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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배우러 떠났다 진짜 여행을 만났다

중앙일보

입력

한국에서는 베트남 음식을 그닥 즐기지 않았다. 한국 베트남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밋밋하기 때문이다. 서너 번 출장과 여행으로 베트남을 갔을 때 경험한 맛은 그렇지 않았다. 유명 맛집과 길거리 음식, 커피와 디저트까지 온종일 먹고 또 먹었다. 하루 5식은 기본. 어떤 음식을 먹든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화려하면서도 건강한 맛, 달고 짜고 시고 맵고 쓴 맛이 묘하게 버무러진 모든 음식은 미각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줬다. 그래서 벼르고 별렀다. 베트남을 갈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짬을 내 요리를 배워보겠다고. 그리고 3월 3일 베트남 호치민의 한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잡아들었다. 

현지인, 외국인 여행자와 어울리며 뜻깊은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쿠킹클래스를 체험해보자. 세계적 미식국가 베트남에서는 다채로운 요리를 배워볼 수 있다. 

현지인, 외국인 여행자와 어울리며 뜻깊은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쿠킹클래스를 체험해보자. 세계적 미식국가 베트남에서는 다채로운 요리를 배워볼 수 있다.

베트남 방문 2주 전 여행자 사이에서 호평을 받는 사이공 쿠킹클래스 사이트(saigoncookingclass.com)를 통해 예약을 마쳤다. 시장 투어, 3코스 요리 체험 프로그램 가격은 45달러(약 5만원)였다. 오전 8시 45분 미팅에 맞춰 호치민 3지구에 있는 호텔에서 우버 차량을 타고 벤탄시장으로 갔다. 요리사 복장을 한 베트남 여성 두 명과 백인 여행객 몇 명이 보였다. 셰프와 함께 약 40분간 시장을 둘러보며 베트남 음식에 쓰는 주요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개구리를 산 채로 토막 내는 장면, 정육점에 내걸린 소·돼지 내장을 보고 기겁하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모두 호치민 시민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에 쏙 빠졌다.  

쿠킹클래스 담당 셰프가 베트남 음식에 주로 쓰이는 식재료를 설명하는 모습.

호치민 벤탄시장에서 식재료 구경중인 쿠킹클래스 참가자들.

택시를 나눠타고 호아툭(Hoa Tuc)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전 10시 레몬그라스 차를 한 잔 마시고 본격적으로 요리 체험을 시작했다. 3코스에는 한국에서 즐겨 먹는 쌀국수, 스프링롤, 월남쌈은 없었다. 첫 코스는 깐 추아 똠(Canh chua tom)이었다. 영어로 스윗 앤 사워(Sweet & Sour) 수프, 그러니까 ‘달고 신 수프’라는 뜻인데 한국의 베트남 식당에서는 한 번도 못 본 음식이었다. 역시 한국에서 구경도 못해본 ‘엘리펀트 이어’라는 채소와 식물 ‘오크라’, 그리고 새우·토마토·파인애플을 기름 두르고 볶았다. 물을 붓고 소금·설탕·레몬·피시소스·타마린소스를 넣고 팔팔 끓였다. 불을 끄고 사기그릇에 옮겨 담은 뒤 맛을 봤다. 태국의 똠얌꿍과 비슷하면서도 순한 맛이었다. 대충 만든 것 치고 아주 맛있었다. MSG 같은 화학조미료는 손톱만큼도 안 넣었는데 맛이 풍부했다. 셰프 완(Oanh)은 “호치민, 즉 베트남 남부 음식은 북부 음식보다 채소를 많이 쓰고 맛이 달다”며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퓨전음식이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깐 추아 똠의 기본 재료. 엘리펀트 이어, 오크라 등 한국에서 보기 힘든 채소가 많다.

베트남 남부에서 많이 먹는 깐 추아 똠.
두 번째 음식은 바나나꽃 샐러드. 바나나꽃이 이렇게 큰지, 또 그걸 음식으로 먹는지 처음 알았다. 닭 가슴살·양파·당근·파프리카를 채 썰어 버무린 뒤, 피시소스와 설탕·라임주스로 간을 했다. 플레이팅을 예쁘게 했다고 셰프에게 칭찬받았다. 세 번째 코스는 베트남식 팬케이크 ‘반 쎄오(Banh Xeo)’. 호치민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가 많은 서민 음식이다. 셰프가 먼저 완성한 음식은 우리네 빈대떡과 비슷했는데 쌀가루에 코코넛밀크를 부어 만든 반죽이 독특했다. 웍을 다루는 솜씨가 서툴러 팬케이크를 예쁘게 만드는 게 어려웠다. 달고 짭쪼름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음, 음’ 소리를 내며 자신이 만든 케이크 맛에 감동했다.

고구마 껍질처럼 보이는 게 바나나꽃이다. 안에 있는 부드러운 부분을 채 썰어 먹는다.

완성된 바나나꽃 샐러드
베트남식 팬케이크
피시소시에 찍어 먹는 베트남 팬케이크

오후 1시, 자리로 돌아가 참가자들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맛난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도 좋았지만 베트남 현지인, 다국적 여행자와 어울리는 시간도 좋았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온 댄과 사라 부부는 “집 근처에 베트남 마트가 있으니 오늘 배운 음식을 다시 만들어 보겠다” 했고, 호주에서 온 엠마와 사맨다는 “집에서 쌀국수를 만들긴 어려워도 수프와 샐러드 정도는 할 수 있겠다”며 뿌듯해했다. 참가자들은 호치민 맛집과 마사지숍, 카페 정보를 나눴고, 그 자리에서 SNS 친구를 맺기도 했다.

진지하게 요리사의 설명을 듣는 쿠킹 클래스 참가자들.

진지하게 요리사의 설명을 듣는 쿠킹 클래스 참가자들.

한국에서는 이날 배운 음식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한국에 널린 베트남 체인 식당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화려하고 맛깔난 정통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보고 맛봤다는 사실이 좋았다. 여차하면 코끼리 귀 줄기와 오크라를 구하기 위해 식재료상을 뒤지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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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베트남)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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