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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어쭙잖은 위로일랑 넣어둡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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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저 벚꽃 나무 아래 ‘사회학개론’을 끼고 지나가는 대학생을 붙잡고 연애와 일자리 중 하나를 택하라면 뭐라고 답할까?

‘위로송’으로 유명한 옥상달빛이 지난주 새 앨범을 냈다. 앨범 제목은 '월월월월금', 달랑 두 곡짜리 앨범이지만 발매 전에 어느 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할지를 두고 경선까지 벌였다. 멤버 두 사람은 각각 힘들당·쏠로당 띠를 두르고 한 사람은 '인턴'을 다른 한 사람은 '연애상담'을 타이틀곡으로 해야 한다며 유세를 펼쳤다. 두 달 동안 전국투어 공연을 돌며 관객들의 투표를 받았다. 지난 5일 네이버 V앱 생중계로 공연을 지켜본 시청자들의 투표를 마지막으로 타이틀곡이 정해졌다. 팬들의 선택은 사랑보다 밥벌이였다. '인턴'이 타이틀곡 자리를 꿰찼다.

 불안해 하지 마/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사실 불안해
 답답해 하지 마/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사실 장 트러블메이커

뮤직비디오마저 2030 맞춤형이다. 가로로 길쭉한 16대 9 화면에서 가장자리를 뚝 잘라, 정사각형 화면에 담았다. 젊은 세대가 자주 드나드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다.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났다는 고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쌓여 간다. 옥상달빛 언니들은 나보다 세 살이 많다. 나도 벌써 '꼰대화'가 진행 중인데,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들은 어찌 이토록 능수능란하게 청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인턴'을 타이틀곡으로 밀었던 멤버 김윤주는 유권자(?)인 네이버 뮤직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선 큰 회사인 네이버를 다니는 여러분들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이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을까요? 인턴분들 힘내서 파이팅하면 대리 되고, 부장 됩니다. 부장님, 대리님이 다시 인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듣고 위로를 받아야 듣는 사람에게도 전달이 된다고 했다. 국민 퇴근송으로 자리매김한 '수고했어, 오늘도'를 아무도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아 그들 스스로를 위해 만든 곡이라 했다. 


가끔 점심 약속이 없는 날에는 대학교 학생식당에 간다. 5900원짜리 카르보나라 면발을 숟가락 위에 돌돌 말면서, "대학 식당에서 4000원이 넘는 비싼 메뉴를 파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개하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요즘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취업까지 평균 2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티슈처럼 손쉽게 뽑아 쓰고, 다 쓰면 쉽게 버리는 '티슈 인턴'이 될지언정 '○명 정규직 전환' '채용 시 우대'란 말에 흔들리지 않을 취업 준비생이 몇이나 될까. 억지로 청춘들의 아픔에 공감을 해보려다 서둘러 접어 넣는다. 5900원 하는 파스타가 비싼 건지 싼 건지 분간도 못하면서 무슨 위로란 말인가. 기자처럼 위로 센스가 부족한 언니·오빠들에게 충고한다. 그냥 옆자리 인턴에게, 학교 후배들에게 맛있는 밥이나 사는 게 낫다. 우리의 '시발비용'이 방황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이현 사회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