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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글에서 들리는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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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다 마치고 난 희열에 아주 살짝만 못 미치는 이 쾌감.” 피아니스트 손열음(31)이 글쓰기에 대해 쓴 문장이다. 쾌감이 오기까지 손열음은 고통스럽게 글을 쓴다. 2500자짜리 원고를 붙들고 800자ㆍ1200자 능선을 간신히 넘으며, 때로는 어느정도 써놓은 글에 ‘뇌사 판정’도 내리면서. 본업인 연주에 맞먹는 기쁨은 이렇게 탈고한 후에 온다.


그 끝에 손열음은 ‘글 잘 쓰는 연주자’가 됐다. 어떤 글 때문일까. 2015년 책『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에 엮인 중앙SUNDAY 연재 칼럼에서 손열음식 글쓰기의 매력을 골라내봤다. 그리고 글마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연결해 소개한다.

손열음, 6년 연재한 글에서 주제 뽑아 올해 네번 공연 #피아니스트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 다섯

손열음은 책을 주제로 올해 네 번 공연을 연다. 첫 공연이 이달 22일 오후 3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글에서 음악이 태어나고, 음악으로 문자를 전달하는 신선한 공연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음악을 궁금하게 만드는 글

“부푼 기대 속에 펼쳐본 베토벤의 협주곡 4번 악보의 생김새가 이 하논과 꼭 같을 줄이야. 1악장에서 긴 오케스트라의 도입부가 끝나고 피아노가 연주하는 내용이라곤 순 스케일, 반음계 스케일, 아르페지오, 트릴 뿐이다. 이런 것들을 통칭하는 ‘패시지워크(passagework)’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우습게도 ‘작품의 주제와 관계없이 화려하고 장식적인 부차적 부분’이라고 나온다. 적어도 이 협주곡 4번에서만큼은 완전히 틀린 설명인 셈이다. 이 곡 1악장은, 패시지워크가 전부이니까.”(‘재료 혁명-루드비히 반 베토벤’ 중에서)

손열음은 4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원주시향과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한다. 손열음이 ‘자갈로 만들었지만 순금보다 멋지다’고 표현한 곡이다. 영상은 미츠코 우치다가 연주하는 베토벤 협주곡 4번.

#섬세한 감정 묘사

“딱 그 느낌이었다. 몸이 머리와 마음하곤 상관없이 반응하는 기분. 심장은 열려버린 듯, 머리는 비어버린 듯, 슬픈 건지는 모르겠는데 언제부턴가 눈물도 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내 허락은 전혀 필요 없는 듯 어느새 나에게로 성큼 다가와 있는 음악. 그래서 다른 건 모르겠고, 그저 내 이야기 같은 음악.” (‘그저 내 이야기 같은 곡,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중에서)

4월22일 공연에서 손열음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도 연주한다. 최루성 선율 때문에 연주를 미루고 미루다가 나중에야 매력을 느낀 곡이다. 영상은 에프게니 키신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연주자만 할 수 있는 생각

“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그의 독주회. 프로그램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날 그의 연주는 자칭 타칭 이 곡의 광이던 내가 드디어 찾은, 실로 최고의 그것이었다. 엄격과 자유가 공존하는 구성을 한 번에 꿰뚫는 광범위한 시각과, 자칫 현학적인 유희로 치우칠 수 있는 음악에 불어넣은 생명력은 그 어떤 대가들의 레코딩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의 소리가 내 것이었다면-왕샤오한’ 중에서)

손열음이 질투를 느낀 첫 동료라고 표현한 중국 피아니스트 왕샤오한의 공연 모습. 왕샤오한은 9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손열음과 함께 공연한다.

#스타 피아니스트의 솔직함과 유머

“따지고 보면 9년 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2006년 처음 이 도시에 올 땐 정말이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었다. 물론 누가 나를 억지로 끌고 온 것도 아니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 꼭 배우고 싶어 스스로 결심한 것이긴 한데, 당시의 나는 딱 4년 먹은 서울 물에 정신 못 차리던 스무살. 한참 신나게 놀다 베를린도 뮌헨도 아닌 이런 시골 구석에 들어와 살아야 한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긴 겨울, 황홀한 봄 … 브람스 교향곡 닮은 이곳’ 중에서)

손열음은 현재 독일 하노버에 살면서 브람스ㆍ슈만ㆍ슈베르트를 생각한다. 12월 9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 손열음은 하노버에서 만난 음악 친구 7명과 다양한 곡을 연주한다. 영상에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이 연주하는 슈만 로망스 Op.94도 그 중 하나다.

#무대 위, 현장을 공개하는 글

“가족도, 친구도, 전화기도, 악보도, 아무것도 내 곁에 없는데, 나는 무조건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된다는 그 사실. 그 사실이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게 ‘산다는 것’과 너무도 똑같아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던져진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피아니스트는 혼자다’ 중에서)

 손열음이 "생애 가장 떨렸던 무대"라고 한 2009년 반클라이번 콩쿠르 실황. 바흐의 칸타타 중 '양들은 평화롭게'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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