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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류.. 온난화·질병·식량 등 인류 난제 풀 '마스터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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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는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이루는 바탕이 되고 인간에게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전남 완도군]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는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이루는 바탕이 되고 인간에게도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사진 전남 완도군]

 지난 2015년 12월 하순. 강원도 고성군과 양양군 해안에서는 이른바 ‘도루묵 알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엄청난 양의 도루묵 알 덩어리가 해변으로 밀려들어 썩으면서 심한 악취를 풍겼다. 또 알이 덕지덕지 달아 붙은 그물들도 못 쓰게 됐다.

동해안의 주요 겨울철 먹거리 생선인 도루묵.[중앙포토]

동해안의 주요 겨울철 먹거리 생선인 도루묵.[중앙포토]

도루묵은 12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큰 무리를 지어 다니다 해조류가 많은 연안에 한꺼번에 산란을 하는 습성이 있다. 사건 당시엔 기상이 좋지 않아 어민들이 제대로 도루묵을 잡지 못해 개체 수가 평소보다 많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해조류가 많이 사라지면서 도루묵의 산란장이 부족해진 탓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도루묵 알 습격 사건'은 해조류가 해양생태계에서 산란장으로서, 먹이로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해조류는 해양생태계의 기초 생산자 #온실가스 흡수, 바이오에너지도 제공 #치료제 등 유용 생물물질 많이 함유해 #고단백질 건강보조식품으로도 각광받아 #전세계적 해조류 관련 시장만 13조원 #14일부터 전남 완도서 해조류 박람회 열려 #

유종수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해양바이오연구본부장은 "해조류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온실가스 감축, 식량문제, 질병 등 인류가 안고 있는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마스터키(만능열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가 해조류에 관심을 쏟고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오는 14일부터 전남 완도군에서 '지속가능한 해조 산업과 탄소 저감'을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다. ‘2017 완도 국제 해조류 박람회(14일~5월 7일)’ 행사의 하나다. 2014년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박람회는 미래 식량·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으로서 해조류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글로벌 해조류 산업에서 주도권을 선점하자는 취지로 열린다. 

전남 완도군에서 2014년 개최한 제1회 해조류 박람회 모습.[사진 전남 완도군]

전남 완도군에서 2014년 개최한 제1회 해조류 박람회 모습.[사진 전남 완도군]

국내 연안에서 자생하는 해조류는 916종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진 전남 완도군]

국내 연안에서 자생하는 해조류는 916종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진 전남 완도군]

해조류는 산소를 생산함으로써 동물들이 호흡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류가 육상에서 호흡을 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과거 27억 년 전 남조류(혹은 남세균, cyanobacteria)가 내뿜은 산소가 대기 중에 축적된 덕분이다.

지난 2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표지 논문으로 미국 코넬대 생태학자 졸리 램의 논문을 소개했다. 해조류 주변에서는 인체에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장내구균(腸內球菌, Enterococcus)의 숫자가 3분의 1에 불과했다는 내용이다. 해조류가 세균을 죽이는 물질을 내보낸 덕분이다.

미국 하와이 키스톤 지역의 미세조류 배양장. 오염수와 이산화탄소만을 원료로 키운 뒤 바이오 디젤을 생산하거나 동물사료로 사용한다. [중앙포토]

미국 하와이 키스톤 지역의 미세조류 배양장. 오염수와 이산화탄소만을 원료로 키운 뒤 바이오 디젤을 생산하거나 동물사료로 사용한다. [중앙포토]

또 해조류는 해양 생태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유종수 본부장은 “양식 김의 경우만 해도 국내 소비와 수출을 합치면 시장 규모가 연간 1조 원에 이른다”며 “해조류에서는 의약품을 비롯해 인간 생활에 유용한 물질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0종 이상의 대형 해조류가 식량·사료·화학물질을 얻기 위해 재배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해조류 시장 규모가 현재 연간 13조원(115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2020년에는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이오 반응기에서 배양 중인 미세조류.[중앙포토]

바이오 반응기에서 배양 중인 미세조류.[중앙포토]

 해조류, 특히 미세조류는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관심을 끌고 있다. 사막과 같은 곳에서도 바닷물과 태양광만 있으면 미세조류를 배양할 수 있다. 미세조류는 콩에 비해 30배, 옥수수에 비해서는 50배나 더 생산성이 높다. 또 단백질 함량도 70%나 돼 옥수수(10%)나 콩(40%)보다 훨씬 높다. 새로운 ‘슈퍼푸드’로 떠오르고 있는 스피룰리나(Spirulina)도 남조류의 일종으로 국내외에서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같은 면적의 육지 숲보다 온실가스 흡수 두 배 이상
해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대신 바이오에너지를 생산하는 효자이기도 하다. 2012년 5월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연안 해조류의 경우 ㎢당 연간 8만3000t의 탄소를 흡수, 육지 숲의 3만t을 크게 앞질렀다. 바다로 녹아드는 온실가스의 10%를 해조류가 해결해 준다.

해조류는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대신 바이오연료를 만들 수 있는 원료를 제공한다. 지구온난화의 해결사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전남 고흥군이나 고려대 등에서 몇 해 전부터 해조류로부터 에탄올을 생산하는 연구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홍조류가 생산한 유기물을 발효를 통해 에탄올을 만들면, 이를 자동차 연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해양 미세조류에서 추출한 바이오디젤 혼합유(2.5%)로 서울~부산간 주행시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인천 영흥도 해양 배양장에서 기른 미세조류에서 추출한 바이오디젤이다.

또 해조류에서는 다양한 생물 활성물질도 얻을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3월 가톨릭대 이주영 교수팀이 해조류인 감태에서 추출한 ‘다이에콜’이란 물질을 이용하면 국소용 스테로이드제 없이도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박대훈 동신대 교수 등은 2015년 해조류에서 천식 억제물질을 발굴했고,  2013년 김형락 부경대 교수는 곰피·외톨개모자반 등에서 항염증·항산화 효과와 간기능 개선 효과가 뛰어난 물질을 찾아내기도 했다.

2013년 호주 스털링대학 연구팀은 해조류에서 여드름균의 증식을 차단하는 지방산을 분리해냈다. 미국 웨인주립대 연구팀은 2012년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밀도지질단백질(HDL) 콜레스테롤을 체내에서 증가시키는 물질을 해조류에서 발견했다. 이밖에도 해조류에서는 화장품 원료나 항생제 대체 물질도 확인됐다. 

적조 방제 작업.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적조 방제 작업.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물론 해조류가 항상 좋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플랑크톤은 적조를 일으켜 양식물고기를 떼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또 괭생이 모자반이나 가시파래 등이 해변으로 밀려오면 이를 치우는 것도 큰 일이다.

전세계 해조류 서식지 연간 7% 씩 사라져
해조류가 사라진 바다는 생각도 하기 싫지만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7%씩 해조류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갯녹음 현장. 해조류가 사라지고 성게만 보인다.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 현장. 해조류가 사라지고 성게만 보인다.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국내 연안에서도 ‘바다의 사막화’로 불리는 갯녹음 현상 때문에 암반에 붙어 자라던 해조류가 사라지고 있다. 갯녹음은 바다 속 해조류가 사라져 바위가 하얗게 변하는 등 불모의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갯녹음이 일어난 바다 속 모습.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이 일어난 바다 속 모습.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백상호 박사는 “공단에서는 초분광 항공영상 촬영, 위성영상 등을 이용해 갯녹음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특수렌즈를 장착하고 촬영하면 여러 가지 색깔을 구분해 해조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산자원관리공단이 2014~2015년 동해와 남해연안의 갯녹음 실태를 결과, 동해는 전체 암반면적의 1만7054㏊ 중 62%인 1만518㏊에서 갯녹음이 심하게 발생했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동해안 갯녹음 실태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동해안 갯녹음 실태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남해에서도 전체 암반면적의 33%인 2737㏊에서  갯녹음이 진행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남해안 갯녹음 실태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남해안 갯녹음 실태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동해·남해연안 갯녹음 진행 상황

구분

면적 (㏊)

비고

암반면적

정상

갯녹음 진행

갯녹음 심각

동해안

1만7054

6536

4438

6078

2014년 조사

(100%)

(38%)

(26%)

(36%)

남해안

8234

5497

1775

962

2015년 조사

(100%)

(67%)

(22%)

(11%)

*자료: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이 발생하는 원인은 동해나 남해 등 해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난다. 경상대 해양생명과학부의 김남길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온도 상승과 함께 성게처럼 해조류를 먹는 초식동물이 크게 증가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일본으로 수출되던 성게가 수출길이 막히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어민들도 과거보다 덜 잡아들이면서 성게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갯녹음 현장을 보여주는 수중 사진.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 현장을 보여주는 수중 사진.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김정하 교수는 “제주도에서도 갯녹음이 나타나는데, 성계보다는 수질오염과 수온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30년까지 바다숲 5만4000ha 조성 
이처럼 갯녹음이 확산되면서 어족자원 고갈이 우려되자 해양수산부와 수산자원관리공단은 바다에 해조류를 자라도록 도와주기 위해 2009년부터 2030년까지 5만4000㏊(서울시 면적의 약 90%)의 바다숲 조성을 진행하고 있다. 바다숲 조성사업은 미역·모자반 등 해조류의 종묘를 바다에 뿌리거나, 종묘룰 심은 어초를 바다에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2016년까지 전국 연안 111곳에 1만2298㏊의 바다숲이 조성됐고, 올해도 353억원을 투입해 18곳에 3043㏊에 바다숲을 만들고 있다. 김남길 교수는 “바다숲 조성 사업이 조금씩 성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해조류 가운데 종묘 생산이 이뤄지는 게 6~7종에 그치고 있어 생태계 다양성 측면에서는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바다숲 조성사업으로 자란 해조류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바다숲 조성사업으로 자란 해조류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해양 전문가들은 “해조류 분야가 아직은 김·미역 등의 양식에 머물고 있는 상태이지만 미래에는 우리의 새로운 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전문인력 양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도 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관련 연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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