다.”
해결책은 뭔가.
(신씨)“한국에서도 인종차별금지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시도가 세 번 있었다. 한국도 유엔 인종차별조약에 서명했으나 아직 국내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물론 법을 만든다고 해 인종 차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도구로써 정부기관이나 공무원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정부가 외국인 인권 보호정책 마련에 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한다.”
10년 이상 교육계에 몸담았던 멘도사 부부는 요즘 유기견 구조사업에 푹 빠져 산다. [출처: 멘도사 페이스북]

10년 이상 교육계에 몸담았던 멘도사 부부는 요즘 유기견 구조사업에 푹 빠져 산다. [출처: 멘도사 페이스북]

유기견 입양 사진, 경고성 글 게시 등에서 보듯 SNS를 통해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소통의 힘을 믿는다. 유기견 입양도 소통을 하면 더 잘 이뤄진다. 적지 않은 상황에서 소통이 되면 해결될 상황이 너무 많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소통의 문제가 중요하다. 손자세대가 변화된 문화를 만끽하게 하려면 우리가 시작해야 한다.” 

멘도사 부부는 …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레오나르도 멘도사는 스포츠 담당 기자로, 88 서울 올림픽 때 취재차 방한한 아버지를 통해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CNN방송의 리포터 등으로 일하던 멘도사는 2001년 한국에 왔다. 신진영씨는 2003년 어린이 영어캠프 교사로 일하다 교사 총괄감독이던 멘도사와 만나 2006년 결혼했다. 10여 년 전 유기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보호활동에 투신했다. 지금은 유기견동물보호소를 운영하며 해외 입양이나 동물운송 대행 등을 한다. 안락사 직전에 구조했던 유기견 웬디를 기리기 위해 2년 전 ‘웬디의 마지막 식사’라는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열었다. 회원이 1770명인데 일주일에 3마리 이상 입양을 보낸다. 필리핀·러시아 등의 언어별 조직 및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페이스북 쉼터 ‘부산유기견보호소(BAPS)’도 운영 중인데 팔로어가 5000여 명이다. 신씨는 “우리는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할 때가 너무 많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멘도사에게서 배웠다. 지금은 강아지들이 우리 자식”이라고 말한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