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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으라” 정부 오판과 IS ‘인간방패’ 전략 틈에 죽어가는 모술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미군 주도 국제동맹군의 오폭으로 수백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이라크 모술 서부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군 주도 국제동맹군의 오폭으로 수백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이라크 모술 서부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집에 있으라고 했어요. 정부에서 수차례 라디오로 방송하고 항공기로 전단도 뿌렸어요. 집 떠나서 난민 되지 말라고 해서 그리 따랐는데….”


굉음과 함께 폭탄이 비처럼 쏟아졌을 때 와드 아흐메드 알타이는 오도 가도 못한 채 떨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껴안고 있었다. 옆집 벽이 무너져 이들 가족을 덮쳤다. 알타이의 3살 난 딸과 9살 된 아들을 포함해 6명이 한자리에서 숨졌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한 이라크의 참상이다. 알타이 가족은 지난해 11월 7일 미군이 주도하는 국제동맹군의 ‘오폭’에 희생당한 모술 사람들 중 일부다.

이라크 IS 최후 거점도시 모술서 민간인 희생 급증 #미군 주도 동맹군 오폭에 IS의 '인질' 전략 맞물려 #"트럼프 정부 들어 교전수칙 느슨해져" 의혹도

극단주의 이슬람국가(IS)의 최후의 거점인 모술에선 이 같은 슬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최소 30만 명에 이른다. 국제동맹군이 IS의 ‘명줄’을 끊기 위해 공습의 강도를 높일수록 민간인의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이슬람국가(IS)로부터 탈환된 모술 서부에서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이라크인. [AP=뉴시스]

최근 이슬람국가(IS)로부터 탈환된 모술 서부에서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이라크인. [AP=뉴시스]

2일 미 CNN 방송에 따르면 지난 2014년 IS 격퇴전인 ‘내재적 결의(Inherent Resolve) 작전’이 개시된 이래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희생당한 민간인이 최소 229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지난 17일 동맹군 공습으로 인한 희생자 200여명을 넣지 않은 것이다. 자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에 따르면 모술 서부 탈환 작전이 시작된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약 한 달간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307명에 이른다. 일각에선 민간인 희생자 수가 수천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쟁에서 일정한 희생이 불가피하다 해도 최근 들어 왜 이렇게 민간인 사망이 급증하는 것일까. 포린폴리시는 현장 르포를 통해 알타이를 비롯한 모술 사람들이 이라크 정부와 국제사회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불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집을 떠나지 말라”는 권유가 실제로는 난민을 통제하고 보호할 여력이 없어서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라크 모술 남쪽의 함만 알 알리 난민 캠프에 대피해 있는 어린이들. [로이터=뉴스1]

이라크 모술 남쪽의 함만 알 알리 난민 캠프에 대피해 있는 어린이들. [로이터=뉴스1]

실제로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34만 명이 모술을 탈출했고 이들이 몰려드는 함만 알 알리의 난민 캠프는 하루 한끼 해결도 어려울 정도로 식량 수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정부를 비롯한 주요 서방 국가들은 IS 테러리스트의 잠입 가능성 등을 이유로 난민 수용을 제한·불허하는 추세다.

연합군 쪽에선 모술 민간인 피해가 불어난 데 IS의 ‘인간 방패’ 전략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본다. IS가 주요 전투 장비와 폭발물 등을 비치한 건물에 민간인을 모아놓고 최후의 반격에 나서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인권관측소(IOHR)는 IS가 모술 서부에서 어린이 197명을 납치해 알누리 대모스크에 가두고 이라크군과 국제동맹군의 공습에 저항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IS 격퇴작전을 강화하면서 국제동맹군의 교전수칙이 변화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2일 시리아 락까에서 벌어진 동맹군의 오폭을 거론하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교전수칙이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국제동맹군의 오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전에 없이 싸우고 있다. 결과가 매우, 매우 좋다”고 공개적으로 연설해 비난을 초래하기도 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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