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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튼 … 두 거장을 사로잡았던 뮤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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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내 첫 사진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패티 보이드. 지난 3일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났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내 첫 사진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패티 보이드. 지난 3일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났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60년대 영국은 롤링 스톤스와 비틀스로 대표되는 음악과 패션을 아우르는 문화 트렌드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은 런던을 일러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역동적인 런던)’이라 불렀다. 당시 패션모델이었던 패티 보이드는, ‘삐쩍’ 마른 모델의 원조 트위기(Twiggy), ‘세계 최초의 슈퍼모델’ 진 쉬림프톤(Jean Shrimpton)과 함께 60년대 영국의 패션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서울서 사진전 여는 패티 보이드 #해리슨은 그녀를 위해 ‘섬씽’을 #클랩튼은 ‘원더풀 투나잇’ 작곡 #89년 두 번째 이혼 뒤 사진 활동 #“행복·슬픔에서 배우는 게 인생”

하지만 지금 일흔이 넘은 패티 보이드(Pattie Boyd·73)가 이토록 유명한 건, 패션계에서의 업적 때문이 아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혹은 위험한) 뮤즈’라는 꼬리표가 말해주듯, 그가 깊이 인연을 맺었던 뮤지션들 때문이다. 패티 보이드는 세계적인 뮤지션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1943~2001)의 부인이자,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Eric Clapton·72)의 아내이기도 했다. 현재는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국내 첫 사진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패티 보이드를 지난 3일과 4일 만났다.

세계적 뮤지션들과의 만남

1962년 모델로 데뷔한 패티가 조지 해리슨과 처음 만난 건 1964년이다. 당시 비틀스는 3집 앨범 ‘하드 데이스 나잇(Hard Day’s Night)을 앞두고 동명의 영화를 찍고 있었다. 이 영화에 패티가 출연했다. 패티는 조지의 첫인상에 대해 “당시 조지는 영화 촬영을 위해 정장을 입고 있었다. 수줍음이 많았는데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이상한 리버풀식 유머를 구사했는데 그게 뭔지 알아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조지는 첫눈에 패티에게 반했고 그날 바로 패티에게 “나와 결혼해 주겠느냐(Will you marry me)”고 물었다. 패티가 ‘리버풀식 유머’로 알고 웃어넘기자 조지는 “결혼이 안 되면 저녁이라도 하자”고 데이트를 신청하면서 만남이 시작됐다. 이후 1965년 조지와 패티는 결혼식을 치른다.

패티는 “조지는 차분하고 영적인 사람(spiritualized person)이었다”며 “항상 음악을 생각하며 기타를 잡고 있었고, 침대 위에서 잠들 때까지도 발을 까딱까딱 거리면서 리듬을 탔다”고 말했다.

패티 보이드가 찍은 사진들. 두 번째 남편 에릭 클랩튼이 패티의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패티 보이드가 찍은 사진들.두 번째 남편 에릭 클랩튼이 패티의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패티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에릭 클랩튼은 조지의 절친한 음악 동지였다. 1968년 비틀스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조지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과 같은 해 발표한 솔로 음반 ‘Wonderwall Music’에서 직접 기타를 치기도 했다. 에릭 클랩튼은 그런 조지의 아내였던 패티에게 마음을 뺏겼고, 패티 또한 당시 인도 문화에 심취해 자신에게 소홀했던 조지의 마음을 돌리려 에릭에게 접근했다. 애초 의도적 접근이었기에, 에릭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상심에 빠진 에릭은 마약에 손 대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에릭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1977년 조지와 이혼한 패티는 1979년 에릭과 두번째 결혼을 한다. 패티는 에릭에 대해서 “섹시하면서도 항상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며 “활발하고 먼저 다가오는 존 레넌과는 다르게 조금 부끄러워했는데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에릭마저도, 결혼 후 외도와 술 등 문제로 패티와 1989년 이혼을 하게 된다.

패티가 영감을 준 노래들

조지 해리슨과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 크리시와 인도 음악가 시브쿠마르 샤르마와이른 저녁을 즐기는 모습.

조지 해리슨과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 크리시와 인도 음악가 시브쿠마르 샤르마와이른 저녁을즐기는 모습.

세계적 뮤지션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패티는 팝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지금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몇몇 곡들은 패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969년 비틀스의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에 실린 조지의 곡 ‘Something’이 대표적이다. 사랑하는 그녀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읊조리는 이 곡은,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에 비해 작곡 실력은 떨어진다고 평가받던 조지를 재평가하게 만든 곡이기도 하다. 미국의 팝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는 이곡을 일러 ‘20세기 가장 위대한 러브송’이라고 평했다. 패티는 “조지가 나를 위해 작곡했다고 말해준 유일한 곡이었다”며 “스튜디오에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와 틀어주고는 "너를 위해 이곡을 만들었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패티는 “‘Something’과 함께 에릭의 곡 ‘레일라(Layla)’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패티는 “친구가 나와 에릭에게 페르시아 판 ‘로미오과 줄리엣’인 ‘레일라와 마즈눈’에 관한 책을 선물했는데,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Layla’는 1970년 패티에게 실연 당한 에릭이 슬픔을 표현한 곡으로, 곡의 초반부터 전개되는 강렬한 기타 리프(주기적인 코드 반복)는 지금도 ‘가장 매력적인 기타 연주’로 불린다.

하지만 에릭은 패티와 결국 교제를 하게 되고, 그 기쁨을 1977년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을 통해 노래한다. 패티의 말이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길래 에릭을 1층에 기다리게 하고 나는 옷을 입으러 올라갔다. 옷을 고르다보니 30분이 지났더라. 화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내려갔는데 에릭이 화를 내긴커녕 기다리면서 노래를 만든 게 있는데 들어보라고 들려줬다. 그게 바로 원더풀 투나잇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런 곡을 만들다니 천재다’라는 생각과 함께 곡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행복했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다

1968년 시즌 첫 장미가 핀 정원에서 삼각대를 이용하여 찍은 패티와 조지 해리슨.

1968년 시즌 첫 장미가 핀 정원에서삼각대를 이용하여 찍은 패티와 조지 해리슨.

1989년 에릭 클랩튼과 이혼한 패티는 1991년 약물 중독 환자를 돕기 위한 자선단체를 세우는 등 자선가로 활동해왔다. 이후 2007년부터는 모델 생활 초기부터 취미로 찍어오던 사진 특기를 살려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패티는 “1960년대 중반 존 레넌 커플과 조지와 함께 한달 간 떠났던 타히티 섬과, 이후 에릭과 함께 1년 간 지냈던 바하마 섬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했다”며 “다만 결코 돌아가고 싶다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행복과 슬픔이 반복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활동을 하든 나에게는 ‘뮤즈’라는 꼬리표가 붙겠지만 내 삶의 일부였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는 그 당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고 말했다. 패티보이드의 이번 국내 전시 ‘ROCKIN’ LOVE’는 오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S-FACTORY)에서 열린다. 1960년대 영국 런던의 풍경에서부터 뮤지션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 이후의 패티 보이드 삶까지 100여 점의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글=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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