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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찰의 화교 총격 사망사건…외교갈등 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랑스 파리에 살던 중국인 남성이 현지 경찰의 총격을 받아 숨진 사건의 여파가 확대일로에 있다. 프랑스 거주 중국 교민들은 이 사건을 ‘인종차별’로 규정하고 일주일 이상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중국 외교부가 연일 프랑스 당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양국 외교 관계에도 불똥이 옮겨붙고 있다. 프랑스는 서방국가 가운데 중국과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나라다.
파문의 발단은 지난달 26일 밤 파리 19구에서 일어난 화교 남성의 사망 사고다. 이날 퀴리알 지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국인 남성 류샤오야오(柳少堯ㆍ56)가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들이 출동했다. 경찰이 자초지종을 파악하기 위해 강제로 문을 열고 진입하자 이 남자가 흉기를 휘두르며 한 경찰관을 공격했고 이에 동료 경찰관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남성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 경찰 측 설명이다. 그러나 유족들의 얘기는 다르다. 이웃이 고함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을 뿐 가정폭력은 없었으며, 마침 생선을 손질하던 남성이 가위를 들고 있었을 뿐 경찰에게 달려들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족들은 경찰이 총기 사용 전 경고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프랑스 내 화교 사회는 분노에 휩싸였다. 이튿날 저녁 파리의 중국 교민 150여명이 19구 경찰서 앞에서 경찰차를 불태우고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인 이래 시위는 연일 계속됐다. 주말인 2일 저녁에는 파리의 공화국 광장에서 수천명의 중국 교민이 참석,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흰 장미 한 송이씩과 촛불을 손에 들고 사망자 류를 추모했다. 또 공정하고 신속한 진상 규명과 엄정한 처리를 요구하며 “정의, 공정, 존엄” 등의 구호를 외쳤다. 리민(悧敏) 재불 화교협회 주석은 “중국 교민의 합법적 권익을 지키겠다는 결심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파리에는 중국계가 60만 명 넘게 거주하고 있다. 유럽의 중국인 지역사회 가운데 최대 규모다. 시위는 남부 프랑스 마르세유 등 각지로 확산됐다. 프랑스 경찰은 합법 시위는 보장하면서도 폭력을 행사한 100명 이상을 체포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에는 상하이 쉬후이(徐匯)구의 옛 프랑스 조계에서 중국인 남성이 프랑스인을 흉기로 공격해 부상을 입힌 사건이 일어나 주중 프랑스 대사관이 자국민을 상대로 최고 수준의 안전 경계령을 내리기도 했다.
시위 확산 배경에는 프랑스 거주 화교들이 그동안 쌓였던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위대는  “식민주의 경찰” “깨어나라. 프랑스의 아시아인들아! 당신들은 아직도 이 나라에서 탄압받고 있다”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나왔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시위는 프랑스 사회내 인종차별로 쌓였던 중국인들의 불만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BBC는 “프랑스에서 중국인들은 나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오랫동안 일상적 차별에 시달렸고 현금을 소지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외교 갈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가 사건 발생 직후인 28일 성명을 내고 엄정한 사건 처리를 촉구하고 주중 대사관이 프랑스 당국에 공식 항의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프랑스 당국은 이성적인 방법으로 프랑스내 중국인들의 행동에 대처하고 안전과 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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