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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기른 식재료로 요리하는 레스토랑, 서울에서도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트렌드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운송 수단을 거치지 않아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레스토랑이 번지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국내에도 이미 상륙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팜-투-테이블 레스토랑 확산 #흙 밟을 수 없는 싱가포르에서도 인기 #환경 위해 와인도 병 아닌 배럴로 취급

서울 도심 한복판, 여의도 전경련 회관 51층에는 눈이 시원해지는 푸른 정원이 있다. 보기 좋기만 한 게 아니다. 약 33㎡(10평) 정도의 정원 중심에는 각종 허브와 상추, 오이 등이 자라고 있다. (동절기 제외) ‘곳간’이나 ‘세상의 모든 아침’ 등 51층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재료로 사용하는 채소들이다.  
홍대 앞에 자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알라또레’는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을 실천하는 곳이다.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거리가 ‘제로’라는 의미의 팜-투-테이블 레스토랑은 직접 농사 지은 식재료를 음식에 활용한다. 7층짜리 레스토랑 건물 바로 옆, 레스토랑 소유의 건물 옥상에 100㎡ 규모의 도시 텃밭이 있다. 파슬리· 바질·로즈메리 등 각종 허브부터 토마토·가지·당근 등 웬만한 채소는 직접 수확해 사용한다.

서울에서도 직접 기른 농산물을 요리에 사용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사진 알라또레 홈페이지]

서울에서도 직접 기른 농산물을 요리에 사용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사진 알라또레 홈페이지]

호주나 미국 등 너른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는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레스토랑이 흔하다. 하지만 서울 같은 도심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즐비한 고층 건물 속에서 ‘농장’은 커녕, 작은 ‘텃밭’조차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손에 꼽을 정도다.
텃밭이나마 증가 추세이긴 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도시 텃밭 면적은 2011년 29만㎡에서 2016년 162만㎡까지 약 5.6배 증가했다. 이중 옥상 텃밭은 신고된 것만 1000 여개로, 면적은 11만㎡에 이른다. 서울시 지원으로 이루어진 텃밭들로, 레스토랑이나 개인이 일궈 직접 식탁에 오르는 작물의 규모는 통계조차 없다.

서울 도시 텃밭 공간 현황. [그래픽 서울시 홈페이지]

서울 도시 텃밭 공간 현황. [그래픽 서울시 홈페이지]

텃밭 말고, 진짜 농장을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가능할까? 그 가능성을 싱가포르에서 찾아봤다.
서울(605㎢)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싱가포르(697㎢)는 서울만큼 복잡한 도시국가다. 토지가 부족해 농사를 짓지 않고, 거의 모든 농축산물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런 싱가포르에서도 농장을 가꿔 신선한 채소로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이 있다. 텃밭이 아니라 어엿한 농장을 운영하는 ‘오픈 팜 커뮤니티’다.

싱가포르 뎀시힐에 있는 오픈 팜 커뮤니티. [사진 OFC]

싱가포르 뎀시힐에 있는 오픈 팜 커뮤니티. [사진 OFC]

싱가포르의 한적한 동네 뎀시힐(Dempsey hill) 지역에 있는 ‘오픈 팜 커뮤니티(Open Farm Community)’는 특별하다. 싱가포르의 유일한 팜-투-테이블 식당이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로 레스토랑과 카페의 요리를 낸다. [사진 OFC]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로 레스토랑과 카페의 요리를 낸다. [사진 OFC]

뎀시힐은 조용한 언덕 지역으로 어딜 가나 초록 식물이 무성하다. 본래 영국군 주둔지였던 곳인데 병영 시설을 조금씩 고쳐 가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골동품점이나 인기 레스토랑, 치즈 전문점, 외국 식료품점 등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식과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지가 되었다. 길을 따라 띄엄띄엄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 등이 있어 산책과 함께 식사를 즐기기 좋은 동네다.

뎀시힐엔 오픈 팜 커뮤니티 외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또 다른 명소 PS 카페가 있다. 유지연 기자

뎀시힐엔 오픈 팜 커뮤니티 외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또 다른 명소 PS 카페가 있다. 유지연 기자

오픈 팜 커뮤니티는 뎀시힐 외곽 울창한 녹음에 둘러싸여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맨 먼저 ‘식용 가든(edible garden city)'이라는 이름의 농장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고수와 로즈메리, 백리향, 횃불 생강 같은 이국적인 식물들이 지천에 자라고 있다. 한때 골프 연습장이었던 3200㎡(1000평)의 녹지대가 거의 농장이다. 온통 초록색인 농장이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을 폭 감싸 안는 것 같은 형국이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노천카페가 먼저 나타난다. 카페를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레스토랑이 보인다.

싱가포르 뎀시힐에 있는 오픈 팜 커뮤니티. [사진 OFC]

싱가포르 뎀시힐에 있는 오픈 팜 커뮤니티. [사진 OFC]

농장에 위치한 레스토랑답게, 전반적으로 소박한 분위기다. 손 글씨체의 나무 간판이 달려있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시원한 오픈 키친이 눈에 띈다. 60석 규모의 레스토랑으로 자연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야외 데크에도 좌석이 있다. 주방 쪽을 제외한 레스토랑의 모든 면에 창이 넉넉하게 달려있어 주변 농장 풍경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오전이나 정오 등 햇살 좋은 시간에 방문하면 온통 초록빛에 둘러싸여 환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다. 이곳이 주말 브런치 명소로 소문이 난 데는 이렇게 이유가 있다.

조명이 근사해 밤에도 제법 분위기가 난다,[사진 OFC]

조명이 근사해 밤에도 제법 분위기가 난다,[사진 OFC]

농장 속 식당이라고 하니 채식 레스토랑인가 싶지만, 메뉴를 보니 예상외로 다양한 음식을 낸다. 직접 기른 채소를 주재료로 한 신선한 샐러드와 전채요리를 비롯해 생면으로 만든 파스타, 바라문디·그루퍼 등 생선 요리, 닭과 양고기를 주재료로 한 메인 요리, 레몬 타르트와 호박 케잌등 디저트까지 다양하다. 메뉴가 다양하다보니, 모든 재료가 이 농장에서 수급되는 것은 아니다. 샐러드에 활용하는 채소와 허브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재료는 싱가포르에서 400km 떨어진 지역 농장에서 공급된다. 육류는 호주에서 수입한다.

생강 칠리와 고수 퓨레 등으로 마리네이드한 타르타르, 유기농 계란을 곁들였다. [사진 OFC]

생강 칠리와 고수 퓨레 등으로 마리네이드한 타르타르, 유기농 계란을 곁들였다. [사진 OFC]

이곳 요리는 싱가포르의 스타 셰프 라이언 클리프트(Ryan Clift) 솜씨다. 영국 출신으로 호주 멜버른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부 드 몽드(Vue De Monde)의 수석 요리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2008년 싱가포르로 이주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티플링 클럽(Tippling club)을 열었다. 음식과 칵테일을 페어링 해 내는 레스토랑으로 싱가포르에서 핫한 레스토랑으로 줄곧 손꼽혀 왔다. 2013년에는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23위에 오르기도 했다. 클리프트는 2015년 7월 싱가포르의 스파 에스피릿 그룹과 협업해 이 곳 ‘오픈 팜 커뮤니티’를 열었고, 현재 티플링 클럽과 함께 운영 중이다.
한마디로 클리프트는 잘 나가는 셰프다. 그런 그가 농장 레스토랑을 열게 된 이유가 뭘까. 오픈 팜 커뮤니티에서 만난 클리프트 셰프는 “지속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봤다”며 “언제까지 모든 것을 소비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라고 환경운동가가 할 법한 말을 건네 왔다. 그는 운송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지역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 푸드’ 운동에 관심이 많다. 환경을 위해 와인도 병으로 팔지 않고 배럴 단위로 수입해 한 잔씩 판단다.

라이언 클리프트 셰프.[사진 OFC]

라이언 클리프트 셰프.[사진 OFC]

한 번도 농장을 체험하지 못한 싱가포르 어린이을 위한 배려도 곳곳에 보인다. 가족 단위로 방문해 식사도 하고 농장을 즐길 수 있도록 잔디밭에 볼링 레인도 만들어 놨다. 탁구대와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손님이 원하면 농장 곳곳을 돌며 재배하는 식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싱가포르 뎀시힐에 있는 오픈 팜 커뮤니티. [사진 OFC]

싱가포르 뎀시힐에 있는 오픈 팜 커뮤니티. [사진 OFC]

이곳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채소가 메인이 되는 전채 요리를 제외하고도 거의 모든 요리에 채소가 풍성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생선 요리 위에 오이를 새콤하게 무쳐 올리고, 고기 타르타르에 고수로 만든 퓨레를 더하는 식이다. 물론 채소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샐러드 접시가 가장 인상적이다. 브로콜리와 깍지 콩, 잣 등이 페타 치즈와 어우러진 샐러드 한 접시는 단출해보여도 맛이 그만이다. 코코넛을 넣은 락사 소스를 곁들인 바라문디 구이 등 싱가포르 고유의 음식도 접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신선한 청경채가 가니시로 곁들여진다.

오이 샐러드가 올라간 스내퍼 요리. [사진 OFC]

오이 샐러드가 올라간 스내퍼 요리. [사진 OFC]

전체적으로 자연 그대로, 재료의 맛을 살린 소박한 음식이다. 지척에 흙냄새가 나는 농장을 앞두고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접시마다 맛이 각별했다.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음식을 먹는 내내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설명한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떠올랐다. 생명이 깃든 음식,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고 먹는 음식이 이렇게 뱃속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오픈 팜 커뮤니티는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소요된다[구글 지도]

오픈 팜 커뮤니티는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소요된다[구글 지도]

싱가포르=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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