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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스토리와 감성적 연기, 소비자 가슴 속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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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14면

BMW가 5시리즈 신모델을 홍보하기 위해 클라이브 오웬과 다코타 패닝 주연으로 만든 단편 영화 ‘탈출(The Escape)’.

BMW가 5시리즈 신모델을 홍보하기 위해 클라이브 오웬과 다코타 패닝 주연으로 만든 단편 영화 ‘탈출(The Escape)’.

영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지난해 말 ‘토마스 버버리 이야기(The Tale of Thomas Berberry)’라는 영화를 공개했다. 토마스 버버리역은 영화 ‘어바웃 타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널 글리슨이 맡았고, 시에나 밀러와 도미닉 웨스트 같은 명배우들도 출연했다. ‘에이미’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하지만 상영시간은 고작 3분 30초. 영화 예고편인 줄 알았다.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 광고, 영화가 되다

브랜드 홍보를 위해 문화 콘텐트를 활용하는 ‘브랜디드 콘텐츠(branded contents)’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브랜드 필름’이 처음부터 이렇게 짧았던 것은 아니다. 브랜드 필름의 원조격인 BMW 필름의 경우 2002년에 왕자웨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같은 명감독들이 연출한 다섯 편의 단편을 공개했다. 각각 20분 내외의 분량이다. BMW 필름은 당시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에도 불구하고 1100만 뷰와 200만 회원 확보라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벤츠, 아우디 등 다른 자동차 브랜드들이 연이어 영화 제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이치다. 기아자동차도 2014년 가을, 9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BMW는 최근 5시리즈의 신모델을 홍보하기 위해 클라이브 오웬과 다코타 패닝 주연의 단편 영화 ‘탈출(The Escape)’을 발표했다.

세계적인 감독들의 BMW 단편 영화 대성공

자동차 브랜드에서 시작된 ‘브랜드 무비’ 마케팅은 자연스럽게 명품 패션 브랜드로 옮아갔다. 디올(Dior)은 2008년부터 뉴욕·파리·모스크바·상하이·LA 같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단편 영화를 제작해 발표하고 있다. 매번 프랑스 최고 여배우인 마리옹 꼬띠아르가 출연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5분짜리 영화 ‘레이디 블루 상하이’를 보고 나면 하루 종일 파란색 디올백의 환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브랜드를 강력하게 각인시키고 말겠다는 의도를 뻔뻔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프라다(Prada)는 제품 홍보보다 신상품 컨셉트(예를 들면 레이스)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브랜드 필름 ‘폴른 섀도우(Fallen Shadows)’를 발표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도 2014년 박찬욱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어 로즈, 리본(A Rose, Reborn)’이란 영화를 제작, 상하이 패션위크 폐막식에서 공개했다. 패션 브랜드의 영화제작은 이제 공식이 됐다.

미쟝센이 워낙 훌륭한 덕분에 박찬욱 감독은 다수의 브랜드 필름을 제작했다. 송강호가 출연한 코오롱스포츠의 ‘청출어람(2012)’이 박 감독이 만든 첫 브랜드 필름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 모 일간지에 “광고, 들이대지 않으니 맘속에 들어오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자는 칭찬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들이대지 않은 결과 브랜드 홍보효과가 거의 없었다. 다음해에 제작한 코오롱 필름 ‘사랑의 가위바위보(김지운 감독, 윤계상·박신혜 출연)’도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고개가 갸웃거려질 것이다. 이렇게 많은 브랜드 필름 중에 본 것, 아니 제목이라도 들어본 것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레고 무비’나 ‘코코 샤넬’처럼 와이드 릴리즈가 된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는 데에 첫 번째 이유가 있겠지만 막상 보기 시작해도 끝까지 보게 되지 않는 게 이런 류의 브랜드 무비다(BMW 필름은 예외다. 한번 찾아서 보시길!). 20초짜리 TV 광고도 외면하고, 동영상 앞에 붙는 10초 광고도 천년만년으로 느껴지는데 20분짜리 광고라니. 아무리 단편영화라 해도 광고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4시간짜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는 정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무비’. 2013년 시작해 2016년 4탄까지 이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무비’. 2013년 시작해 2016년 4탄까지 이어졌다.

서울시 홍보영상 능가하는 ‘헤라무비’

그래서 브랜드 무비는 짧은 브랜드 필름으로 진화했다. 대개 1분에서 3분, 길어야 5분이다. 짧아지면서 영화라 부르기도 뭐하니 대놓고 ‘스토리텔링 광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오롱스포츠는 2014년에 탕웨이, 성준 주연의 브랜드 필름 ‘모멘트’를 제작했다. 재회·질주·이별·운명이라는 4개의 에피소드를 1분 광고의 분량으로 쪼개서 만들고 영화 형식으로 묶어 유투브에 올렸다. 제이 에스티나는 박보검과 김연아를 등장시킨 3분짜리 로맨스 무비 ‘타임리스 모멘텀(Timeless Momentum)’을 발표했다. 마지막에 크레딧도 올라가고 롯데시네마에서 시사회까지 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무비’도 고작 1분이다. 2013년에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박찬욱 감독의 4탄(2016)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리스타(Seoulista)’라는 제목의 헤라무비는 전지현을 앞세워 ‘서울여자’의 아름다움과 화장품 헤라(Hera)의 세련된 이미지를 전세계에 알렸다. 서울시 홍보동영상을 몽땅 폐기하고 헤라무비를 사용하라, 라는 피켓을 들고 싶을 정도로 영상미가 좋다.

광고와 달리 브랜드 필름에는 스토리와 연기가 담기게 되고 명배우의 감정표현은 관객, 즉 잠재소비자의 마음을 녹인다. ‘저거 코오롱스포츠 광고인데…’ 하면서도 처얼썩 처얼썩 밀려오는 겨울바다의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탕웨이와 성준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오는 것이다. 멋진 영상의 헤라무비가 전지현의 메이크업과 함께 머릿속에 각인되고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과 공유되는 것도 광고가 아니라 브랜드 필름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광고 대신 영화로 인식하게 하는 ‘리프레이밍(reframing)’ 기제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게다가 브랜드 필름은 짧고 단순해서 현대인들의 ‘스낵 컬처(snack culture)’ 소비 트렌드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포맷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브랜드 필름이 나올지 기다려진다. 이러다가 영화보다 광고를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랑 광고 한편 보실래요?” ●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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